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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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라는 책은 몇 해 전 서점에서 일하는 후배가 선물한 책이었다. 지방의 대형서점에서 근무하는 그 후배는 주말에 쉬지 못하기 때문에 평일에 휴가를 내어 한 번씩 서울로 올라와 스트레스를 풀었다. 나 역시 겸사겸사 서울 살면서도 가보지 못한 서울구경을 그녀와 하면서 즐겁게 놀고는 했다.

그런데 한 번은 약속장소에서 나를 보자마자 서점으로 끌고 가 책 한권을 선물했는데 그 책이 바로 <완득이>였다. 올라오기 전에 주려고 한 권 사두었는데 깜빡 잊고 가져오지 않았다면서. 그럼 다음번에 만나서 주면 되지 같은 책을 뭐하러 또 사냐고 했더니 그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얼른 읽었으면 싶었다며 추천해준 책이었다.

그녀 말대로...난 그 책을 정말 맛있게 읽었더랬다. 작년에 개봉된 영화까지 두루 섭렵하면서^^

 

이 책 <가시고백>은 그렇게 나에게 대단한 첫인상을 안겨준 김려령의 신작이다. 작품이 어딘지 모르게 완득이와 많이 닮아 있지만 여기에는 또 이 책만의 재미와 감동이 한 아름 들어있었다. 사실 내가 김려령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책이 ‘젊다’는 이유를 들 수 있다. 이제는 접할 수 없는 고딩들의 팔딱팔딱 살아있는 은어나 속어를 엿보는 즐거움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만의 고민과 세상이 파릇파릇 젊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동안 피폐한 삶을 노래하는 어른들의 고뇌 가득한 문장들을 접하다가 한 번씩 이런 김려령의 ‘젊은 책’을 읽게 되면 나도 모르게 흥이 나고 또 세상이 그렇게 파래 보일 수 없는 거다. 그래서 그냥 읽기만 해도 내 감성까지 다시 회춘하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그녀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개성은 맛깔스런 캐릭터들의 조합을 들 수 있다. 이번에도 완득이의 ‘똥주선생’을 능가하는 ‘용창느님’을 탄생시켜 아이들이 단단해지도록 애정을 아끼지 않았고 ‘완득이’만큼이나 사랑스럽고 싱싱한 아이들을 이번에는 무려 4명!!이나 등장시켜 주었으니 황홀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게다가 이 아이들이 가슴 속 가시들을 빼내며 성장하는 과정은 또 얼마나 뭉클하고 안쓰럽던지...

 

머리보다 손이 먼저 반응하는 천재적인 도둑놈(?) 해일은 말 그대로 신이 내린 손끝을 타고 태어났다. 목표물을 확인하는 동시에 바람처럼 가볍게 공기를 가르고 물건을 손에 넣는 기술이 기가 막히다. 생계형 도둑도 아니고 그저 습관처럼 몸에 체화되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죄책감을 크게 느끼지도 못하는 요상한 정신세계를 가진 어린 도둑이다.

그런가 하면 친아빠를 미워하고 부정하면서도 힘껏 내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지란은 그녀만의 방식으로 아빠와의 화해를 시도하는 열혈 고딩이고,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친구 한 놈 옆에 두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물씬 들게 했던 멋진 녀석이 진오였다. 그리고 18세 소녀의 사랑에 대한 감수성을 제법 말랑말랑하게 잘 표현해 주었던 다영이까지 이 사총사가 이 책의 주인공들이자 책을 통해 새로 만나게 된 친구들이었다.

 

책은 각자 가슴속에 크고 작은 가시들을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며 우정을 쌓다가 마침내 그 가시들을 하나 둘 빼내기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이 고통스럽고 힘겹지만 그들 곁에는 이미 그 고통마저도 웃음으로 승화시켜줄 친구들이 있어 참 다행이다 싶다. 어미닭의 품 없이 따뜻한 보살핌만으로 껍질을 깨고 부화한 병아리처럼 그 녀석들 역시 그들을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보듬어주는 선생님과 어른들이 있어 세상 밖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리하여 가슴속에 콱 박힌 가시를 제 손으로 뽑아낼 수 있는 커다란 용기를 갖게 된 아이들.

 

책의 마지막장을 덮을 때쯤 나는 알게 되었다. 가시가 박혔던 자리에는 이미 상처보다는 사랑이 몽글몽글 자라나고 있었음을 말이다.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온기를 듬뿍 받으면서...

참 따뜻한 김려령표 이야기, 이번에도 성공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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