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의 결전 맞서 싸우는 독립전쟁사 2
정명섭 지음, 신효승 감수, 남문희 만화 / 레드리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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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잃은 자들의 무장투쟁. 그러나 당시에는 (일본군에 의하여) '불령선인'으로 불리우며, 토벌의 대상이 되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결국 후대의 독자들은 어떠한 것을 마주할 수 있는가. 이에 생각해보면 단순히 민족의 이름 아래 안타까움과 분노와 같은 감정을 가지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독립전쟁이 가지는 의의가 오늘날 대한민국에 어떠한 가치를 발하고 있는 것인가? 또는 앞서 제1권(봉오동 전투) 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세계사와 한국사 등의 영역에서 자칫 소홀할 수 있는 투쟁과 저항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 있어서... 결과적으로 나 스스로가 연이어 이 시리즈를 마주하는 이유 또한 '배우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겨진다.

일본군은 간도로 출병하기 이전에 이미 독립군뿐만이 아니라 조선인들까지 탄압하여 독립운동을 뿌리뽑아버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186쪽

이처럼 제2권은 집요한 저항과 유격전을 벌이는 독립군에 대하여, 일본군이 선택한 대응과 그 실행의 결과 등이 주제라할 수 있다. 물론 상대의 의지를 상실하게 하는 의도 뿐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지원(또는 보급과 협력)을 무력화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일본군이 학살을 선택한 것은 분명 잔인한 일이지만, 반대로 냉정히 전쟁사의 의미에 있어서는 '전무후무' 한 행동을 했다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이러한 행동에 뒤이어 당시 벌어진 검열과 축소 은폐의 행위 등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부정하거나 또는 반면교사로 삼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는 크게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당시 독립군을 포함한 수 많은 (독립) 단체들과 언론 등이 저마다의 기록을 남겼기에, 거꾸로 공식문서(당시 일본제국 문서)와 비교할 수 있고 또 비난할 수 있게 (또는 탐구할 수 있게)되었지만 혹여 이 저마다의 기록이 미비했다면? 과연 청산리를 비롯한 독립군의 활약은 어디까지 감추어지고 또 회손되었을지... 그 위기감은 실로 무겁게 다가온다.

실제로 책 속의 내용 중에는 저마다의 숫자와 단어 그리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변명에 이르기까지, 저마다의 논리와 의지가 뒤섞인 혼란이 드러난다. 때문에 오늘날에도 독립군의 입장, 중국인의 입장, 일본군과 일본제국의 입장과 같은 저마다의 경계에 서서 끝없는 '진실게임'을 벌이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이고는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무의미한 (이데올로기에 기댄) 팩트체크보다는 당시 독립의 가치를 실현시키고자 한 이유, 그리고 그 실질적 행동에 따른 독립군의 행보와 그 결과의 발현과 같은 나름의 폭넓은 시선을 두고 역사를 바라보는 것을 익히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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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패배자들 - 인생의 성패를 떠나 최선을 다해 경주한 삶에 대하여
유필화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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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 수 많은 사람들이 목표로 하는 '삶의 형태'라는 것은 분명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과 차이점이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단 하나 뭉뚱그려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골인점... 말 그대로 성공의 보상을 받는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존경받는 삶, 또는 안락하고 여유로운 삶을 누리며 살고 싶은 욕망이 아닐까 한다.

이에 그 '욕망'에 비추어보면 이 책 속의 인물들은 제목 그대로의 패배자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패배의 결과가 오롯이 그에 걸맞는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또는 그러한 결과를 맞이할 수 밖에 없는 행동) 라고 누가 감히 정의하겠는가? 실제로 가장 먼저 언급되는 테미스토클레스는 세계사 (또는 서양사)에서 가장 뛰어난 리더로 인정받는 위인 중 하나이며, 이에 뒤따르는 악비조차도 당시 송나라를 뛰어넘어 오늘날 중국에서까지 존경을 받는 무인이자 영웅이기도 하다.

이처럼 그들은 수 많은 과정 속에서 목표로 하는 바를 성취하기도 했고, 또 인간사회에서 미덕이라 불리우는 용기와 헌신을 보여주었으나, 안타깝게도 그 결과는 망명과 처형이라는 개인사 커다란 불행을 맞이하게 된다. 이에 저자를 포함한 독자들은 그 아이러니가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가에 대한 나름의 탐구심을 가지고 그들의 삶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저자가 목표로 하는 독자들... 특히 수 많은 직원들과 회사라는 '지켜야만 할 것이 있는 리더' 이라면 더더욱 이 책은 나름의 '고민해 볼 가치'가 있는 많은 질문들을 던질 것이다.

자신의 반대 의사를 정확히 표시하면서도 윗사람과 계속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악비는 진회와 그런 관계를 설정하는데 실패했다.

137쪽 '악비와 비스마르크의 결정적 차이'

결과적으로 이 책이 가장 크게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유연함'이 아닌가? 하는 감상이 든다. 예를 들어 경영이라는 가치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바라보는 이상은 분명 하나이자 두개라는 모순점이 드러난다. 흔히 세상이 말하는 공정과 비지니스의 세계에서 통하는 공정의 차이... 이에 책임자로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환경과 필요성에 부합하는 것을 찾아내는 '통찰력'과 그것을 선택하게 하는 '결단력'에 대한 것이다.

이처럼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마주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한 인간의 삶도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 대의와 목표 속에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역활과 한계에 대한 내용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앞서 수 많은 패배의 결과를 통해 독자가 배워야 할 것은 명확하지가 않다. 예를 들어 패배의 반대가 승리라면, 이에 가장 승리에 걸맞지 않은 인물 '유방'(한나라 황제)의 성공은 과연 '정확히' 어떠한 조건하에 완성 된 것인가? 포용성? 개인의 매력? 방임주의? 이에 그 무엇이 정답이라 할 수 있는가?

결국 인생의 교훈이란, 최선의 것을 선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역사는 결국 하나의 분명한 예시와 정답을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것, 또는 과거의 인간과 환경이 만들어낸 수 많은 변칙 속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과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를 비추는 작은 등불의 역활을 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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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이와 함께 제로부터 시작하는 만화 일러스트
코우하라 유유 지음, 이유민 옮김 / 잉크잼(잼스푼)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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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케릭터를 그려내기 위해서 먼저 거쳐가야 했던 일... 또는 그저 친구들과 재미삼아 서로의 만화를 교환하거나, 당시 유행했던 어느 케릭터를 그대로 그려 (서로)평가했던 일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적어도 나 스스로에게 있어서, 이러한 미술 (또는 만화) 의 입문서는 오롯이 그 지식을 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옛 추억을 떠올리기 위한 계기로서 마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때문에 오늘날에는 조금 변했을 정보들과 도구들, 특히 첨단의 디지털기기와 채색기법이 난무하는 책들에 비해서, 이 책은 나름 옛 기초에 해당하는 기법과 노하우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 반가웠다. 그야말로 처음 입문하기 위한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연필 한자루와 메모장만으로도 나름 만화케릭터의 본질적인 묘사를 가능하게 하고, 자신의 실력을 갈고닦게 하는 방법이란 그 얼마나 친절하다 할 만한가?

데생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지만 만화를 그릴때에는 '보이는 그 형태 그대로 정확하게 포착하는 것'을 뜻해

30쪽 대사 중

이에 이 만화는 이 책 나름대로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며, 나름의 멘토로서 독자들을 이끌어가려 노력하고 있다. 처음 만화를 그릴때 필요한 자질, 그리고 이해를 통해서 창작으로 나아가기까지 필요한 노력과 테크닉은 어떠한 것이 있는가? 이에 나의 개인적인 조언을 덧붙이자면, 처음에는 주변의 뛰어난 재능과 그 결과를 마주하거나 또는 모방하는 것에서 벗어나, 타인에게 보이기 이전의 '나의 것' 그리고 점차 그것을 발전시켜 나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차피 이후 실력이 늘면 자연스레 내것을 드러내고 싶을 때가 온다. 그것이 동호회간의 친목행위인가, 아니면 아마추어와 프로 사이에서 선택한 '직업의 영역'에서 표현되는 것인가는 저마다의 선택에 달려있지만, 적어도 하나 만화가 좋고, 그리는 것이 좋을때 그 에너지를 디딤돌삼아 꾸준히 나아가다보면, 어느덧 나의 손 또한 주변에 지지않을 금손? 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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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이와 함께 제로부터 시작하는 만화 일러스트
코우하라 유유 지음, 이유민 옮김 / 잉크잼(잼스푼)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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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지와 연필한자루로 데셍과 만화 스스로의 창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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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 -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편견
잭 홀런드 지음, 김하늘 옮김 / ㅁ(미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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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사포'의 역사적 평가에서 시작해 1400년도에 지어진 '숙녀들의 도시'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나는 그 나름대로 여성의 사회적 역활과 한계, 그리고 점차 '해방'을 주장하기까지의 역사에 대하여 크게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굳이 이 책을 떠나, 현재 대한민국 국내에서의 갈등이라할 수 있는 '성평등'에 대하여 '나' 나름대로의 견해를 내놓아라 요구받게 된다면? 이에 나는 속된말로 애써 몸을 사리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현재 대한민국의 성 갈등은 흔히 성별간의 역활과 의무의 변화와 조정에 대한 것 보다는 서로 상대간의 '혐오'를 증명하는 것... 더 나아가 역사적 자료와 권위 또는 통계를 바탕으로 서로의 대의(또는 정의)를 주장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는 생각은 든다. 더욱이 대한민국은 과거 가부장적 사회구조와 사회전반의 인식 변화, 그리고 보다 빠른 (또는 급진적인) 변화를 위한 처방으로 여성부(여성가족부)를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 그야말로 정부부처의 행정과 법률의 지원아래 여성의 권리를 세우려는 의도는 당시 상황에 비추어보면 그리 납득하지 못할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문제는 이제 2021년에 이르러 그러한 '극약처방'으로 인하여 발생한 후유증이 점차 성 갈등으로 발전하고 말았다는 것, 그리고 결과적으로 정부.행정 부처의 역활론에 있어서, 그 갈등을 조정하고 또 융합해야 한다는 과제에 마주쳐 그리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는 못하다는 감상을 준다는데 있다.

지난 수천 년간 몸의 통제, 그 가운데서도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일은 인간이 창조한 많은 종교, 사회, 정치 제도 및 이념의 주요 관심사 였다. 만약에 그렇지 않았다면 여성 혐오의 역사에 대한 책을 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283쪽

각설하고 결국 앞서 언급한 갈등의 장에서, 만약 이 책이 그 (각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사용된다면? 어쩌면 그것은 저자의 의도와 각오를 크게 회손시키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저자는 (이 책의 집필 이후) 세상을 떠났지만 그 와중에서 굳이 혐오의 역사를 써 내려간 것은? 과거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해 20세기 이후에 이르기까지, 그 오랜세월의 '지성' 의 본질 속에 '통제'와 '억압'의 가치가 녹아있음을 주장하고 또 개선하고자 하는 주장을 담기 위해서일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과거 남성과 여성의 역활이 분리되는 과정, 그리고 그 결과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인류...아니 남성 중심적 사회구조는 이른바 차별을 만들어냈다. 때문에 여성다움을 강요받거나, 남성과 같은 재능을 세상에 인정받지 못거나, 또는 학문과 도덕 그리고 종교가 말한 여성의 역활이 결국 (억압의) 굴레로서 이른바 '여성의 세계'에 속박하게 하는 등의 (역사 속)과정은 분명 부정 할 수 없는 '혐오의 역사'라 불리울 수 있다.

다만 이후의 문제는 이러한 역사의 진행과정과 함께, 여성의 지위와 역활 등이 여전히 '차별'과 '혐오'의 영역아래 놓여있는가? 그리고 점차 추구해야할 성 평등의 원칙이 정작 현대 사회에 어떠한 형태로 뿌리내려야 하는 가에 대한 지극히 현실적인 과제를 마주하는데 있다. 이때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대한민국의 사회는 그 문제에 있어서 커다란 진통을 겪고 있는 중이나, 아쉽게도 저자는 대한민국 속의 혐오가 아닌 세계 속의 혐오를 극복하라는 커다란 대의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기에 나름 세세한 조언을 얻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하나 크게 눈에 들어오는 글이 있었다.

평등함은 개인이 자신이 속한 집단의 평균적인 특성으로 판단하거나 제약해서는 안된다는 도덕 원칙이다. 즉 설령 여성 대부분이 도서관에서 플라톤을 읽는 것보다 -중략- 그것이 여성에게서 투표권을 빼앗을 이유는 되지 않는다.

333쪽

예를 들어 과거 여성을 물레와 주방에 속박해야 했던 이유, 그리고 반대로 그에 저항하기 위해서 장신구와 치마 등을 던져버렸던 과정들은 이제 현대사회에 이르러 거의 해소되거나 그 의의를 찾을 수없는 가치가 되어 버려야 마땅하다. 오늘날 평등이 주장되고, 마땅히 국가와 사회가 이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 인류가 진보로 나아가며 확립하기 시작한 대의 중 하나다. 비록 그 방법론에 있어 서로의 의견이 충돌하거나 또는 '옛 가치를 이유로' 거부하는 문명권도 존재하지만 이에 진정 (인류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야할 길에 있어서 저자는 진정한 의미의 '평등이 이루어지기를' 바란 것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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