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들의 7일 전쟁 ㅣ 카르페디엠 27
소다 오사무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참 재미난 책을 읽고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한 쪽 가슴이 쏴~한게 소주한 잔이 땡기기도 하는 요상한 기분이 든다.
그건 아마도...내가 어른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중 1 학생들의 ‘표적’이 되어버린 어른,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말이다.
책 리뷰를 쓰면서 몇 번 언급했던 것 같은데 난 아이들이 주인공인 성장소설이 참 좋다.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고스란히 전달해져오는 씁쓸함과 아련함도 있지만 또 그런 느낌 뒤에 오는 어떤 ‘밝음’ 혹은 ‘훌쩍 커버린 느낌’이 가슴을 따뜻하게 할 때가 많아서이다.
이 책도 어떻게 보면 그런 성장소설류로 생각할 수 있는데 기존의 책들과 비교해서 좀 색다르다고 한다면 힘든 상황에 처한 청소년기의 주인공들을 통해 개인적인 면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아이 vs 어른, 사회라는 대립구도를 통해 아이건 어른이건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을 성장시킨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여름 방학 종업식 날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중학교 1학년 2반의 남학생들은 그렇게 하루 사이에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는데 그들은 누군가에게 유괴된 것도 어딘가로 이유 없이 훌쩍 떠난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동네 폐 공장에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고 선전포고를 시작했다. “지금부터 해방구 방송을 보내드리겠습니다.”라는 방송을 시작으로.
사실 책을 읽은 초반에는 아이들이 도대체 왜 이러나 싶었고 중학교 1학년들이 하기에는 너무 어른스럽고 정교한 계획들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딘가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내용들도 그랬고 내가 아는 중학교 1학년생들을 떠올리면 더욱 더 이 아이들을 순수한 ‘아이들’로 생각하기가 버거웠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지금 이 책의 주인공들, 어른과 악취 나는 세상에 큰 목소리를 낸 아이들이야말로 멋진 주인공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작가의 탁월한 선택에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이 몇 살이라도 더 큰 아이들이었다면 이렇게 완벽한 계획을 세우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함께 하고 단결하는 것조차 버거웠을지 모른다. 단지 이 아이들은 아직 세상이 어떤 곳이라는 걸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용기 있는 행동을 과감하게 저지를 수 있었을 테고 이는 어떤 순수함의 발로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다.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수록 뭔가를 하고자 하는 의욕이나 세상에 역행하는(?) 행동을 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오죽했으면 옛날 한 광고에서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좋다. ”라는 카피가 큰 화제가 되었을까? 이는 그만큼 우리 사회는 ‘아니오’라고 말 할 수 있는 용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려주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 책의 아이들은 더 이상 어른들의 세계가 옳지 않다고,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겠다고 거침없는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비리와 더러움으로 얼룩진 세상을 하나하나 꼬집으면서 어른들의 얼굴을 낯 뜨겁게 하는 가하면, 진짜 유괴된 아이를 구출하기도하고 그 유괴범에게 멋진 선물(?)을 선사하기도 한다. 자신들은 더 이상 어른들에 의해 잘 길들여진 인형이 아님을 증명하는 시간들이 유쾌하게 그려져 전달하고자 하는 전체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우울한 글이 아니다. 사실 이 아이들의 행동은 1968년도에 일본 열도를 들끓게 한 ‘전공투’ 사건을 오버랩 시켜준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전공투 사건이란 60년대 후반 고도경제성장과 함께 격화의 길을 걷고 있던 일본에서 전국 국공립 대학의 수업료 인상반대, 학원 민주화를 요구하며 전국적으로 학생운동이 일어난 것이었다. 행동하는 지성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사건인데 이 아이들의 부모세대가 바로 이 전공투 세대라는 점이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그들 역시 한때는 더러운 세상에 올바른 기준을 제시하면서 맹렬히 싸웠지만 세월이 흘러 그들이 적대시했던 그 사회에 그럭저럭 적응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씁쓸한 여운마저 안겨준다.
어쨌든 7일간 어른들과 전쟁을 치룬 아이들은 ‘진정한 승리’를 거둔 것이 명백해 보인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해야 했는지를 하나된 목소리로 전달했고 그래서 어떤 게 행복한 삶인지를 어른들 스스로가 반문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래서 난 이 아이들에게 주저 없이 항복하려 한다. 이미 내 마음속에는 온통 하얀 ‘백기’가 펄럭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