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전 1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시공사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스페인의 움베르토 에코라 불리는 Arturo Pérez-Reverte. 국외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이미 상당수의 전작들이 출간되었는데 나는 이 작가의 작품을 『공성전』으로 처음 접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이름도 낯설었는데 ‘공성전’이라는 제목조차도 뜻을 가늠할 수 없어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은 거대한 체스판에서 한 판 재미나게 놀아본 느낌이랄까? 700여 페이지를 훌쩍 넘는 방대한 양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놓고 싶지 않은 이야기의 향연에 제대로 빠졌던 게 분명했다. 역사와 전쟁, 과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훨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텐데 나는 너무 무지해서였는지 초반에는 시대상황과 전투용어(?)등이 생각보다 이해하기가 어려워 전체 이야기의 1/3 정도를 읽었을 즈음에야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정리되기 시작했다.

우선 제목인 ‘공성전’의 의미를 보자면, 쉽게 말해 성이나 요새를 빼앗기 위하여 벌이는 싸움인데 이 책에서 보면 1800년대에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함락시키기 위해 작은 항구 도시 카디스를 공략하기로 하면서 치열한 공성전이 발생하게 되었다. 프랑스는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위해 물리 교사였던 ‘데스포소 대위’를 전쟁에 참여시켜 사정거리가 길면서도 위력이 큰 ‘포’를 개발하도록 지시하는데 계속되는 실험에도 불구하고 카디스를 폐허로 만들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만한 포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데스포소 대위가 집착하는 건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신이 과학적인 이론을 토대로 계획하는 이상적인 포를 만들어내는가에 있었다. 그리하여 더 높은 진급을 시켜준다고 해도 마다하고 오로지 포를 개발하고 실험하는 데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이 길고긴 전쟁 중에도 카디스에서는 끔찍한 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어 살인자를 잡으려는 형사 티손은 또 다른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어린 소녀들을 끔찍하게 채찍으로 고문해 살해하는 엽기적인 살인자에 분노한 티손은 제 손으로 반드시 범인을 잡겠다고 결심하며 카디스 과학자협회를 이끄는 바룰교수에게 조언을 구한다. 특이한 점은 이 두 사람이 항상 체스를 두면서 살인과 프랑스 포격, 자연과 과학등 여러 전문적인 지식을 넘나드는 대화를 통해 살인사건을 해석하는데 이 둘의 대화를 듣다보면 작가의 지적역량이 얼마나 큰 것인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의문의 연쇄 살인을 두고 추리할 수 있는 여러 인물들 또한 상당히 매력적이고 개성적이기에 이 부분만 똑 떨어뜨려 놓고 보아도 한 편의 스릴러물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비극적인(?) 이야기인 롤리타 팔마와 로보 선장의 사랑이야기는 책을 읽는 내내 가슴 졸이게 만들었는데 해상무역을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한 집안의 장녀인 롤리타 팔마는 아버지와 오빠가 죽고 나서 자신이 대를 이어 사업을 이어나가고 이 와중에 로보 선장을 만나 독신생활에 종지부를 찍어도 좋을 아련한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전쟁은 평범하기만 한 두 남녀의 사랑마저도 잔인하게 짓밟는다는 걸 우리는 얼마나 많은 책과 영화에서 보아왔던가! 목숨을 다 바쳐도 좋을 만큼 달달하거나 애절한 로맨스는 아니지만 담백하면서도 조금은 미지근한 이들의 사랑이 전체적인 책의 분위기에 어울려 더 오래 기억이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이야기로 재현하는 데에 큰 도움이 얻었다는 스페인 카디스의 모습>




당장 포탄이 내 집 앞에 떨어져 목숨이 위태로운 전시 중에도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위치에서 삶을 살아간다. 살인을 하는 범죄자가 있고 또 그 범죄자를 쫒는 형사가 있고 치열하게 사업을 하는 사업가가 있음은 물론 사랑에 빠지는 연인이 되기도 한다. 즉 이 책의 배경이 비록 1800년대 스페인의 카디스를 중심으로 하는 전쟁상황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초점은 결코 전쟁에 맞춰지지 않는다. 그 작은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 인물들의 삶과 살아가는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언젠가 읽었던 ‘하진’의 <전쟁쓰레기>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거대한 장기판위의 말처럼 아무 이유 없이 조종당하고 희생되었던 수많은 군인들처럼 이 책 속의 인물들 역시 카디스라는 체스판 위에서 쉼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다만, <전쟁쓰레기>가 전쟁의 비극을 역설적으로 극명하게 다루고 있는데 반해 이 책은 오히려 개인의 인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좀 다르기는 하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역사무대는 인간이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삶이 어떻게 농락당하게 되는 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감추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와 로맨스, 그리고 스릴러가 제대로 어우러진 이 책의 재미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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