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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가슴의 발레리나
베로니크 셀 지음, 김정란 옮김 / 문학세계사 / 2019년 2월
평점 :
오늘날 대한민국 속 페미니즘의 대부분은 이른바 '권리요구'로 정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생각하면 이는 오래전부터 이념을 현실화하기 위한 투쟁의 연속으로서도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는것이지만, 이를 떠나 반대로 내 개인적인 의견을 드러내보자면, 결국 오늘의 페미니즘이란 일종의 계급투쟁의 형식을 빌린 '사회 변화 운동' 으로서 한층 더 극단적인 것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가끔 들 때가 있다.
그렇기에 결국 페미니즘은 보다 격렬하고, 복잡하며, 또한 새로운 가치를 세상에 드러었으며, 이에 이 소설의 이야기도 그 나름 페미니즘의 분류법으로 들여다보자면, 소위 '탈 코르셋'의 가치를 내보인 소설로서 이해 할 수 있을것이다. '나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자' 또는 '나 스스로의 믿음과 자아실현을 위하여, 사회에 만연한 어느 가치관에 저항하자' 이처럼 세상속에서 주장되는 탈코르셋의 정의를 마주하며, 과연 독자는 어떠한 감상을 가지게 될까. 이에 혹 저자가 표현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마주한다면, 나름 그 선택과 정의에 대하여 관대한 시선을 던져줄수 있지 않겠는가? 이처럼 소설 속 주인공은 나름 저자의 아바타로서, 그 개인의 정의를 대변하는 존재로 비추어진다. 물론 이에 어느 정도의 사실이 표현되었는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이 주인공이 오롯이 자신의 추구하고자 하는 삶을 위하여, 세상 속 경직된 사고방식을 벗어난 '선택' 을 할 수 있는 위인으로서 비추어지는 것만은 엄연한 사실이라 할 만하다.
이때 주인공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예술)'발레'이다.
그러나 오늘날 발레란 어떠한 것인가? 이미 여성의 입장에 있어서, 발레의 세계는 실력과 의지로 성공하고 또 개척 할 수 있는 친 여성적 무용세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을 배신한 것은 그 스스로의 몸뚱아리다. 이미 소설의 제목에서도 비추어지듯 주인공 자신과 함께 성장한 (여성형)가슴이 그 본인 스스로의 자아실현을 방해하는 최대의 방해물이 된 것이다.
때문에 주인공은 소녀에서 어른으로 변화하는 모든 순간마다 발레를 위해 가슴과 싸웠다. 극단적인 다이어트도 해보고, 압박붕대로 가슴을 칭칭 동여매기도 하였으며, 심지어는 발레를 할 수 없을것이라는 스트레스로 하지말아야 할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어른이 되어,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게 되었을때, 그가 선택한 최대의 결심 중에는 자신의 몸에서 가슴을 때어낸다는 것도 자연스레 포함이 되어 버렸다. (아마도 축소 수술인 것 같다)
가슴을 포기한 주인공, 그리고 뜻밖의 혼전임신과 출산으로 마주하게 된 (편모)어머니로서의 삶과, 발레리나로서의 삶...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의 선택에 의하여 자식에게 모유를 먹일 수가 없다. 때문에 그녀는 마음 한구석 아픔을 느끼게 되기도 하지만, 허나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의 자립을 포기하고, 온전한 어머니가 된다는 선택 또한 절대로 하지 않는다. 오직 나의 삶! 나의 인생! 그리고 내가 불러온 결과를 오롯이 마주하며, 그녀는 스스로를 단순히 어느 자식의 엄마로 불리우는 것을 거부한다. 그렇다 그녀는 발레리나다. 발레리나이자,어머니다. 어째서 이 두가지의 삶이 공존 할 수 없다 생각하는가? 어째서 주인공이 이 두가지의 삶을 버텨낼 수 없을것이라 생각하는가? 이에 혹 위처럼 부정적인 감상과 정의를 내린 독자가 있다면? 적어도 이 주인공이 말하는 주장에 대하여 보다 믿음을 가져보기를 바란다. 적어도 그녀는 자주적이고 강한 여성이 아닌가? 정말로 이 주인공은 스스로의 목표를 이루려는 자, 스페셜리스트라는 단어에 걸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