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계 - 기관사와 떠나는 철도 세계사 여행
박흥수 지음 / 후마니타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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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동수단으로 '철도'를 애용한다.   먼 지방으로 떠날때, 가까운 장소를 방문할때... 지하

철을 포함한 철도는 생각하기에 따라 버스보다 편한한 구석이 많다.    그러나 책으로 바라보

는 다른나라의 철도는 단순한 편의성보다는 나름 관광자원으로서,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등의 특징이 드러나, 가끔씩 그 특별함이 부러운 마음도 들고는 하는데, 물론 한반도의 철도도

그 역사가 없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책으로 드러난 한국의 철도의 역사를 들여다 보

면 그다지 모험과 낭만과는 동떨어진 수탈과 희생 파괴의 역사가 드러나 개인적으로 아쉬움의

마음이 앞선다.


세계의 철도 그 역사를 말하다.   이처럼 이 책은 크게 '영국' '미국' '일본'등으로 이어

지는 철도의 역사를 담았다.   그렇기에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철도의 기원부터 시작

해, 철도를 달리는 기차의 발전, 그리고 철도를 받아들인 사람들의 사고방식의 변화는 물론, 만

들어지고, 사라지고, 살나남은 수많은 철도의 발자취가 어디어디에 있는가? 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계속해서 풀어 나아가도 있는데, 이에 나는 그 무엇보다 세계사에 대한 외국의 이야

기보다, 한반도와 관련이 깊은 일본-만주에 대한 식민지 철도에 관한 저자의 이야기를 보다 진

지하게 접했다.


철도의 장점은 한번에 많은 물자를 빠르게 이동시키는 그 능력(효율성)에 있다.   때문에 미국

남북전쟁 당시 최초의 (철도) 병력수송이 이루어졌고, 일본은 러시아-만주일대를 가로지르는

시베리아 철도의 완성을 경계해 제정러시아와의 전쟁을 결의한다.  이처럼 철도는 그 스스로

의 기능 뿐 만이 아니라, 나라와 나라간의 외교적 마찰을 일으키는 도화선이기도 했고, 때로는

해당 국가의 부와 발전의 밑바탕이자, 반대로 타 민족의 재산과 인적자원을 수탈하는 통곡의

길의 역활을 맡았다. 


허나 철도는사라지지도 잊혀지지도 않고, 묵묵히 오늘을 달린다. 


그야말로 철도는 그 역활에 따라, 세계사에 있어서,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길이다.   괜히 국

가 대동맥' 이라는 별칭이 붙었겠는가?   각설하고 오늘날의 철도역시 그 아픔을 뒤로하고, 계

속해서 달린다.   그리고 나 또한 그 철도를 이용하며, 학업을 위해, 즐거움을 위해, 나라의 의

무를 위해... 그 각각의 이유로 철도를 이용해 왔다.   그렇다.  그렇기에 나는 저자처럼 철도에

관련된 '직업'을 가지지 않아도, 그에 관련된 전문지식을 가지지 않아도, 왠지 철도에 대한 관

심과 애정이 늘어나는 것을 느낀다.   아직까진 철도에 철도에 빠삭한 '철덕'은 아니지만, 혹 저

자와 같은 사람과 엮이게 된다면 나도 순식간에 휼륭한 철덕?의 길을 걷게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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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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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어른으로서의 삶'은 나름 '일을 하는 삶'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실제로 현대사회,

즉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활을 다하는 동시에, 생존이라는 필수요소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소

비를 위한 능력을 충족시키는 '돈벌이'가 필수적인데,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과거 당연하게

즐겼던 놀의의 매력을 점점 잊어가는 동시에, 놀이가 아닌 휴식의 필요성을 간절하게 원하

게된다.


굳이 '저자' 요한 하위징아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놀이와 휴식은 근본적으로 그 성격이 다르

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굳이 그것을 분류하여 생각하지는 않는다.   심지어는 단순이 일에

반대되는 가치관, 비생산적이며 개인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개인의 시간이라며, 그 행위

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분명히 말해서 '호모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이란 공휴일을 누리는 현대인이라는 뜻이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놀이하

지 않는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것이 이 책의 주제에 알맞는 주장일 것이다.


그를 증명하듯 저자의 탐구는 고대시대의 신앙, 예술, 철학,문학,심지어는 인간이 사회

성과 연계성을 키워 나아가게 된 원인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폭넓다.  이에 간단히 (저

자의 주장을) 정의하자면 우선적으로 놀이는 '혼자서 할 수 없다'  그리고 특정한 장소에 모인

인간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또 자발적으로 소멸된다.'  또한 강제적인 법률

이 없어도 특정한 공동체는 그들만의 규칙을 따른다, 놀이는 그 나름대로 그 형태가 계승되

기도 한다. 등이 있는데, 그렇기에 놀이는 동.서양의 환경과 가치관에 의해서 독특한 모습을 유

지하고 있으며, 한국에도 명절마다 회상되는 윳'놀이' 가을마다 행하여지는 운동회 등의 '축제'

가 오늘날까지 그 성격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렇다. 바로 그것들을 생각하면 놀이란 이것이다. 라는 그 본질을 알 수 있지않을까?   그 놀이

는 과거부터 계승된 전통놀이요, 놀이를 하는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그 '규칙'을 따르게 된다.  

그리고 공동체는 승리라는 목표를 위해서 놀이를 행하고, 이는 다른이를 뛰어넘어 '무엇을 쟁

취한다' 라는 인간의 충동을 충족시킨다.    그러나 반대로 놀이는 공동체에게 봉사

를 강요하기도 한다.   축제를 위한 준비,강요된 프로그램의 참가... 이들은 분명히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제된 '학교운동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놀이는 항상 '여럿이서 행하는 즐거운 행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 어떠한가?  놀

이라는 정의가 점점더 복잡해지고있다.   그리고 그 복잡한 정의에 비추어보면 분명 오늘날 놀

이는 점점더 퇴폐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글로벌화, 전산화로 인하여 급속히 쇠락하고 있는 놀

이의 특수성.   전자오락에 익숙해져가는 어린아이, 예술의 전문성에 내리눌려, 행하는 즐거움

을 내려놓은 많은 사람들... 그야말로 현대인들은 과거부터 행한 '표현하려는 욕구'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혹 여러분도 그러하지 않았는가?   과거 운동회 문화제 등에 참가하기를 귀찮

아하고, 악기와 노래를 스스로 배우기 보다는 누군가가 행한 작품을 접하는 것을 즐기고... 그

결과 다수가 만나도 '무얼해야 할지 몰라' 알코올의 힘을 빌려 여러 가십거리를 주절거리며 그

날의 시간을 날려버리는 것!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놀 줄 모르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것 같

아 마음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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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평전 - 선지자에서 인간으로
하메드 압드엘-사마드 지음, 배명자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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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국제사회에 있어 '무슬림'은 폭력과 테러라는 불명예(이미지)로 얼룩져있다.   특히 그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IS' 는 한국의 언론매체에서 자주 드러

나, 중동상황을 잘 모르는 일반인에게도 유명한 테러단체로 인식되고 있는데, 반대로 사람들

은 그들이 일으키는 '테러' '폭파' '참수' '살인' 등의 야만을 상식에 의해 비난하고는 있지만,

어째서 그들이 야만을 선택했는가? 하는 그 근본적인 이유에 대하여는 그야말로 무지에 가까

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실제로 '당사자'와 '제삼자'의 시각차는 분명하다.   그들은 자신의 활동을 저항이라고 주

장한다.   그러나 제삼자는 그들을 정복자로 구분한다.  그러나 제삼자는 이슬람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거나 혐오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이 종교를 방패삼아 많은 폭거를 저지르는 그 행위

를 혐오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에게 있어선 그 행위도 이슬람을 위한 숭고한 행위에 속

한다.


"신은 위대하다" 그 외침과 함께 기꺼히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있어 

믿음의 결과가 아니라, 그야말로 종교적 세뇌에 속하는 가치관이다.   물론 과거 다른 종교도

그 세뇌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후 일어난 '계몽사상'의 영향으로

인간은 그 어리석음을 극복하는데 성공했고, 결국 과거의 폭주를 '오만과 잘못'으로 인정하게

하는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허나 오늘날의 이슬람 근본주의는 그야말로 수 천년전

의 옛 가치관을 그대로 맹신한다. 그들은 과거의 오류를 고치려 하지 않는다, 의심을 품지

않는다, 아니... 과거의 선지자의 행동을 무조건적으로 믿고, 따르고, 변호하기 바쁘다. 


그렇다.  저자는 이슬람의 선지자 '마호메트' 의 평전을 쓰면서, 무엇보다 계몽사상이 결여된

오늘날의 이슬람을 비난한다.오늘날의 세상은 이제 더이상 전쟁,노예,약탈을 허용하지 않

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슬람이 맹신하는 무함마드의 가치관은 그야말로 '칼과 코란' 

그리고 '전쟁을 통한 부흥'이 가능했던 근대 이전의 가치관이다.    실제로 나는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오늘날 IS가 보여준 많은 야만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적의 목을 치고, 힘을 드러내 공

포를 자아내고, 죽음의 두려움을 믿음을 통하여 극복하고, 적을 굴복시키기 위해선 적의 자궁

까지 정복해야 한다는 믿음 (오늘날 집단강간 사건으로 화제가 됨)은 모두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한 선지자 '무함마드'의 입을 통해서 등장하게 된다.


 

이상할 정도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무함마드의 지위.   실제로 그의 말은 신의 뜻

이 되었고, 심지어는 그의 행동과 말 (잘못을 포함한) 모든것이 선지자 라는 이유로 '정당화 되

기에 이른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이슬람은 모순되어 있고, 바로 그렇기 떄문에 저자는 그 모

순점을 드러내 변화를 꾀하는 '마르틴 루터'의 역활을 맡으려 한다.    그러나 이슬람사회는 그

에게 죽음을 내렸다.   단순한 이단의 경고가 아닌 '테러와 암살'을 두려워 해야 하는 '파트와'

의 선고를 받은 저자... 과연 그의 과감한 주장은 고여 썩어가는 이슬람주의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것인가?  그 결말은 나도 잘 모르겠다... 허나 분명한 사실은 이슬람이 변화하지 않으

면, 그들은 영원한 '기름'으로 남을 것이라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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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차르 - 블라디미르 푸틴 평전
스티븐 리 마이어스 지음, 이기동 옮김 / 프리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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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강한 지도자, 사이비 민주주의 국가의 '차르' VS 푸틴이 없으면 러시아도 없다.


이 극명한 시각차가 보여주는 '한 인물의 평가' 물론 상식선에서 푸틴의 '정치'를 보면, 그는 독

재자가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의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 형성된 '푸틴'은 일종의 동경과 우상

화의 대상이 되는 것 같이 느껴진다.  '푸간지' '불곰국의 큰 형님' 이 키워드에서 보여지는 푸

틴에 대한 '호의'...  과연 그들은 그 러시아의 대통령에게서 어떠한 것을 보는 것일까?   아마

 내 생각엔 그것은 강대국이 지니는 '힘'이 먼저이고, 다음에는 푸틴이라는 인간이 보여주는 결

단력과 단호함이다.


실제로 매체에서 보여지는 푸틴의 모습은 '강하다' 그러나 이 책은 반대로 그 강함을 위해서 '

러시아'가 치루는 대가가 너무 크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책은 '평전'이다.  그렇기에 책에

는 플라디미르 푸틴의 일생과 함께, 그가 일생동안 추구하고, 생각한 철학이 묻어 나오는데, (

개인적으로) 아무리 봐도 푸틴은 스스로의 야망과 비전을 가지고, 러시아의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 같지가 않다.   그는 과거 KGB 특히 은밀한 임무를 수행하는 스파이를 꿈꾸는 청

년이였고, 그후 러시아 연방시절 혼란스러운 '정치판'에 뛰어들기 보다는 '권력자 아래서' 묵묵

히 충성을 다하는 소극적인 활동을 펴 왔다. 


그러나 그 푸틴이 변했다.   '무미건조한 인물' '적어도 정치보복은 안할것이다' 라는 평가를

내린 '은인' 옐친조차도 그의 행보를 비난한다.  게다가 저자 또한 지금까지의 푸틴의 모습을

보면서 '차르'라는 칭호를 붙여주기까지 했다.  차르란 무엇인가? 옛 러시아 제국 황제의 칭호 '

카이제르' 독일어로 '카이저' 인 그 칭호는 과거 왕정시대의 절대자를 칭했다.   그렇다.  저자

에게 있어서, 푸틴은 절대자다.


그가 말하는 '하나된 러시아'를 위해서 체첸은 쑥대밭이 됐고, 이에 복수를 외치는 사람들은 러

시아 안.밖 여기저기에 테러를 일으켜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 뿐인가? 푸틴의 좁은 '페밀리'

에 속한 경찰,KGB출신 고위공직자들은 '자신들의 차르'의 눈치를 보느라 자기의 생각을 펼칠

줄 모르는 수동적인 인간이 되었고, 러시아 국민들 또한 기나긴 러시아식 투표를 겪으며 '자신

의 운명을 남에게 맡기는' 행위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러나 반대로 러시아는 전진하기도 했

다.  과거 소비에트식 공산주의를 벗어던진 이후, 일부 자본주의와 친 기업 정책을 병행한 러시

아는 그 땅의 천연자원과 잠재력을 디딤돌 삼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강국으로서 부상하

기 시작한다.  


이에 생각해 보면 푸틴은 그 부흥의 공을 등에 업고 성장했다 정의하는것도 가능하다.   그리

고 실제로 (일부)한국인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기억하는것 처럼 러시아인(일부)들도 푸틴을 부

흥의 아이콘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  푸틴은 과거에도 또 지금도 비난과 칭송이라는

두 바퀴를 단 체 '권력'이라는 마차를 몰며 달리는 중이다.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의 푸틴이

어떠한 결말을 이끌어 낼지 그 마지막이 심히 궁금해진다.   과연 '푸간지' 푸틴은 마지막 까지

자신의 권능을 지켜 낼 수 있을까?  아니면 권력자의 비참한 마지막을 상징하는 인물로 역사에

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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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 정치의 죽음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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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시절 전교회장 선거가 있었다.   최종투표를 앞두고 2명의 후보자가 마지막 연설을 했

는데, 한명은 상식적이면서도 모범적인 연설로 교직원들의 박수를 받은 반면, 다른 한명은 마

치 시장터에 등장한 광대(아니면 엿장수?) 처럼 실실대며 "급식에서 항상 돈까스가 나오게 하

겠다."  "매점에 보다 다양한 음식을 진열하겠다..." "회장되면 한턱 쏜다!" 같은 실현시키기 힘

든 공약을 쏟아내며, 농담반 진담반 회장자릴 구걸했다.


 

과연 전교회장의 자리는 누구에게 돌아갔을까?  놀랍게도 학생들은 두번째 후보자를 회장으로

뽑았다.   그러나 '당연하게도'그 후 급식은 물론, 한턱에 이르기까지 회장의 공약은 단 한개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회장이나 학생 모두 앞으로의 학생 생활에 있어 특별한 접접없이 (서

로의)졸업을 맞이하게 된다. 


 

그야말로 순간의 이벤트로 끝난 '선거' 그러나 내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당시 학생들

대부분이 '그의 말에는 실현성이 없다.' 라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많은 학생들은 '성실보다는 불성실을' '상식보다는 비상식을' '이상보다는 순간적인

선동'에 더욱더 친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째서? 물론 그것에는 3년이면 끝날 학교에

그다지 애정이 없었던 탓도 있을 것이고, 단순히 모범에 대한 반발심을 투표로 표현했을 가능

성도 있다.   물론 나 또한 그때의 순간 이후 그 현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오랜세월이 지난 '오늘날'  다시 한번 그때와 같은 현상이 나의 눈앞에 드러난다.   그것도 한

낮 학교나, 동대표 선거가 아닌 '미국의 대선에서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그는 정말로 정의하기 힘든 인물이다.   물론 일부 언론을 통한 모습으로 판단

한 트럼프는 막말을 시작으로 비상식으로 끝을 보는 인물로 그려지며, 특히 그들 반대하는 이

들의 주장을 분석하면 '상식없는' '교양없는' '무식한' 등으로 그가 '정치인' '미국의 대표' 로

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수없이 등장하고 있다.    그렇기에 한국도 '처음엔' 트럼프 라

는 인물을 미국의 허00 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그가 '공화당'의 대세가 될 줄 누가 알

았겠는가?  


정말로 미국인들은 멕시코장벽, 보호무역, 이슬람탄압, "위대한 미국" 을 외치는 그의 말에 열

광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이 책의 저자는 트럼프의 과거를 통해서 트럼프의 오늘을 진단

함은 물론, 오늘날 미국에 형태를 드러내고 있는 '트럼프 현상'의 참된 이유를 분석하

고자 했다. 


이에 드러난 저자의 주장,  역시나... 트럼프현상은 그때의 우리의 모습이였다.   겉으로는 교양

있게, 상식있는 척하지만, 지금까지 실망만을 안겨준 미국의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감, '세계

를 위한 미국'에서 '미국을 위한 미국'이라는 구호에 열광하기 시작한 상식의 변화, 점점 트럼

프를 '오늘날 미국의 빈칸을 체워줄 인물'로 느끼기 시작한 사람들의 심정... 이것들이 트럼

프라는 구심점으로 모여들어, 거대한 지지도를 형성한다.   과거에는 없었던 새로운 유형... 아

니 일부 사람들은 파시즘의 부활이라 주장하지만, 저자는 현대 미디어가 만들어낸 '익숙

한 인물'이 바로 트럼프 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책은 어디까지나, 여러팩트가 모여 형성된 저자의 주관된 정의이기 때문에, 독자'로

서 그 내용에 완전히 의지한다는 것은 나름 조심스러워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기주관없

이 무분별하게 '정보'를 받아들인 결과는 언제나 '잘못'을 범하게 되어 있는 법이다.   그렇기

에 나는 개인적으로 트럼프라는 인물을 마주하기 위해서 나름의 주관을 가진다.   그는 분명 유

능하다.  그리고 남들보다 뛰어난 야심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실현할 의지 또한 뚜렷한 인물

로 그려진다.    그러나 반대로 나는 그가 정치인이자, 대통령이라는 명함까지 지니는 욕심은

부디 거두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품고있다.   성공한 부동산 기업가, 유명한 버라이어티 기

획가, 베스트셀러 작가, 멘토, 카사노바?... 그가 "위대한 미국"을 위해서 헌신할 다른 길은 얼

마든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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