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국가를 위해 죽어야 하나 -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해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강희원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 받아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제목부터 강렬한 인상을 주는 책이다. 요즘은 수많은 저명한 저자들이 쓴 책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 책은 단순히 법학 서적을 넘어 인간과 국가, 그리고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철학적 저서로서의 깊이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희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출간된 이 책은 경희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경희대 대학원을 거쳐 제24회 사법시험을 통과한 후,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경희대 로스쿨 교수, 그리고 현재는 경희대학교 명예교수로 계신 강희원 명예교수님이 저술한 작품이다. 오랜 시간 법학자로서, 또 학자로서 삶을 살아온 저자가 쓴 책인 만큼 그 내용은 단순한 법학의 범주를 넘어, 법과 철학, 국가와 인간, 그리고 생명에 대한 총체적 사유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제목이자 주제인 ‘왜 국가를 위해 죽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매우 도발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철학적 질문이다. 저자는 이 질문을 단순한 도덕적 고민이 아니라, 국가의 존재 이유와 인간의 생명 가치에 대한 본질적 탐구로 확장시킨다. 예를 들어, 전쟁이 발발했을 때 젊은이들이 강제로 동원되어 전장에 나가야 하는 상황을 상상하게 만든다. 실제로 현재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볼 수 있듯이, 수많은 사람들이 원치 않는 전쟁터로 끌려가 목숨을 잃고 있다. 저자는 그런 현실을 두고, 과연 ‘국가를 위해 죽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희생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그리고 국가라는 이름 아래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가볍게 다뤄지고 있는지를 통렬히 묻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단순히 전쟁 반대를 주장하는 감정적인 글은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법학적, 역사적, 철학적 접근을 통해 ‘전쟁’이라는 현상을 다각도로 해석한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순국 개념, 중세 유럽의 종교전쟁, 그리고 근대 이후 체제 속에서의 전쟁 명분까지, 인간이 국가라는 개념을 만들고 그것을 위해 싸워온 역사를 폭넓게 탐구한다. 또한 각 시대마다 ‘죽음의 의미’가 어떻게 정의되었는지를 어원적·철학적으로 분석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국가를 위해 죽는다는 것’이 과연 인간으로서 옳은 선택인가를 스스로 성찰하게 만든다.





저자가 강조하는 핵심은 명확하다. 전쟁은 언제나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고, 인간성을 잃게 만드는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반복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며, 그 안에서 젊은이들이 이유도 모른 채 목숨을 잃어간다. 저자는 바로 그 모순된 구조 속에서 “국가란 무엇인가?”, “누가 국가를 정의하며, 그 국가를 위해 누가 희생되어야 하는가?”라는 철학적 물음을 던진다. 이 질문들은 단순히 전쟁에 대한 비판을 넘어, 인간 존재의 존엄성과 생명의 본질을 되묻는 근원적인 사유로 이어진다.

이 책은 역사학, 철학, 언어학이 서로 얽히며 전쟁의 개념을 조명한다. 단순히 ‘전쟁은 나쁘다’라는 감정적인 결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온 사회적 구조와 권력 시스템, 그리고 언어 속에 숨어 있는 폭력성까지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냉철하게 분석한다.

저자는 법학자답게 논리적이고 명확한 문체로 사유를 전개하면서도, 그 속에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깊은 연민이 깃들어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던지는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국가란 무엇인가,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인간의 생명은 누구의 소유인가, 그리고 우리는 왜 여전히 죽음을 명령받는가?

이 책은 단순한 법학서나 철학서가 아니라, 전쟁과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책이다. 강희원 명예교수님의 오랜 학문적 경험과 성찰이 녹아 있으며, 그의 문장의 깊이가 대단하다. 전쟁이라는 재앙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파괴하고, 한 국가의 윤리적 근간을 흔드는지에 대한 탐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이 책은 전쟁의 공포와 국가의 폭력성, 그리고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싶은 이들에게 반드시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단 한 장 한 장을 읽을 때마다, 진짜 전문가가 전해주는 학문의 무게와 철학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을 인터뷰하다 - 삶의 끝을 응시하며 인생의 의미를 묻는 시간
박산호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 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 받아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요즘 들어 ‘죽음’이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는 가운데, 이 책은 그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이고 철학적인 통찰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한양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 영국 브루넬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전문 번역가로, 소설, 에세이, 그래픽 노블 등 약 100권에 달하는 다양한 작품을 번역해 온 인문학 전문가다. 그만큼 폭넓은 독서 경험과 섬세한 언어 감각, 그리고 사람과 삶을 바라보는 깊은 시선을 지닌 저자가 써 내려간 책이라는 점에서 큰 신뢰를 주는 듯하다.

이 책은 총 1부에서 5부로 구성되어 있고, 각 부마다 죽음과 가장 가까운 현장에서 일하는 다섯 명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요양보호사 이은주님, 장례지도사 유재철님, 펫로스 상담사 조지훈 님, 홍성남 신부님, 그리고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님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각각의 인물이 자신의 직업적 경험 속에서 마주한 죽음의 현장을 생생히 들려주며, 그 안에 담긴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공유한다. 책은 전체적으로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독자는 마치 실제로 그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 펫로스 상담사 조지훈 님의 인터뷰 부분은 인상 깊다. 인간이 아닌 또다른 존재의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상담하며 느꼈던 수많은 감정, 그리고 인간이 삶의 끝자락에서 겪는 두려움과 평온함의 경계를 이야기한다. '펫로스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이 어떤 상실감과 내적 공허함 속에 살아가는지를 그의 언어로 듣다 보면, 죽음이 단순히 생명의 끝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불완전함을 완성하는 순간’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또한 장례지도사 유재철 님의 이야기를 통해 시신을 다루는 과정의 현실적인 측면과, 그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존엄을 지키려는 직업인의 윤리를 느낄 수 있다. 이들의 하루는 죽음과 너무나 가까이 있지만, 동시에 그 누구보다도 삶을 진지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또다른 철학적인 깊이를 보여주는 인물은 가톨릭 신부 홍성남님이다. 그는 죽음을 단순한 끝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이끄는 통로로 해석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죽음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지만 동시에 삶의 방향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다. 그는 영성과 심리학을 함께 연구한 신부답게, 우울증이나 불안, 상실감을 겪는 현대인들에게 죽음을 통해 오히려 ‘삶의 의미’를 회복할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전쟁, 재난 등 세계적인 위기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무력감과 두려움을 ‘죽음의 인식’이라는 철학적 틀로 재구성하며, 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새롭게 제시한다.

어떤 장면에서는 깊은 슬픔과 경외감이 교차하고, 또 어떤 장면에서는 죽음을 초월한 따뜻한 인간애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죽음을 다루고 있음에도 전혀 음침하거나 우울하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담담하고 따뜻하다. 마치 오래된 친구가 삶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이야기를 건네는 듯한 어조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책을 덮은 후에도 불안보다는 ‘평온함’과 ‘사색의 여운’을 느끼게 된다.

결국 이 책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자, 동시에 삶에 관한 이야기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가를 스스로 묻게 만든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단지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철학적 여정의 안내서다. 삶의 유한함을 인식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술관 여행자를 위한 도슨트 북 - 모든 걸작에는 다 계획이 있다
카미유 주노 지음, 이세진 옮김 / 윌북아트 / 2025년 10월
평점 :
예약주문



* 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 받아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이 책은 미술 작품 감상법을 깊이 있게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단 한 권으로 충분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완성도 높은 책이다. 단순히 그림을 ‘본다’는 행위를 넘어,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저자는 독자에게 미술관에 들어서서 작품 앞에 섰을 때 무엇을 먼저 보고, 어떤 점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는지를 아주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알려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할 때 그저 감각적으로, 혹은 막연하게 “이게 좋은 그림이겠지”라고 생각하며 지나치지만, 이 책은 전문가의 시선으로 미술을 보는 방법을 아주 쉽게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

첫 부분에서는 미술관의 구조작품 감상의 기본 개념을 다루며, 단순한 이론서가 아니라 실제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작품을 감상할 때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가이드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초상화를 볼 때 인물의 시선, 배경, 소품의 상징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보여주며, 초보자도 금세 전문가처럼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책 속에는 수많은 서양화 명작들이 실려 있는데, 그중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와 같은 대표적인 작품부터 처음 접하는 희귀한 작품들까지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다. 대형 이미지와 뛰어난 인쇄 품질은 눈을 즐겁게 해준다. 실제로 책을 펼쳤을 때 종이의 질감과 색감이 미술관에서 원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정교하다. 이는 독자가 단순히 정보를 읽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작품을 눈앞에서 감상하는 듯한 시각적 몰입감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이 책의 구성은 단순한 작품 모음이 아니라 화가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시대 순으로 연결해 보여준다. 초기의 고전 회화부터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사회적 배경과 예술적 사조가 어떻게 그림 속에 반영되었는지를 설명함으로써, 독자는 예술사 전체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그림이 변해온 이유, 시대가 예술에 준 영향, 그리고 화가 개인의 삶과 감정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함께 탐구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도슨트가 쓴 미술 해설서’ 하면 가볍고 감성적인 에세이를 떠올리지만, 이 책은 그와는 완전히 다르다. 저자는 오랜 시간의 연구와 예술적 통찰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해석을 제시하며, 한 문장 한 문장이 탄탄한 자료와 근거 위에 세워져 있다. 단순히 감상 팁을 제공하는 수준이 아니라, 예술을 이해하는 사고방식 자체를 훈련시켜주는 교재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처음에는 낯선 그림들도 점차 눈에 익으며, 어느새 자신이 그림 속 상징과 구도를 스스로 분석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품, 인물의 자세, 색감의 대비가 의미하는 바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미술이 단순히 ‘보는 예술’이 아니라 사유의 예술임을 깨닫게 된다.

또한 이 책은 미술작품의 신학적 의미와 역사적 배경도 함께 다루고 있어, 단순히 예술 감상서가 아니라 문화 교양서로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 예를 들어 그림 속 특정 사물이 그리스·로마 신화의 상징을 반영하고 있거나, 특정 시대의 종교적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면서, 예술이 그 시대의 철학, 정치, 종교와 어떻게 맞물려 있었는지를 알려준다.

이 책은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미술에 입문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최고의 길잡이가 된다. ‘예술 작품을 제대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결정판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자체로도 하나의 예술품처럼 완성도 높은 책이다. 읽는 내내 눈이 즐겁고, 마음이 풍요로워지며, 예술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선사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I는 인간을 꿈꾸는가 - 인간과 비인간, 그 경계를 묻다
제임스 보일 지음 / 미래의창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 받아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이 책은 듀크 대학교 로스쿨의 법학 석좌 교수이자 퍼블릭 도메인 연구소의 설립자제임스 보일(James Boyle) 교수가 쓴 작품으로, 다가오는 인공지능(AI) 시대의 전개 방향과 사회적·철학적 파급력을 통찰력 있게 다루고 있는 책이다. 단순한 기술 해설서가 아니라, AI라는 문명의 흐름이 인류의 가치, 제도, 존재 방식 자체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사유와 예언적 통찰을 담고 있어, 마치 21세기를 향한 예언서처럼 읽힌다.

책의 핵심은 2부의 ‘인공지능’ 파트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이 부분에서는 AI 기술이 단순히 계산 능력이나 자동화의 범위를 넘어서서,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진화하는 기술의 특이점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면밀히 조명한다. 저자는 이 특이점이란 개념이 인간 지성을 초월하는 순간, 즉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고 능력과 창의력을 능가하는 시점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많은 사람들이 ‘특이점’을 막연히 반복적으로 언급하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을 뜻하며 어떤 함의를 지니는지는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제임스 보일 교수는 이러한 대중적 오해를 바로잡고, 특이점의 본질을 철학적·법학적·공학적 관점에서 다층적으로 해석하며 독자에게 보다 정확하고 깊은 이해의 기회를 제공한다.

책에서는 과거 인공지능의 발전 과정을 예시로 들어 설명한다. 저자는 특히 이세돌 9단과 대결했던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 그리고 그 이후 등장한 ‘알파고 제로’의 발전사를 중요한 전환점으로 언급한다. 이는 인간의 두뇌가 지닌 직관적 사고와 컴퓨터의 연산 능력(CPU, 알고리즘의 자기 학습 구조)이 맞붙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알파고가 인류를 상대로 승리한 순간은 단순한 게임의 승패를 넘어, AI가 인간의 논리 구조를 해석하고 재창조할 수 있는 존재로 진입한 역사적 분기점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기술적 진보가 단순한 과학 발전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문명 전체의 인식 체계를 바꾸는 사건이라고 본다. 즉, 인공지능은 인간의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사유의 주체이자 창조의 동반자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AI와 함께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것인가?”, “AI가 인간의 법과 도덕, 생명에 대한 관념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책의 중반부에서는 인공지능의 철학적 의미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진다. 보일 교수는 AI가 단순히 계산하는 기계가 아니라, 사유와 감정, 창의성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사고방식이 언어와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것처럼, 인공지능 역시 데이터를 통해 자기 스스로 ‘의식적 판단’에 가까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인공지능이 단순히 산업 혁명을 이끄는 기술이 아니라, ‘인류 존재론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존재임을 강하게 시사한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저자가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의 결합을 언급하며, 이를 고대 신화 속의 키메라에 비유하는 대목이다. 인공지능이 생물학적 영역에까지 진입해, DNA 편집·의학·신경과학 등에서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수준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의 융합은 단순히 의학적 혁신을 넘어, ‘자연적 생명’과 ‘인공적 생명’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점을 암시한다. 저자는 그때 인류가 마주하게 될 윤리적 딜레마와 존재론적 혼란을 경고하며, 독자들에게 이러한 변화를 철학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책의 전반에는 수많은 주석과 인용문, 그리고 법학·철학·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참고 문헌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 제임스 보일 교수의 폭넓은 학문적 배경과 지식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단순히 기술 낙관주의나 종말론적 공포를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AI의 발전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도, 그 속에서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준다.

결국 이 책은 기술서와 철학서, 예언서가 동시에 공존하는 작품이다. 독자는 이를 통해 단순히 AI의 발전사를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 사회의 구조, 인간의 정체성, 그리고 생명과 지성의 경계에 대해 사유하게 된다. 따라서 과학기술에 관심 있는 사람은 물론, 법학·철학·윤리학을 공부하는 독자들에게도 필독서라 할 수 있다. 특히 AI 시대의 도래가 우리 사회와 개인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질지, 그 변화의 파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재정립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러 이후의 질서 - 트럼프 경제 패권의 미래
케네스 로고프 지음, 노승영 옮김 / 윌북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컬처블룸으로부터 책을 증정 받아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이 책은 미국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 2025년 파이낸셜 타임스 주목 도서, 그리고 연준 전 의장 벤 버냉키가 강력 추천한 화제의 경제서다. 저자는 하버드대학교 국제경제학 교수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로, 그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거시경제학자이자 국제금융 전문가다. 그의 칼럼은 무려 40여 개국에서 6개 언어로 번역되어 소개될 만큼 전 세계 경제 담론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경제학계에서 석학 중의 석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은 단순한 경제 이론서가 아니라 세계 경제의 구조와 패권의 본질, 그리고 달러 중심의 국제 질서가 어떤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가를 치밀하게 해석한 통찰서다. 저자는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 위상이 전 세계 정치·경제에 어떤 지배적 영향을 미치는지를 면밀하게 분석한다. 책의 목차를 보면 1부부터 6부까지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부마다 달러 패권의 역사·현황·미래가 입체적으로 전개된다.

1부에서는 달러의 압도적인 힘과 그 배경이 된 기축통화 시스템의 본질을 다룬다. 세계 경제가 왜 달러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그 결과 미국이 어떤 ‘통화 특권’을 누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세계 금융의 안정과 위기에 어떤 양면성을 가져왔는지를 분석한다. 2부에서는 특히 중국의 도전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패권 경쟁 구도를 다룬다. 과거에는 소련, 일본, 그리고 유럽의 단일 통화인 유로화가 미국 달러에 도전했지만, 지금은 중국 위안화의 부상이 새로운 국면을 만들고 있다. 중국의 급격한 수출 성장과 그에 따른 외환보유고의 확충, 그리고 디지털 위안화와 같은 신개념 통화전략을 통해 중국이 ‘제2의 패권국’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 속에서 과연 어떤 상황과 국면으로 흘러갈지를 짚는다.

또한 이러한 중국의 부상에 대해 미국이 어떤 방어적 전략을 펼칠지, 그리고 양국 간의 경제 패권 전쟁이 앞으로 세계 경제에 어떤 충격을 미칠지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이 부분은 국제 정세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가장 핵심적인 챕터라 할 수 있다. 3부에서는 고정환율제와 초인플레이션이라는 역사적 경제 실험을 다루며, 각국이 달러 패권 체제 속에서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를 보여준다. 4부에서는 세계 통화의 개념, 암호화폐의 등장 등 ‘돈의 미래’를 집중 조명한다. 암호화폐가 과연 달러를 대체할 수 있을지,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가 세계 금융 질서를 어떻게 바꿀지 궁금해진다.

5부에서는 통화 패권이 주는 혜택과 특권에 대해 다룬다. 패권국이 누리는 막대한 이익, 즉 ‘달러 프리미엄’의 존재를 밝히고, 그 뒤에 숨은 불평등한 구조를 지적한다. 미국은 달러를 찍어내는 것만으로도 자국 경제를 유지할 수 있지만, 다른 국가들은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수출·투자·부채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마지막 6부에서는 달러 패권의 정점과 그 이후의 방향성을 논의한다. 저자는 달러의 지위가 단기간 내에 붕괴되지는 않겠지만, 다극화된 금융 질서 속에서 새로운 경쟁 구도가 필연적으로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즉, 달러 패권은 여전히 강력하되, 중국·유럽 등 전세계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저자가 단순히 이론적인 지식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견해를 명확히 제시하며 현실을 해석하는 힘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케네스 로고프 교수는 학자로서의 엄밀한 분석력과 더불어,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직관적인 통찰을 곁들인다. 경제학의 개념을 설명할 때마다 “이 현상에 대해 나는 이렇게 본다”는 식의 개인적 평가와 논리적 주석을 붙이기 때문에, 독자는 마치 교수님과 식사를 하며 생생한 개인 의견을 곁들인 설명을 듣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저자는 경제학을 단순히 숫자나 통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 국가의 전략, 정치의 논리와 결합된 ‘거대한 힘의 게임’으로 바라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경제를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세계사를 이해하는 깊이가 함께 성장한다.

책의 전반적인 메시지는 명확하다. 달러 패권은 단순한 화폐 문제가 아니라, 세계 권력의 문제라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적 지배력은 달러를 통해 유지되고 있으며, 이를 견제하려는 여러 국가들의 시도는 단순한 환율 전쟁이 아닌 새로운 국제 질서 재편의 전조다. 결국 이 책은 단순한 경제서가 아니라 세계 권력의 본질을 꿰뚫는 인문·정치·경제 융합서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경제학적 통찰뿐 아니라 세계 패권의 작동 원리, 그리고 미래의 돈이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한 시야를 얻게 된다.

지금까지의 경제 흐름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세계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측할 수 있는 지적 기반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돈을 주고도 쉽게 들을 수 없는 귀중한 강의와 같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 투자자, 그리고 세계 정세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읽어야 할 현대 경제의 교과서이자 통찰서라고 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