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숨 쉬러 나가다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언제부턴가 사회고발성격의 책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참 좋은 세상,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교과서적 포장에 길들어온 내가 스스로 찾아 본 ‘진짜’세상은 그렇게 따뜻하고 밝은 곳이 아니었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이야기가 딱 들어맞는 그런 곳이 내가 숨 쉬고 살아가는 세상이었는데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는 걸까 새삼스레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아마도 내가 여전히 책을 즐겨 읽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올해 초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어리석은 인간사회를 우화적으로 비판한 그의 풍자적 위트에 넋이 나갔다면, 함께 읽은 그의 저서 ‘위건부두로 가는 길’은 마치 한 편의 다큐를 글로 옮겨 놓은 것 같아 놀랍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조지오웰이라는 작가에 대한 기대가 하늘을 찌를 때 쯤 만난 세 번째 작품이 바로 ‘숨 쉬러 나가다’였다.
암울하고 답답한 현실과 그에 따른 불안이라는 주제 때문에 많이 무거울거란 예상을 뒤로 하고 한 편의 콩트를 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소설이었다. 오히려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읽었을 때는 탄광촌의 삶과 그곳에서 생활하는 노동자들의 하루하루가 생생히 고발되어진 활자 속에서 질식될 것 같고 우울하기만 했는데 이 책은 어딘가 통통 튀는 매력마저 느껴진다. 이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비극을 뛰어넘는 블랙코미디라는 말이 제격이라고 생각된다. 분명 비극적이고 슬픈 현실이 드러나지만 울어야 하기 보다는 어이없게도 실소가 터져 나오는 그런 느낌말이다.
여기 뚱뚱한 중년의 보험 영업사원이 있다. 토끼같은 자식과 여우같은 마누라사이에서 벗어나고픈 일탈을 꿈꾸는 그는 우연히 생긴 공돈으로 그 소망을 실행에 옮긴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회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고민하던 그가 선택한 것은 멋진 여자와의 하룻밤도, 물 좋은 곳에서 환락의 밤을 보내는 것도 아니었다. 엉뚱하게도 20년 전 떠나온 고향을 찾아가는 것. 마치 우연히 낡은 서랍 속 한 구석에 쟁여놓았던 오래된 노트를 펼친것인양 어린 시절의 추억이 몽글몽글 되살아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곳에서라면 지금과는 다른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숨통이 트일 수 있을것이리라 그는 생각했더랬다. 허나 내가 지금까지 치열하게 살아오고 있었다면 나의 고향 역시 그런 시간을 함께 견디었을거란 걸 예상하지 못한 그의 선택이 어리석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 과거로 돌아가 본다는 생각일랑은 끝이다. 소년시절 추억의 장소에 다시 가본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런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 숨 쉬러 나가다니! 숨 쉴 공기가 없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쓰레기통 세상의 오염은 성층권에까지 도달해 있다.” [숨 쉬러 나가다 중]
숨 쉴 현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없었던 것이다. 지금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좋았을 것처럼 그 어딘가를 꿈처럼 찾아보지만 결국 내가 보고 느끼는 이 공간이 최종 도착지였음을 진작에 알았어야 했다. 이렇게 조지오웰의 작품 속에서 만난 시대는 도대체가 희망이 없어 보인다.
“3페니로 고기는 얼마 못 사지만 ‘피시 앤드 칩스’는 충분히 살 수 있다. 우유 한 파인트가 3페니고 ‘순한’ 맥주도 4페니나 되지만, 아스피린 1페니에 일곱 알이며 차는 4분의 1파운드 한 다발로 40잔을 짜낼 수 있다. 단연 돋보이는 것은 모든 사치 중에서도 가장 값싼 도박이다.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이라 해도 당첨금에 1페니를 걸어봄으로써 며칠간의 희망을(그들 말대로 “삶의 이유가 되는 무언가를”) 살 수 있는 것이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중]
당장 먹고 살 돈이 부족하면서도 도박으로 단 며칠의 희망을 사는 그들, 아니 우리들이 사는 세계가 이런 곳이다. 그렇지만 그의 글이 우울하고 비참해서 숨통이 막힐 지경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도 조지오웰이 냉철하게 현실을 파악해가는 모습이나 그럼 그렇지라고 간단하게 인정해버림으로써 현실을 슬픈 현실이 아닌 ‘그 자체’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준다.
“그렇다면 현대 생활의 현실이란 대체 무엇인가? 아마 제일 주된 것은 무언가를 팔기 위한 끊임없는 광적인 발버둥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자신을 파는 형식을 띤다. 달리 말해 일자리를 구하고 자리를 보존하는 것이다... 그런 현실은 인생살이에 참 별나고 살벌한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생존자는 열아홉 명인데 구명튜브는 열네 개밖에 없는 난파선에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게 특별히 현대적인 형상인가, 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전쟁과는 무슨 상관인가? 나로서는 전쟁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싸우고 부산을 떨어야 한다는 느낌, 남한테서 빼앗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리라는 느낌, 내 자리를 노리는 누군가가 반드시 있다는 느낌, 다음달이나 그 다음달이면 감원이 있을 것이고 이번은 내 차례일 것이라는 느낌.” [숨 쉬러 나가다 중]
부족한 난파선의 구명튜브를 붙들려고 혹은 붙들기 위해 발버둥치는 나란 인간이 바로 여기에도 있었다. 그런데 간신히 붙든 튜브에 작은 구멍이 뚫려있어 얼마 가지 못한다는 걸 알았을 때의 그 상실감이란?!!! 그걸 깨닫고 몸서리를 치는 인간...이 바로 나인지도 모른다.
숨 쉬러 나가고 싶어 뛰쳐 나가보지만 결국엔 숨 쉴 곳마저 찾지 못하는 이 잔인한 현실이여~ 70년 전 이나 지금이나 어찌 그리 변한 것이 없는지 놀랍기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