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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인터뷰하다 - 삶의 끝을 응시하며 인생의 의미를 묻는 시간
박산호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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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 받아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요즘 들어 ‘죽음’이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는 가운데, 이 책은 그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이고 철학적인 통찰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한양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 영국 브루넬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전문 번역가로, 소설, 에세이, 그래픽 노블 등 약 100권에 달하는 다양한 작품을 번역해 온 인문학 전문가다. 그만큼 폭넓은 독서 경험과 섬세한 언어 감각, 그리고 사람과 삶을 바라보는 깊은 시선을 지닌 저자가 써 내려간 책이라는 점에서 큰 신뢰를 주는 듯하다.
이 책은 총 1부에서 5부로 구성되어 있고, 각 부마다 죽음과 가장 가까운 현장에서 일하는 다섯 명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요양보호사 이은주님, 장례지도사 유재철님, 펫로스 상담사 조지훈 님, 홍성남 신부님, 그리고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님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각각의 인물이 자신의 직업적 경험 속에서 마주한 죽음의 현장을 생생히 들려주며, 그 안에 담긴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공유한다. 책은 전체적으로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독자는 마치 실제로 그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 펫로스 상담사 조지훈 님의 인터뷰 부분은 인상 깊다. 인간이 아닌 또다른 존재의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상담하며 느꼈던 수많은 감정, 그리고 인간이 삶의 끝자락에서 겪는 두려움과 평온함의 경계를 이야기한다. '펫로스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이 어떤 상실감과 내적 공허함 속에 살아가는지를 그의 언어로 듣다 보면, 죽음이 단순히 생명의 끝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불완전함을 완성하는 순간’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또한 장례지도사 유재철 님의 이야기를 통해 시신을 다루는 과정의 현실적인 측면과, 그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존엄을 지키려는 직업인의 윤리를 느낄 수 있다. 이들의 하루는 죽음과 너무나 가까이 있지만, 동시에 그 누구보다도 삶을 진지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또다른 철학적인 깊이를 보여주는 인물은 가톨릭 신부 홍성남님이다. 그는 죽음을 단순한 끝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이끄는 통로로 해석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죽음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지만 동시에 삶의 방향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다. 그는 영성과 심리학을 함께 연구한 신부답게, 우울증이나 불안, 상실감을 겪는 현대인들에게 죽음을 통해 오히려 ‘삶의 의미’를 회복할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전쟁, 재난 등 세계적인 위기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무력감과 두려움을 ‘죽음의 인식’이라는 철학적 틀로 재구성하며, 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새롭게 제시한다.
어떤 장면에서는 깊은 슬픔과 경외감이 교차하고, 또 어떤 장면에서는 죽음을 초월한 따뜻한 인간애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죽음을 다루고 있음에도 전혀 음침하거나 우울하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담담하고 따뜻하다. 마치 오래된 친구가 삶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이야기를 건네는 듯한 어조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책을 덮은 후에도 불안보다는 ‘평온함’과 ‘사색의 여운’을 느끼게 된다.
결국 이 책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자, 동시에 삶에 관한 이야기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가를 스스로 묻게 만든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단지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철학적 여정의 안내서다. 삶의 유한함을 인식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