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로 이야기 1 - 세 어머니
시모무라 고진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09년 4월
평점 :
나는 오늘 아프고 더디지만 끝까지 지켜보고 싶은 한 소년을 만났다.
못생긴 지로.
낳아준 어미와의 원초적인 애정도 거부된 채 유모의 손에 의해 길러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환경 앞에서 당당하게 제 모습을 마주하던 대견한 아이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지로이다.
이 책의 저자인 시모무라 고진은 [지로 이야기]를 5부작으로 나누어 20여년에 걸쳐 쓴 만큼 내용도 분량도 방대하였다. 간단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캐릭터를 파악하는 단편소설과는 달리 한 사람의 일생을 함께 지켜보는 성장소설이기 때문에 책을 다 읽고 난 후 지로는 내가 마치 오래전부터 알았던 아이인 듯 하여 함께 울고 웃었던 것 같다.
지로는 세 명의 어머니가 있다.
한 명은 지로를 나아준 친 어머니 오타미, 다른 한 명은 핏덩이때부터 지로를 키운 유머 오하마,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새로 맞이한 새어머니 오요시 이렇게 세 명의 각기 다른 사람으로부터 서로 다른 방식의 모성애를 느끼게 된다. 친어머니는 엄격한 훈육방법으로 지로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항상 빗나가고 오히려 둘 사이를 더 멀게만 하도록 한다.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못하고 자꾸 엇갈리기만 엄마와 아들의 사랑이 아프기도 했지만 결국 지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머니를 사랑하는 법을 깨우친다. 이에 비해 오요시는 유모로써 깍듯이 도련님이라는 칭호를 붙이며 지로를 키우고 무한한 애정을 쏟는다. 그러나 그 애정이 지로에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로가 어엿한 한 사람으로 자라는데 방해가 될 때도 있지만 지로에게 언제나 엄마품과 같은 따뜻함과 사랑을 주어 지로가 올곧게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마지막으로 순스케는 다른 사람도 아닌, 지로를 위해 재혼을 결심하여 오요시를 맞이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성격으로 지로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한다. 대신 그녀 친가의 아버지와 남동생이 지로를 위해 멋진 인생의 조언자가 되어 곁에서 든든하게 바라봐준다.
이렇게 지로는 자기가족과 세 명의 어머니, 주변의 관계되는 모든 인물들로부터 크고 작은 영향을 받으면서 스스로 자아에 눈뜨게 된다. 어릴 때는 유모와 외가 사람들을 제외하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아버지 순스케만은 지로의 어린마음을 잘 보듬어주고, 올곧게 자랄 수 있도록 좋은 본보기를 보여준다. 어찌보면 어린 시절 지로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아버지의 세계를 동경하며 스스로를 다잡아간 것인지도 모른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지로를 지켜봐준 순스케는 지로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삶의 스승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는 지로라는 한 인물이 자라나는 동안 그가 어떻게 성장하고 발전하는 지를 가슴으로부터 느끼도록 도와준다. 하나의 사건을 통해, 혹은 한 아이가 보여주는 작은 행동을 통해 우리는 그가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이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과, 그리고 본연의 자신과 마주하고 서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자신을 한 없이 미워하던 할머니와의 관계마저 혼자만의 힘으로 개선시키는 모습에서는 그동안 지로가 속으로 흘렸을 눈물과 괴로움이 생각나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그렇게 올바르게 성장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모습에서는 대견함에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을 정도였다.
책은 다 읽었지만 아직 지로의 이야기는 더 남아있다. 2,3편을 통해 지로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또 어떤 세상을 만나게 될지 사뭇 궁금하다.
하지만 난 이미 지로를 믿는다.
그가 혼자서 깨우치고 다져가며 스스로 일어서는 모습 속에서 그가 되려고 하는 미래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보였기에 마음속으로부터 깊은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