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진 살인사건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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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추리소설을 즐겨 읽기는 하지만 긴다이치가 누구인지 요코미조 세이지가 누구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긴다이치 코스케가 소년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라고 알게 되니 아아~ 소리가 절로 나온다. 주위에서는 허벅지까지 찰싹! 때려가며 알은 채를 하는 이도 있고.^^

아무튼 그 유명한 김전일의 할아버지라고 하니 명탐정임은 확실한듯하니 지금이라도 그의 활약상을 만나보는 일이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우선 책에서는 <혼진 살인사건> <도르래 우물은 왜 삐걱거리나> <흑묘정 사건> 이렇게 3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각각 서로 다른 주제와 트릭을 보여주는 동시에 일본사회를 엿볼 수 있는 역사적인 흥밋거리도 소소하게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시대배경이 워낙 오래전이라서 그 당시의 가치관이나 사회상, 봉건적인 사상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으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추리력만큼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정교하고 빈틈이 없었다.

 

먼저 첫 번째 작품은 이 책의 제목과 같은 <혼진 살인사건>으로 명문가의 장남이 소작농의 딸과 결혼을 한 초야에 살해되고 이 사건을 긴다이치 코스케가 밝혀내는 내용이다. 옛 일본의 전통가옥이라거나 풍습, 생활사를 배경으로 자세하게 그려져 있어서 난 조금 어렵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게다가 밀실살인이라는 고난이도(추리소설 마니아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밀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해결)의 추리를 해결하는 설정이다 보니 작가가 이곳 저곳에 설치해놓은 함정이나 트릭들을 따라가는 것도 벅찼다. 그래서 이런 나 같은 독자들을 위해 본문에서는 친절하게도 그림으로 밀실의 형태, 가옥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또한 처음 의심했던 범인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더라도 그 원인을 알기까지는 꽤나 많은 이야기가 또 숨겨 있으니 절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수작이었다.

 

다음으로 두 번째에 실린 작품은 <도르래 우물은 왜 삐걱거리나>로 이건 무슨 공포영화를 연상시키는 뉘앙스가 제목에서부터 풍겨오고 내용도 좀 무섭긴 하다^^;; 그런데 또 구성이 참으로 독특해서 강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었다. 흔한 추리소설처럼 어느 기묘한 밤 살인사건이 나고 순서에 맞추어 탐정이 등장해 살인사건의 범인과 원인을 해결하는 그런 평범한 구성이라기보다는 등장인물들의 편지를 통해 사건이 재구성되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글들을 쭉 따라가는 형식이라서 그 내용들을 읽고 있노라면 한 두 사람 의심되는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이 범인인 것 같으면 또 다음 장을 읽고 의심되는 범인이 새로 생기고 하는 식으로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혼자 고민하고 있는 사이 어느 새 결말에 이르지만 되돌아보면 독자들의 진을 쏙 빼놓을 정도로 정교하게 짜여진 사건의 원인과 결말에서 또 한 번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게 되니 이 또한 새로운 재미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얼굴 없는 시체이야기를 다룬 <흑묘정 사건>인데 이 저자의 역량이 그대로 발휘되는 작품으로 홍등가에 위치한 흑묘정이라는 가게의 주인들과 그 주변인물 들을 통해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그려진다. 사실 이 작품은 읽으면서 초반에 이 사람이 범인이겠지라고 생각했다가 또 한 번 제대로 반전이 일어나서 작가에게 제대로 당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짧지만 중독성 강한 3편의 추리소설은 이렇게 나에게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좀 어리버리해 보이지만 명민한 탐정에 푹 빠지도록 했고 요코미조 세이시라는 작가가 왜 그렇게 일본에서 거장으로 추앙받는지를 알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깊어가는 가을 저녁이 왠지 스산하다고 느껴질 때 집어 들면 딱인 추리소설로 누군가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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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과 군상 지만지 고전선집 653
하인리히 뵐 지음, 사지원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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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독일작가 하인리히 뵐의 책을 처음 접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반하는 인간형이 등장하는 이 작품으로 작가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이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약하지 않다.

우선, 이 작품에는 레니 파이퍼라는 여성이 등장하고 그 여성의 삶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이야기되는 구조였는데 이 여성은 강직하고도 강인한 여성으로 보여 진다. 아니면 사회에 부적응했던 인물로 보아질 수 도 있고.

나의 눈에는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한 이상한 모습의 여인으로 비추어 졌음을 고백한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그녀는 자본주의에 상반되는 아니, 적합하지 않는 모습들을 일관되게 유지했고 난 자본주의, 상업주의 사회에 익숙한 전형적인 사람이니까.

그녀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여성이었음에도 돈이나 재물에 대한 욕심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빚을 지면서도 누군가를 도왔고 더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조차도 스스로가 거부한 특이한 인생을 유지했다. 어찌보면 자기의 주장이 강하고 또 어찌보면 비합리적으로 비추어질 수 있듯이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여자 주인공 레니는 여러 인간상을 보여주는 다중적인 인물이라고 정의해도 될 것 같다.

 

즉, 이 여인을 두고 여러 사람들이 등장해 그녀의 삶과 인생관에 대해 옹호하거나 비판하는데 각각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다른 인물로 재탄생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 그녀는 오갈 곳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집을 내어주고 검소하고 소탈하게 살았던 한 인물이었고 또 어떤 이들에게 그녀는 정신 나간 이상주의자 혹은 고집불통이었으니까.

다만, 이러한 여러 관점에서도 일관성 되게 유지되는 것은 부와 명예에 대한 욕심보다는 인생 자체를 즐기려는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지탱해가는 신념이었다.

 

예쁜 옷을 입고 가게의 전면에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앞치마를 입고 차가운 뒷방에 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거기서 화환과 꽃다발을 엮었습니다. 더 멀리, 더 높이 오르려는 명예욕이 없었습니다. 명예욕은 전혀 없었던 겁니다. p.89

 

이런 인물을 설정한 이유는 작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사회에 들려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책 말미쯤에 문득 들었다. 정신없이 빠르게 ‘발전’이라는 이름하에 성장하는 자본주의 안에서 피폐한 사람들의 모습이 작가에게는 어딘가 불편해 진 것이 아닐까. 그래서 돈이나 명예, 물질에는 전혀 욕심 없이 어찌 보면 무미건조하지만 강직한 삶을 살아가는 레니라는 여성형이 이 사회에서 새로운 인간형으로 군림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에게 이런 글을 쓰게 한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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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미모자를 그렸나 - 손미나의 로드 무비 fiction
손미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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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지금 오디션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광풍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열기를 놓치기 싫었던 MBC도 가수 오디션을 시작으로 신입사원이라는 이름의 신입아나운서를 뽑는 프로그램도 했었다. 니들 신입사원을 왜 우리가 뽑냐?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지만 나는 그 프로그램을 나름 즐겨 보았다. 미션이라는 과제로 긴장감 100배를 주며 출연자 및 시청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그리고 다시 한번 우리나라의 엄청난 인재들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말을 연발했었다. 특히 지금 아나운서의 위상은 연예인 못지않게 엄청난데 아무래도 지적인 면모와 아름다움까지 겸비했기에 선망의 대상이 된지는 오래고 모 아나운서의 재벌가 시집가기 성공으로 여대생들에게는 더욱 되고 싶은 직업으로 부상했는지도 모른다.

책 한권 읽고 감상을 정리하는데 이렇게 길게 사족을 단 건 이 책의 저자가 바로 전직 아나운서였던 손미나씨였기 때문이다. 몇 천만원의 고액 과외비 및 학원 수강료를 지불하고서라도 아나운서가 되려하는 이때,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 하며 살겠다고 사표를 던졌으니 그녀의 인생역전이 부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질투도 난다.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 여행도 하면서 잘 살아가는 그녀가 이번에는 첫 소설을 출간했다. 하~ 그녀의 능력은 어디까지 인가?

 
예전에 번역된 책 <엄마에게 가는 길>을 읽을 때 왠지 다음번엔 에세이류가 아닌 그녀의 소설책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역시나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나보다. 소설은 자유로운 그녀만큼이나 여기저기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야기로 흥미로운 러브스토리로 무장한 로드무비형식의 내용이었다.
인종도 국적도 다른 두 남녀의 희한한 조합이 눈길을 끌었던 이 작품에는 네 명의 남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우선 이야기의 가장 중심이 되는 장미. 자신의 책을 출간하기를 바라나 그 꿈은 번번이 좌절되고 남의 책을 대필하며 살아가는 고스트라이터다. 매번 대필할 때마다 적지 않은 고민을 하지만 작가가 되는 길은 그리 녹록치않다. 그러던 차 매력적인 조건으로 또 다시 대필작업을 부탁받게 되는데 이번에는 모 재벌회장의 딸 최정희의 자서전이었다. 그녀는 해외에서 사고를 당해 사망한 것이었고 레아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 화가였다. 그렇게 그녀의 자료를 모으러 파리로 떠난 장미는 우연한 사건으로 프랑스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야기는 교차편집으로 진행되는 동안 레아와 그가 사랑한 또 다른 남자 테오의 러브스토리를 들려준다.

이 4명의 남녀가 책을 이끌어가는 두 축이 되는데 이야기는 이야기를 낳고 사건은 또 다른 사건을 일으키듯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었다. 다만, 내가 너무 영악한 독자였는지 책을 읽는 내내 앞으로 이들이 어떻게 엮일지 혹은 또 어떤 식으로 그들의 사랑이 방해받게 될 것인지를 너무도 잘 예측할 수 있었기에 좀 실망스러웠다. 어떤 우연에 있어서는 이야기를 연결시키기 위한 억지스러움도 보여서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난 이 책이 너무도 소설 같은 소설이라고 결론 내렸다. 어딘가 익숙한 스토리와 등장인물들, 묘하게 엮이고 스쳐가는 주인공들과 그들의 사랑이야기. 난 전혀 신선하지도 재미있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첫 소설을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그녀의 열정에는 박수를 보낸다.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탄생시킬 만큼 자신이 구상하고 쓰고자 했던 것들을 활자로 고스란히 쏟아냈을 그 수많은 밤들의 노고는 진심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나에게는 좀 싱겁고 예측 가능한 책이었지만 그녀의 다음 책(아마 프랑스 여행기라고 했나)은 그녀만의 자유스러움이 물씬 풍겨나지 않을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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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조명애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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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TV 드라마에서 흔하게 반복되는 대사가 있다.
“너 도대체 왜 이래? 너 원래 이런 애 아니었잖아.”라고 묻는다. 그러면 상대 주인공은 이렇게 대꾸를 하는 거다.
“내가 뭘,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따위의 대사를 날려버림으로써 상투적인 대사를 완벽하게 소화해 주신다.
참! 노래가사에도 있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어쩌구 저쩌구...
이렇게 우리는 자기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은 물론 누구를 안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가까이 지내는 지인들을 보더라도 오랜 시간 알고 지냈기 때문에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헉! 쟤가 원래 저런 애였어?라며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 한 권의 소설이 있고, 그가 죽은 후 그에 대해 말하는 4명의 화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서로 다르게 망자(亡者)를 기억해낸다. 그 망자란 바로 추운 겨울날 새벽 스페인의 어느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촉망받는 신예작가인 알레한드로 베빌라쿠아였다.
이틀 전 출판 기념회를 성황리에 마치고 투신한 그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의 삶을 추적해가다보면 자살한 원인을 발견할 수 있을까?


  시간은 벌써 30년이 흘러 갑자기 그의 죽음에 대해 궁금해 하는 한 남자가 나타났다. 장 뤽 테라디요스라는 프랑스 기자는 베빌라쿠아의 사건을 조심스럽게 파헤치기 시작했고 그의 주변 인물들로부터 차례차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듣게 된다.
그런데...
친구였던 알베르토 망구엘(바로 이 책의 저자이다)과 애인 안드레아, 감방 동료 돼지, 마지막으로 고로스티사라는 좀 특이한 적, 이렇게 4명의 화자들은 자신의 기준으로 그를 천재적인 예술가로 설명했다가 비열한 인간으로 설명했다가 하는 등 극단적이고 다양한 반응을 보였기에 베빌라쿠아의 삶을 취재하던 테라디요스는 서서히 진실과 거짓사이의 애매모호한 경계에서 멈춰버리고 만다.


  여기에서 테라디요스의 진짜 고민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려하던 그가 이제는 무엇이 진실인가?라는 좀 더 근원적인 문제에 도달했기에 책을 읽어내려가던 독자들도 어느 새 그런 의문점을 개인의 문제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나의 경우, 나라면 이 남자의 실체를 무엇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라 믿어야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계속 찾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한 사람에 대한 진실은 규정할 수 없다는 답이 나왔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각각의 집단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내는 위치와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애초부터 1+1=2라는 명확한 개념은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즉, 어느 집단에서는 내가 ‘갑’의 위치가 되어 좀 더 영악하고 비열해 질 수 있겠고 또 어느 곳에서는 존재 자체도 미미한 ‘을’의 위치로 모든 걸 감내해야만 하는 미약한 존재로 살아갈 수 밖에 없을테니까.
그래서 테라디요스는 이렇게 결론을 낸다.


  “나의 상상 속에는 그 남자의 명암이 드리워진 형상이 완벽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을 완전히 덮어서 가리기에는 정보가 부족하거나 아니면 남아돈다. 아무리 증언들을 재편성해보고, 아무리 그것들을 다듬거나 뒤적여보아도, 다른 것들과 잘 맞지 않는 하나가, 정확한 버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대해 넘치거나 모자라는 하나가 항상 있다.”[본문 중]


  누구도 알 수 없는 진실 앞에서 침묵할 수 밖에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
소설은 이렇게 철학적 질문과 답을 해나가는 동안에도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데 그 이유는 마치 눈 앞의 문을 열고 나가면 또 다른 문을 열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 같았던 이 소설의 구성 때문이 아니었나 싶었다. 그래서 그가 라틴계의 ‘폴 오스터’라고 불리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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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한가운데서 / 미망인들 (보급판) 지만지 고전선집 4
스와보미르 므로제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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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학 재학시 교양과목으로 ‘연극의 이해’라는 수업을 선택해 들었었다. 처음에는 뭔가 있어보여서(?) 수강신청을 했는데 수업이 쉽지는 않아 괜히 신청했나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리포터를 작성하는 과제는 수업과는 달리 꽤나 재미있고 유쾌하기까지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 뻔질나게 소극장을 찾아다녔고 그렇게 연극의 재미에 푹 빠져들었는데 지금은 일 년에 3편을 볼까 말까 싶을 정도로 문화생활을 못 누리다보니 그때가 자꾸 그리워지곤 한다.

 

이런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집어든 책이 스와보미르 므로제크의 『바다 한가운데서/미망인들』이라는 희곡이었다. 장편소설을 읽을 때는 영화의 장면 장면을 연상하는 재미가 있다면 희곡은 연극이라는 무대를 머릿속에 그려가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게다가 이 저자는 처음 알게 되었는데 블랙코미디가 이런 맛이구나라는 쾌감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을 만큼 풍자적인데 읽으면서 낄낄 거리는 대사들도 적지 않았다.

저자는 나에게는 상당히 낯설었는데 폴란드 드라마의 아버지로 불리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라고 소개되어 있다. 2010년에 국내에서 공연된 ‘탱고’도 이 저자의 작품이였다하니 어떤 이들에게는 익숙한 작가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책에는 2편의 희곡이 실려 있는데 ‘바다 한가운데서’ 와 ‘미망인들’이 그것이다. 먼저 ‘바다 한가운데’를 살펴보면(개인적으로 이 희곡이 너무 재미있었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뗏목에 세 명의 조난자가 타고 있었다.


뚱뚱이,보통이,홀쭉이로 명명된 이 사나이들은 식량이 부족해지자 셋 중 한명을 잡아먹기로 하고 서로가 왜 잡아먹히면 안 되는지, 그렇다면 왜 상대가 잡아먹혀야 하는지를 각자의 논리대로 주장을 펼치는데 이들의 대화가 무척이나 풍자적이다. 특별한 이름 없이 별명처럼 붙여진 이들의 명칭은 앞으로 이야기의 전개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상상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뚱뚱이=자본가 혹은 욕심쟁이를, 보통이=기회주의자를, 홀쭉이=노동자 혹은 빈곤층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그렇게 이해가 되었다.


특히 뚱뚱이는 어이없는 주장을 하며 홀쭉이를 점점 압박하는데 처음에는 강력하게 반론을 펼치던 홀쭉이가 어느 순간 자신이 희생되는 것이 맞다며 스스로 인정하는 부분에서는 씁쓸한 연민마저 감돌게 한다. 게다가 이 작품이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쓰여졌다 하니 저자는 뚱뚱이를 통해 독재자에 대한 어떤 적나라한 모습을 풍자하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뚱뚱이: 당신은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아무 책임도 질 수 없는 무책임한

인간이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가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정신이 온전한 사람들에게 판단을 맡겨야 해요.

당신 같은 사람은 사회에서 제거되어야 마땅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우리가 당신을 먹어치우는 거요.

(보통이에게) 친구, 어서 상을 차려요. [P.57]

 

홀쭉이: 저는 이제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획득했습니다. 마침내

자, 이제 마지막으로 상황을 살펴보죠. 여기 이렇게 우리 세 사람이

있지만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건 오직 나뿐입니다.

죄송하지만 자유에 관한 잠시 이야기해도 될까요? [P.65]

 

이런 식의 대화가 흐르고 보통이는 뚱뚱이의 발언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며 딸랑이 역할을 자처하는데 이 세 주인공의 입을 통해 전달하는 대사들은 현대 정치판에서의 모습과도 흡사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다. 대한민국에서 막강한 권력을 숨긴 채 그럴듯한 말로 대중들을 현혹하며 지 입맛에 맞게 요리하는 저 징글징글한 정치인들에게 이 책을 한 권씩 선사하면 어떨까하는 상상도 해보며 웃었다. 그런데 뒷맛은 쓰다. 정말 쓰다...

 

두 번째 작품은 ‘미망인들’로 ‘바다 한가운데서’ 만큼의 큰 임팩트는 얻지 못했기에 간단하게만 언급하겠다. 그렇지만 이 희곡 역시 까페라는 한정된 공간에 인물과 사건들이 교묘하게 얽히고 설켜 마치 반전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한다. 게다가 허망된 욕망을 향해 목숨마저 아무렇지 않게 던져 버리는 이 한심한 인간들을 보자니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면서도 부정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란 참...

 

두 개의 사건이 일어나는 까페 안에서 남편을 잃은 두 미망인이 만나 서로에 관해 말하다가 상대가 각각 남편이 숨겨두었던 애인이었음이 밝혀지는 황당하면서도 그럴듯한 설정이 하나의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한 여인을 차지하기 위해 결투를 벌이는 두 남자의 이야기가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하지만 이 사건의 주인공은 단연코 전체 무대를 관망하는 ‘웨이터’였다는 깨달음에 이르렀을 즈음 우리는 또 다른 블랙코미디의 무대를 관람했음을 알게 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짧은 두 작품을 실제 무대에서 본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라는 것과 왜 이 저자가 폴란드의 위대한 극작가로 불리는지, 그리고 풍자와 유머의 맛이 어떻게 희곡에서 살아나는지를 오랜만에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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