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이야기 -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애니 레너드 지음, 김승진 옮김 / 김영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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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터넷 뉴스를 통해 우리나라의 휴대폰 교체주기가 26.9개월로 2년 정도라는 것을 알았고 스마트 기기의 대세로 휴대폰수도 2개 이상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추세라는 기사를 읽었다. 사실 난 물건에 대한 애착이 강한 편이라서 새로운 물건들을 자주 구입하지도 않고 구입하더라도 기존의 물건을 바로 버리는데 상당히 망설여진다.

휴대폰을 사용한지 12년째이지만 지금 쓰는 건 3번째이고 바꾸게 된 계기도 고장이 나서 더 이상 수리가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을 경우였다.

그래서 나에게는 카톡이니 어플이니 하는 말이 딴 나라 세상 이야기다. 오늘도 2G폰을 무상으로 교체해 주겠다는 홍보전화를 2통이나 받았고 주위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다느니 트렌드를 역행한다느니 말이 많지만 난 전혀 개의치 않는다.

각종 어플을 다운받아 즐거운 디지털 세상을 맛보는 것보다는 아직까지 그 시간에 책을 읽는 걸 더 좋아라하기 때문이다. 전자책 기능이 좀 부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필요 이상의 제품 교체나 소비에는 반대하는 입장인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나의 신념이 더욱 굳건해졌다.

 

이 책의 저자는 20년 이상 전 세계의 쓰레기장, 광산, 공장, 농장 등을 찾아다니며 모든 물건의 라이프사이클을 집요하게 조사하여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혹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던 물건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적나라하게 들려주고 있었는데 이는 생각보다 간단하지도 않았고 불편한 진실을 다시 확인해야 했던 작업이었다.

 

모든 쓰레기는 각각 광산에서의 추출, 삼림이나 농장에서의 수확, 공장에서의 생산, 공급망을 따라 이동하는 기나긴 여정 등을 아우르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추출과 생산과 유통에 그렇게 많은 노력을 들여놓고는 그 자원들을 땅에 파묻다니,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다시 한 번 말하겠다. 이 지구상에 있는 자원의 양은 유한하다. 우리는 그것을 다 써가고 있다. 땅속에 자원을 파묻어버리는 것은 아주 멍청한 짓이다. [본문 중]

 

물건을 만들고 버리기까지 ‘추출-생산-유통-소비-폐기’의 단계를 거치는 동안 우리의 지구는 점점 생명을 잃어갈 것이고 한정된 지하자원은 인류의 생존권마저 위협하는 단계이다. 당장 내 앞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기에는 다음 세대에게 전해질 피해가 엄청나다. 소비, 특히 과소비로 인해 이런 위험한 사이클은 가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렇다고 당장 소비를 중단하라는 말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기를. 과소비를 줄이고 재활용품을 활용하고 전자기계를 ‘업그레이드’하는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모든 이들이 상기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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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는 도련님
백가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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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단편집을 읽는 일이 그리 유쾌하거나 인상적이게 느낄만큼 기대하지도 않는다.

이는 책을 읽는 나의 개인적인 취향탓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글을 잘 쓰는 작가란 단편집으로 독자를 매료시키는 힘을 가지는 사람이기에 그동안 읽었던 작품 중에서 만족스런 작품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최근에 읽었던 작품 중에는 하진의 『멋진 추락』정도가 그나마 단편을 읽는 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고 할까.

 

그런데 이 책. 별 애정 없이 커다란 기대 없이 심드렁하게 책을 펼쳤다가 뭔가 반짝반짝 빛나는 원석을 발견한 느낌이었다...라면 좀 과하려나? 아무튼 내딴에는 단편집에 대한 나름대로의 까다로운 기준선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 작가는 그 기준을 훌쩍 뛰어넘는 읽을거리를 제공했다. 주위의 많은 지인들은 저자의 전작들이 워낙 폭력적이고 남성적이라서 이 책이 과연 그 저자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라는데 솔직히 나는 전작을 읽어보지 않아서 이 부분에서는 어떤 평도 하지 못하겠다. 다만, 현실의 바라보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독자들의 눈에까지 스트레이트로 투영시켰던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특히 책 속에는 마치 저자 자신의 이야기인양 소설을 쓰는 작가의 이야기가 사실적으로 등장하고는 하는데 이 주인공들의 생활을 지켜 보다보면 정말 글 쓰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감히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리얼한 심리와 현실상황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마감에 쫓겨 허둥대고 편집자의 전화를 가장 무서워하는,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글을 쥐어짜내려는 그 간절함과 촉박함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단편 『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역시 이야기의 실체를 조심조심 따라가다 보면 괴기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갑자기 마을에서 실종된 인물들을 둘러싸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시간과 공간을 거치면서 엄청난 크기로 과장되기에 이르고 그런 소문들이 단련되는 과정들은 ‘공포’라는 한 단어로 귀결되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하나하나의 단편들이 닮고 있는 누군가의 인생, 또 다른 누군가의 고난하기 그지없는 삶들을 작가는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도 섣부른 동정을 바라지도 꼬일대로 꼬여만 가는 비참함으로 무장하지도 않는다. 이런 오버스럽지 않은 팽팽한 긴장감을 짧지만 강하게 유지하고 있기에 그의 이번 단편이 왜 대단한가를 증명하는 것으로 보여 졌다.

그래서 난 짧은 호흡 속에서 계속 전진하는 이야기의 즐거움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이 책을 건네주련다. 아~ 이 마약 같은 단편의 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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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전 1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시공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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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움베르토 에코라 불리는 Arturo Pérez-Reverte. 국외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이미 상당수의 전작들이 출간되었는데 나는 이 작가의 작품을 『공성전』으로 처음 접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이름도 낯설었는데 ‘공성전’이라는 제목조차도 뜻을 가늠할 수 없어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은 거대한 체스판에서 한 판 재미나게 놀아본 느낌이랄까? 700여 페이지를 훌쩍 넘는 방대한 양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놓고 싶지 않은 이야기의 향연에 제대로 빠졌던 게 분명했다. 역사와 전쟁, 과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훨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텐데 나는 너무 무지해서였는지 초반에는 시대상황과 전투용어(?)등이 생각보다 이해하기가 어려워 전체 이야기의 1/3 정도를 읽었을 즈음에야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정리되기 시작했다.

우선 제목인 ‘공성전’의 의미를 보자면, 쉽게 말해 성이나 요새를 빼앗기 위하여 벌이는 싸움인데 이 책에서 보면 1800년대에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함락시키기 위해 작은 항구 도시 카디스를 공략하기로 하면서 치열한 공성전이 발생하게 되었다. 프랑스는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위해 물리 교사였던 ‘데스포소 대위’를 전쟁에 참여시켜 사정거리가 길면서도 위력이 큰 ‘포’를 개발하도록 지시하는데 계속되는 실험에도 불구하고 카디스를 폐허로 만들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만한 포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데스포소 대위가 집착하는 건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신이 과학적인 이론을 토대로 계획하는 이상적인 포를 만들어내는가에 있었다. 그리하여 더 높은 진급을 시켜준다고 해도 마다하고 오로지 포를 개발하고 실험하는 데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이 길고긴 전쟁 중에도 카디스에서는 끔찍한 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어 살인자를 잡으려는 형사 티손은 또 다른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어린 소녀들을 끔찍하게 채찍으로 고문해 살해하는 엽기적인 살인자에 분노한 티손은 제 손으로 반드시 범인을 잡겠다고 결심하며 카디스 과학자협회를 이끄는 바룰교수에게 조언을 구한다. 특이한 점은 이 두 사람이 항상 체스를 두면서 살인과 프랑스 포격, 자연과 과학등 여러 전문적인 지식을 넘나드는 대화를 통해 살인사건을 해석하는데 이 둘의 대화를 듣다보면 작가의 지적역량이 얼마나 큰 것인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의문의 연쇄 살인을 두고 추리할 수 있는 여러 인물들 또한 상당히 매력적이고 개성적이기에 이 부분만 똑 떨어뜨려 놓고 보아도 한 편의 스릴러물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비극적인(?) 이야기인 롤리타 팔마와 로보 선장의 사랑이야기는 책을 읽는 내내 가슴 졸이게 만들었는데 해상무역을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한 집안의 장녀인 롤리타 팔마는 아버지와 오빠가 죽고 나서 자신이 대를 이어 사업을 이어나가고 이 와중에 로보 선장을 만나 독신생활에 종지부를 찍어도 좋을 아련한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전쟁은 평범하기만 한 두 남녀의 사랑마저도 잔인하게 짓밟는다는 걸 우리는 얼마나 많은 책과 영화에서 보아왔던가! 목숨을 다 바쳐도 좋을 만큼 달달하거나 애절한 로맨스는 아니지만 담백하면서도 조금은 미지근한 이들의 사랑이 전체적인 책의 분위기에 어울려 더 오래 기억이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이야기로 재현하는 데에 큰 도움이 얻었다는 스페인 카디스의 모습>




당장 포탄이 내 집 앞에 떨어져 목숨이 위태로운 전시 중에도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위치에서 삶을 살아간다. 살인을 하는 범죄자가 있고 또 그 범죄자를 쫒는 형사가 있고 치열하게 사업을 하는 사업가가 있음은 물론 사랑에 빠지는 연인이 되기도 한다. 즉 이 책의 배경이 비록 1800년대 스페인의 카디스를 중심으로 하는 전쟁상황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초점은 결코 전쟁에 맞춰지지 않는다. 그 작은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 인물들의 삶과 살아가는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언젠가 읽었던 ‘하진’의 <전쟁쓰레기>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거대한 장기판위의 말처럼 아무 이유 없이 조종당하고 희생되었던 수많은 군인들처럼 이 책 속의 인물들 역시 카디스라는 체스판 위에서 쉼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다만, <전쟁쓰레기>가 전쟁의 비극을 역설적으로 극명하게 다루고 있는데 반해 이 책은 오히려 개인의 인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좀 다르기는 하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역사무대는 인간이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삶이 어떻게 농락당하게 되는 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감추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와 로맨스, 그리고 스릴러가 제대로 어우러진 이 책의 재미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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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7일 전쟁 카르페디엠 27
소다 오사무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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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난 책을 읽고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한 쪽 가슴이 쏴~한게 소주한 잔이 땡기기도 하는 요상한 기분이 든다.
그건 아마도...내가 어른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중 1 학생들의 ‘표적’이 되어버린 어른,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말이다.
책 리뷰를 쓰면서 몇 번 언급했던 것 같은데 난 아이들이 주인공인 성장소설이 참 좋다.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고스란히 전달해져오는 씁쓸함과 아련함도 있지만 또 그런 느낌 뒤에 오는 어떤 ‘밝음’ 혹은 ‘훌쩍 커버린 느낌’이 가슴을 따뜻하게 할 때가 많아서이다.

이 책도 어떻게 보면 그런 성장소설류로 생각할 수 있는데 기존의 책들과 비교해서 좀 색다르다고 한다면 힘든 상황에 처한 청소년기의 주인공들을 통해 개인적인 면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아이 vs 어른, 사회라는 대립구도를 통해 아이건 어른이건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을 성장시킨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여름 방학 종업식 날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중학교 1학년 2반의 남학생들은 그렇게 하루 사이에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는데 그들은 누군가에게 유괴된 것도 어딘가로 이유 없이 훌쩍 떠난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동네 폐 공장에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고 선전포고를 시작했다. “지금부터 해방구 방송을 보내드리겠습니다.”라는 방송을 시작으로.

사실 책을 읽은 초반에는 아이들이 도대체 왜 이러나 싶었고 중학교 1학년들이 하기에는 너무 어른스럽고 정교한 계획들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딘가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내용들도 그랬고 내가 아는 중학교 1학년생들을 떠올리면 더욱 더 이 아이들을 순수한 ‘아이들’로 생각하기가 버거웠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지금 이 책의 주인공들, 어른과 악취 나는 세상에 큰 목소리를 낸 아이들이야말로 멋진 주인공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작가의 탁월한 선택에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이 몇 살이라도 더 큰 아이들이었다면 이렇게 완벽한 계획을 세우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함께 하고 단결하는 것조차 버거웠을지 모른다. 단지 이 아이들은 아직 세상이 어떤 곳이라는 걸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용기 있는 행동을 과감하게 저지를 수 있었을 테고 이는 어떤 순수함의 발로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다.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수록 뭔가를 하고자 하는 의욕이나 세상에 역행하는(?) 행동을 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오죽했으면 옛날 한 광고에서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좋다. ”라는 카피가 큰 화제가 되었을까? 이는 그만큼 우리 사회는 ‘아니오’라고 말 할 수 있는 용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려주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 책의 아이들은 더 이상 어른들의 세계가 옳지 않다고,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겠다고 거침없는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비리와 더러움으로 얼룩진 세상을 하나하나 꼬집으면서 어른들의 얼굴을 낯 뜨겁게 하는 가하면, 진짜 유괴된 아이를 구출하기도하고 그 유괴범에게 멋진 선물(?)을 선사하기도 한다. 자신들은 더 이상 어른들에 의해 잘 길들여진 인형이 아님을 증명하는 시간들이 유쾌하게 그려져 전달하고자 하는 전체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우울한 글이 아니다. 사실 이 아이들의 행동은 1968년도에 일본 열도를 들끓게 한 ‘전공투’ 사건을 오버랩 시켜준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전공투 사건이란 60년대 후반 고도경제성장과 함께 격화의 길을 걷고 있던 일본에서 전국 국공립 대학의 수업료 인상반대, 학원 민주화를 요구하며 전국적으로 학생운동이 일어난 것이었다. 행동하는 지성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사건인데 이 아이들의 부모세대가 바로 이 전공투 세대라는 점이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그들 역시 한때는 더러운 세상에 올바른 기준을 제시하면서 맹렬히 싸웠지만 세월이 흘러 그들이 적대시했던 그 사회에 그럭저럭 적응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씁쓸한 여운마저 안겨준다.

어쨌든 7일간 어른들과 전쟁을 치룬 아이들은 ‘진정한 승리’를 거둔 것이 명백해 보인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해야 했는지를 하나된 목소리로 전달했고 그래서 어떤 게 행복한 삶인지를 어른들 스스로가 반문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래서 난 이 아이들에게 주저 없이 항복하려 한다. 이미 내 마음속에는 온통 하얀 ‘백기’가 펄럭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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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뇌를 써라 - 뇌의 부정성조차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뜻밖의 지혜
강동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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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뇌?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나쁜 뇌가 무엇인가가 가장 호기심이 컸었다. 인간이 가진 뇌를 좋고 나쁨이라는 이분법적으로 구분해서 생각해 본 적이 나는 한 번도 없었는데 나쁜 뇌를 쓰라니...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저자 소개를 보니 뇌 의학자였으니 뭔가 전문적이고 어렵지 않을까 싶은 두려움도 살짝 있었지만 그건 책 몇 페이지만 읽어도 성급한 걱정이었음이 드러난다. 여러 가지 재미있고 독특한 그림들을 가지고 쉽게 설명된 다양한 뇌와 인간의 특별한 실험이야기들이 은근히 책을 놓지 못하게 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인터넷 웹 사이트를 서핑하다보면 인간의 착각이나 시각적 관점에 따라서 다양하게 보여 지는 신기한 그림들을 테스트 하는 것들을 종종 만나게 될 때가 있는데 이 책에 소개된 그림들이나 예들이 그런 종류의 것들과 비슷하다. 언뜻 보면 뇌 관련 책이라기보다는 심리학 책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인간의 신비한 행동패턴이나 특별한 사례들을 소개해주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 이런 현상은 인간의 뇌에 어떤 특별한 장애가 생겼을 때, 혹은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어떤 특별한 뇌의 작용으로 인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 게 사실이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언급한 나쁜 뇌라는 건, 쉽게 말해서 우리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뇌의 영역들이다. 즉, 쉽게 어떤 선택이나 결과를 합리화 해버리는 뇌라든가 왜곡하는 뇌, 또는 망각해 버리는 뇌 등 인간의 뇌가 수행하는 능력 중에서 우리가 ‘나쁘다’고 인식하는 뇌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일반 사람들이 누군가의 천재적인 기억력을 부러워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망각하는 능력은 괴롭고 안 좋았던 기억들, 슬펐던 기억들을 잊게 해줌으로써 삶을 영위하도록 도와준다는 관점이다. 혹은 실패를 곱씹고 또 곱씹음으로써 괴롭게 살지 않도록 우리의 뇌는 어떤 상황을 ‘합리화’하도록 함으로써 불편했던 기억과 감정상태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준다.

언젠가 EBS에서 기억에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방송해 준 기억이 있다. 그때 어떤 여자가 등장했는데 그녀는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자신의 과거를 영화를 보듯이 날짜별로 모두 기억해내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과거를 회생하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문제는 슬프고 끔찍했던 기억마저 평생 생생한 채로 간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 질 프라이스]

아! 얼마나 힘들까? 때때로 인간은 술이라는 것을 통해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으려고 인위적으로 노력하기까지 하는데 이 여자는 그런 기억들을 매일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으니 말이다.


 

책에도 이 여성의 이야기가 언급되는데 이렇게 저자는 뇌가 가진 나쁜 면, 아니 다르게 말해서 나쁜 것이라고 사람들에 의해 인식되어진 반대적 특성들을 잘 활용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기억-망각, 몰입-중독, 집중-산만’ 과 같은 뇌의 양쪽 측면을 적절한 균형을 통해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데 주목한다. 인간의 뇌는 어느 한쪽만 부각된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이렇게 반대 급부적인 특성이 골고루 상황에 맞게 작용할 때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더욱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흐는 미치지 않았다. 그는 측두엽 뇌전증이라는 병을 앓았을 뿐이다. 측두엽 기능의 변화가 그의 창조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는 분명한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치밀하게 계획하는 뇌로 그림을 그렸다. 고흐는 뇌전증과 하이퍼그라피아라는 한쪽과 계획과 치밀함이라는 다른 쪽 사이를 오갔던 사람이다. 그는 ‘그림’이라는 목적을 위해 측두엽과 전두엽의 긴장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점을 찾으며 줄타기를 했던 창조자였던 것이다.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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