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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물고기 이야기 - 개정판
오치 도시유키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5년 10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 받아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이 책은 유럽의 역사와 물고기의 관계를 중심으로 다룬 작품으로, 어종이 유럽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탐구한 매우 흥미로운 역사 인문서다. 저자는 단순히 “물고기”라는 생물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역, 전쟁, 경제, 문화, 언어, 예술 등 유럽 전반의 역사적 발전 과정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가장 중심이 되는 소재는 청어와 대구다. 특히 네덜란드가 유럽의 무역을 지배하던 시기, 이 나라가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소금에 절인 청어, 즉 염장 청어 가 있었다는 점을 책은 생생히 보여준다. 보통 역사에서는 ‘무역’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국가 간 관계나 경제 구조를 중점적으로 다루지만, 이 책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무역의 세부 품목’인 물고기 자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이 물고기들이 단순히 무역의 상품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전략 자원이었다는 사실도 강조한다. 특히 소금에 절인 청어는 장기간 보존이 가능했기 때문에, 전쟁터의 군대에게는 필수적인 보급 식량으로 사용되었다. 즉, 청어는 전쟁의 보급품이자 유럽 패권의 이면을 지탱한 존재였던 것이다. 이처럼 물고기가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역사적 사건의 이면에서 작용한 실질적 동력으로 묘사되는 부분은, 역사서로서 매우 신선한 시각을 제공한다.
책은 유럽의 여러 지역을 배경으로 전개되며,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는 물론 함부르크, 암스테르담, 런던, 된케르크, 그레이트 야머스, 로스토프트 등 서유럽의 주요 도시들이 생생하게 등장한다. 특히 지도와 항로가 함께 실려 있어서 유럽 해상무역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도와준다.
이러한 구성 덕분에 독자는 마치 ‘유럽 해양사 탐험’을 떠나는 듯한 몰입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책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만 나열하지 않는다. 청어와 관련된 어원, 즉 영어 속에서 파생된 표현들, 청어를 소재로 한 문학 작품의 구절들, 그리고 회화나 조각 등 예술 작품 속 물고기의 상징성까지 다룬다. 이로 인해 독자는 단순한 역사 지식을 넘어 언어·문학·예술이 서로 얽힌 인문학적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물고기’라는 소재를 통해 유럽의 문화 전체를 읽어내는 인문학 여행서이기도 하다. 책 속에는 다양한 이미지 자료와 삽화, 지도, 예술 작품의 사진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다.

특히 중세 시대의 어업 현장을 묘사한 그림이나 항구 도시의 풍경은, 독자에게 당시의 역사적 공기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글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보며 배우는 역사’의 재미가 있다. 중요한 문장이나 핵심 구절들은 파란색으로 표시되어 있어 시각적으로 구분이 쉽고, 독자가 읽는 과정에서 핵심 내용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림과 문장이 조화를 이루며, 역사와 예술이 한 페이지 안에서 어우러지는 구성이 독특하고 세련된 인상을 준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독자는 유럽의 역사가 단순히 왕과 전쟁의 역사만이 아니라 ‘물고기의 역사’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청어와 대구는 유럽 경제의 기반을 만들었고, 무역의 패턴을 바꿨으며, 전쟁의 보급 체계를 혁신시켰다. 그로 인해 유럽 문명은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즉, 작은 생명체 하나가 인류 문명을 바꾼 거대한 동력이 되었다는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생선에 대한 책’이 아니라, 역사·경제·문화·언어·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지식의 종합서다. 특히 사람과나무사이 출판사에서 출간된 ‘물고기 시리즈’의 일환으로, 같은 출판사에서는 감염병, 뇌, 식물, 약, 커피, 맥주, 와인, 화학 등 인간 문명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의 역사 인문서를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그중 일부를 이미 읽은 독자라면 알겠지만, 이 시리즈는 학문적이면서도 대중적으로 흥미롭다.
단순히 청어와 대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 문명 속에서 보이지 않던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흥미로운 탐험서다. 역사적 사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고, 하나의 생물이 인류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었는가를 보여주는 지적이고 예술적인 책이었다. 읽고 나면 유럽의 역사가 새롭게 보이고, 물고기가 가진 힘이 생각보다 훨씬 거대하게 느껴지는 유익한 독서 경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