찌질한 악마 새움 세계문학전집
표도르 솔로구프 지음, 이영의 옮김 / 새움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제 이 세상에 예의와 품격, 그리고 친밀감을 무엇보다 추구하는 천사와 같은 사람이 있을까?  혹 아니면 반대로 일종의 스쿠루지와 같이 단지 스스로만의 가치관만을 움켜쥔 체 타인 따위와의 관계는 전혀 고려의 대상으로도 생각치 않는 (일종의)꽉 막힌 사람이 존재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처럼 위의 질문에 대하여 딱히 무엇이라 정의 할 수는 없지만, 다만 딱 하나! 분명 많은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이처럼 보다 극단적인 성격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사람이란, (자신의)주변에서 쉽게 찾아볼수도 없고, 또 되도록 인연 또한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할 것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것이 아마도 이들은 '성자' 아니면 '극악한 범죄자' 이 둘중 하나일것이 분명하니까...)


이처럼 보다 상식적인 면에서 바라볼때의 인간이란, 그 스스로도 정의 할 수 없는 복잡함을 드러내는 존재, 정리하자면 어느쪽이든 일방적인 가치관에 치우치지 않는 소위'주변의 공기를 읽는' 약삭빠른 존재로도 볼 수 있겠다.  바로 그렇기에 결국 고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과연 인간의 본성은 어떠한가?' 하는 질문을 맞이하며, 인간은 그 끝없는 (답이없는) 질문에 고뇌했으며, 물론 이 책의 내용또한 그러한 해답의 역사에 있어서, 나름의 지침이 될 수있는 하나의 '창작물'로 볼 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소설속 주인공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삐뚤어진 자기애'로 똘똘 뭉쳐있다.  오늘날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는 세대간의 갈등, 갑질 등과 같이, 그 오랜 과거의 '러시아 제국'에서도 인간이란 오늘과 똑같은 욕망, 그리고 똑같은 욕구를 드러내면서, 이 제목과 같은 찌질하기 짝이 없는 (손해 안보는) 삶을 살기위하여,다른 많은 사람들의 존엄?을 깎아내리기는데 거리낌이 없다.  혹 그래서일까? 결국 이처럼 소설의 많은 장면들을 접하다 보면, (그야말로) '그 인성'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그저 건물주라는 이유만으로 고용인에게 있어 '존대'를 강요하는 여관 안주인, 그리고 제국의 관료이자, 교육자라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스스로의 출세만을 위하여, 제자도 또 미래의 아내를 선택하는 것에도 차별을 두는 주인공!   차별, 위선, 거짓, 자만... 이처럼 소설속에서 보여지는 이미지와 그 부정적인 것들을 마주하며, 분명 '나' 스스로 또한 그 많은 것에 대하여 거부감과 같은 감상이 들어야 마땅하리라!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그러한 많은 마이너스 이미지에 대하여, 상당히 친숙한 느낌을 받게 되기도 했다.  이처럼 조금씩 생각해보면, 의외로 이 소설은 현실과 매우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적어도 스스로의 삶을 돌아봤을때, 이미 '나'라는 존재가 이와 매우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세상에는 어쩐지 싫은 사람도 있고, 스스로 쌓아온 마이너스 에너지를 누군가에게 쏟아내게 되기도 한다.   또한 타인을 만만한 먹이감으로 삼거나, 나름의 거짓을 섞어 평가를 깎아내리기도 하고, 때론 타인이 겪는 어려움을 지켜보면서, 마음속 한구석에 기쁨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야말로 나라는 존재는 '타인의 불행은 나의 기쁨' 이라는 세상 속 가르침을 충실하게 지켜오는 현생의 악마가 불리워도 손색이 없는 인성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이세상에 악마가 오직 나 혼자 뿐이겠는가?    적어도 저자의 시선에 따르면, 소설 뿐만이 아닌, 이 세상 모두의 사회적 인간은 모두가 악마의 영역에 들어있다.    이에 세상 속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자들이 삶을 한번 생각해보아라, 그리고 또한 스스로의 삶을 한번 뒤돌아보아라, 과연 독자는 이 소설속 사람들과 비교하여 그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또 그 무엇이 똑같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이나 읽을걸 - 고전 속에 박제된 그녀들과 너무나 주관적인 수다를 떠는 시간
유즈키 아사코 지음, 박제이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2월
평점 :
품절


진정 내가 꿈꾸는 삶... 그러나 정작 소설가의 삶은 어떠한 것인가? 에 대한 현실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분명 '나'는 무지하기 짝이 없다. 이처럼 저자는 일본의 소설가로서, 글을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며, 바로 이 때문에 문득 '나' 또한 저자를 바라봄에 있어서, 나름의 환상이랄까? 아니면 정석에 가까운 모습을 기대하게 된다.   그야말로 글을 잔뜩 읽고, 삶에 여유를 가지며, 나름대로 스스로의 성숙한 자아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지성인의 모습!   이처럼 '책이 사람을 만든다' 라는 단어에 걸맞는 이야기들을 과연 이 책을 통해서 발견 할 수 있을까?  라는 은근한 기대감을 가지며, 나는 앗코짱으로 익숙한 (작품세계에 대하여) 저자의 진짜 삶을 들여다 보려고 노력하였다.


​때문에 생각해 보면 이 에세이에서 들여다 볼 수 있는 것 또한 '작가' 그리고 '그에 걸맞는 삶을 사는 여성'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감상을 엿보는 것이라 정의 할 수 있다.  실제로 스스로가 여류작가의 삶을 살아감으로 인하여,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겪어온 다양한 것에 대하여 저자는 이에 대하여 과거 많은 선배들의 작품속 '메시지'를 통해 독자들에게 좀더 인상적인 (또는 여느 서적을 권할 수 있을 만큼) 내용을 표현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혹시, 독자 스스로가 에일 졸라 나 스탕달 등에 대하여 무지하다면?  그렇다면 아마도 저자가 풀어내는 많은 이야기에 대하여, 조금 어렵게 느껴 질 수도 있을 것 같은 감상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고전으로 분류되는 이 많은 작품들은 '인간의 본질' 을 논함에 있어서, 다른 많은 지식인들을 통해 '소개되고' 또 '추천되는' 것이기도 하다.  허나 그 때문에 이들이 흔히 주목하는 부분 또한 시대의 배경, 저자의 고뇌, 소설로서의 본질을 파고들려는 학술적인 시선이 많으나, 이에 대하여 이 책은 분명히 그러한 어려움보다는 보다 수다에 가까운 것!  아니면 저자 스스로의 고백에 가까운 인간적인 면에 집중하면서, 보다 그 난이도를 떨어뜨리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기에 책 속에서 (고전)소설은 '때때로 저자의 감정을 대변하는' 존재로 소개된다.


화내고, 마음대로 활개치고, 야심을 드러내며, 때론 쉽게 이루지 못하는 성공을 추구한다...   이처럼 소설은 그 시작과 끝이 분명한 '가상의 이야기' 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과정 속 감정이 요동치고 폭발하는 것을 즐길 수 있는 나름의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소재가 되어주기도 한다.    때문에 저자에게 있어서도 책(소설)은 그 무엇보다 큰 재미를 선사하여 주는 고마운 존재다.    현실의 삶을 살면서, 과연 나는 얼마만큼 '나' 라는 존재를 내리 누르며 살고 있는가?   그리고 내 마음속에 요동치는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하여 혹 타인에게 크나 큰 피해나 상처를 주고 있는것은 아닐까?    이처럼 스스로가 꿈꾸고 또 갈등하는 많은 감정에 대하여 소설이 드러내는 '스토리'들이 그 얼마나 유익하고 또 공감이 가는 내용인지... 이에 저자는 스스로 '무엇보다 책이 최고다' 라는 나름의 결론을 당당히 독자들에게 권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엘리트 제국의 몰락 - 엘리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가 집대성한 엘리트 신화의 탄생과 종말
미하엘 하르트만 지음, 이덕임 옮김 / 북라이프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소위 민주주의의 개념을 형성하고 또 다져나아간 곳은 바로 '유럽'이다.   그렇기에 분명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대한민국의 시선에 있어서도 정치 선진국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만 아쉽게도 이 책은 그러한 정치적 내용을 떠나, 새롭게 유럽사회등에서 '문제점'으로 인식되는 것... 그야말로 미국식 자본주의와 실력주의 그리고 지칭 엘리트주의가 합쳐지면서 생겨난 또다른 신 엘리트주의의 등장에 대한 저자의 우려와 경계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렇기에 나는 위의 많은 내용 뿐만이 아니라, 나름 독일의 지식인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상식'에 대해서도 큰 흥미를 가지게 되었기는 하지만, 반면에 이미 세상에 퍼져있는 전문가와 엘리트가 가지는 영향력을 생각해 보면, 역시나 이 주장들이 매우 파격적이다. (또는 이상주의적)라는 느낌을 완전히 지울 수가 없다.  


이처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사립학교, 대학, 음식점, 단체, 기타 등등  이처럼 명목상에는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사실상 '소수만을 위한' 고급 교육과 서비스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상식아닌 상식으로 통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한 문제점은 사회문제로서 수도 없이 토론되고, 또 해결책을 모색하려 시도된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매우 단순하게 생각하면, 결국 이러한 과정 속에서 '국가가 개인 단위의 자유와 능력'을 얼마만큼 부여하고, 또 제한하느냐에 따라, (독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그 국가의 정치색이 드러난다는 매우 민감한 소재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 분명하다.   (물론 이 저자의 성향에 대한 정의에 대한 것도 말이다.)


실제로 이에 저자는 상대적으로 엘리트들의 자유를 일부분 제한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앞세운다.

정치의 엘리트, 경제의 엘리트, 교육의 엘리트... 이처럼 이들은 보기에 따라, 각 분야의 전문가이자, 또 각 분야의 견인차가 될 가능성을 지닌 존재들이다.  바로 그렇기에 플라톤 또한 '국가'를 통하여 일종의 엘리트들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고 또 그에 대한 이론을 정리했었으리라. 그러나 현실 세상에는 단 하나 플라톤 또한 어쩌지 못했던 가치가 하나 있다.  그리고 바로 그것 때문에 역사는 귀족을 계층을 지배의 가치관을 만들게 되었으니... 결국 탐욕이라는 존재는 그야말로 개인 뿐 만이 아닌 공동체 모두를 좀먹는 가장 치명적인 암과도 같다. 


이처럼 예를 들어 과거독일이 파멸에 이르는 불행을 맞이했던 이유 또한 무엇이였나?   그야말로 국민들이 그토록 지지하고, 믿고 의지한 신 엘리트주의가 만들어낸 괴물의 진짜 정체는 무엇이였나?   이때 나치는 민족주의를 부채질하고, 또 민족단위를 엘리트화 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때문에 결국 우월한 민족이 된 독일민족이 행한 것이 무엇이였는지 한번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새로운 이념이 생겨나고, 계층이 나누어지면서, 역시나 인간은 화합의 아름다움보다는 (나름) 소수의 행복과 탐욕을 소화하기 위하여 보다 다수의 희생을 강요했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교훈을 받아들인다고 하여, 엘리트라는 개인과 집단이 모든 인류사회에서 소멸 할 일은 없을 것이다.   분명 개인의 성공과, 일족의 번영을 떠나, 어떠한 유리한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삶 어디에서도 보여질 수 있는 일이다.    다만 국가라면!  아니.. 보다 다양한 계층을 이끌며, 되도록 오랜시간 공동체를 이끌어야 하는 어느 존재라고 한다면!    결국 쉽사리 가진자에게 기울어지고, 보다 혜택이 돌아가며, 점차 엘리트가 하나의 '계급'으로 굳어지는 것은 절대적으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때 분명 저자는 '나치'를 예로 들었다.   그러나 세계의 모든 역사, 그리고 한국의 역사에 있어서도 결국 우월한 계층이 등장하고, 또 (나라를)장악함으로 인하여, 진정 나라 뿐만이 아닌 대중의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관이 지켜진 적이 있었는지, 이에 독자는 한번쯤 이에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폐의 세계사
셰저칭 지음, 김경숙 옮김 / 마음서재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어 내려가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이 있다.   하나는 저자 스스로가 세계의 여러 나라를 직접 여행하는 행동가 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그가 동시에 세계의 지폐를 수집하는 수집 마니아 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책 속의 내용 또한 세계사라는 제목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어느 인문학자의 눈으로 발견한 세계관을 독자에게 풀어놓는 책, 그야말로 '지폐의 인문학'으로도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결국 저자에게 있어서 지폐속 도안(그림)은 단순한 이미지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지폐에서 보여지는 '위인' '배경'등을 생각해보면, 결국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스스로 나라의 '전통'과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민족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각 나라의 지폐란 단순히 경제를 움직이는 통화일 뿐만이 아닌, 그 해당 공동체의 본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하나의 예시가 된다. 혹 그래서일까?  실제로 지폐는 수집가들 사이에서 예술적인 수집품으로서 거래되기도 한다.  그저오래되어 희귀한 것도 좋고, 단순히 실험정신이 드러나는 톡특한 것도 인기가 있다!   물론 대부분의 수집가들이 이로서 '대박'을 바라지만, 적어도 이 책의 저자처럼 그림속 '이미지'에 좀 더 집중한다면, 아마도 전보다 수집하는 재미가 더 늘어나지 않을까? 때론 가치를 떠나, 각자 좋아하는 것만을 쫓아보아라.


때문에 생각해보면 저자 역시 이를 통하여 소위 '문화'라는 것을 수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책 속에는 각 나라가 무엇을 자랑스러워하고, 무엇을 계승하며, 특히 독재와 융합을 상징하는 정치적 상황 또한 화폐속에 큰 영향을 드러낸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그렇기에 결국 세상에는 그에 따른 '가치'또한 극명하게 나누어지는 것이 현실!   세상에 미국의 달러가 더 가치있는가, 아니면 북한의 원화가 더 가치가 있는가?  이는 순수한 돈의 가치를 떠나, 수집의 세계(상식)으로 바라보아도 분명하다.     세상에 돈이 가치가 있는 이유도, 또 돈이 저마다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는 이유도!  결국 그 나라속 사람들이 쌓아올린 문화와 역사가 함께하기에 가능한 것이며, 이에 이 책 또한 그러한 나름의 상식을 보다 풍요롭게 묘사한 책으로서, (독자인) 나에게 큰 만족감을 선사해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재일조선인 - 우리가 외면한 동포
김한조 지음 / 여우고개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재일조선인에 대한 많은 문제는 분명 근대의 한반도가 겪은 식민지배의 과정에서 생겨난 것! 이른바 '약자의 비극'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을것이다.   그렇기에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도,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각 국가의 이해관계를 떠난, (정의론에 입각한)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이겠지만?  아쉽게도 오늘날 엿보이는 사실과 '한계'등을 바라보았을때, 결국 재일조선인에 대한 정당한 권리와 보상에 대한 문제는 거의 (사실상) '제자리걸음'에 머울 수밖에 없을것 같다는 라는 암울한 결론에 도발해 버리고 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많은 한국인들이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분명 많은 사람들은 '강제징용'을 통하여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을 기억하고, 또 이러한 역사에 대하여 불합리함을 질책하는 나름의 인식수준을 갖추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들을 돕는다는 것에 있어서 만큼은 분명 개인이 생각하는 것 만큼 일사분란하게 실행 할 수도 없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그도 그럴것이 대한민국이 이들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들에게 일정수준의 권리와 경제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이에 단순한 행정 뿐만이 아닌, (일반)국민의 정서로 생각해도 분명 이 많은 문제는 쉽사리 그 결론을 내릴 수 없다. 그렇다면 이들은 '망국의 국민'인가?


그렇기에 결국 오랜세월동안 '보류'만 한 결과, 결국 재일조선인은 해당 많은 국가들에게 의하여 계륵같은 존재로 전락하기에 이른다.   쉽사리 받아들일수도 그렇다고 외면 할 수도 없는 존재...  설상가상으로 2~3세대에 걸쳐 개선되지 않는 많은 한계를 맞이하며, 재일조선인들이 겪는 불합리함이 또 일본사회의 새로운 문제점으로 인식되기에 까지 이른 것이다.   이처럼 물론 세상에는 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책임등을 보다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소위 '누구의 잘못인가' '누구의 책임인가'를 논의하여, 향후 또 다시 되돌아 반성 할 수 있는 시금석을 남기는 것도 중요한 것이지만,  지금!  재일조선인의 문제란 단순한 정의의 문제를 떠난 '현재 진행형'의 문제이기도 하기에, 이에 적어도 한반도의 역사를 이어가는 대한민국이라면 최소한으로 나마 이들에 대하여 외면하지는 말아야 한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니... 적어도 이들에 대한 많은 오해들을 걷어내는 것부터 시작해, 소위 재일조선인의 본질을 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마땅하다. 

조총련, 빨갱이, 종북... 이처럼 대한민국의 사회에서 재일조선인들이 껄끄럽게 생각되온 이유는 무엇이였나?  그리고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재일조선인을 이른바 '박쥐'와 '이방인'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 또한 과연 올바른 것인가?


이에 적어도 이 책은 그 '이유'에 대하여 담담히 이야기를 풀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