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사랑한다 세트 - 전3권
김이령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1년 8월
구판절판


역사소설에는 특유의 분위기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묵직하고 웅장한, 그리고 때로는 위압적인 분위기.. 이는 아마도 역사라는 시간의 무게가 주는 특별함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으리라. 우리가 살아온 우리의 역사는 학창시절에는 교과목의 하나로 대략적인 흐름을 접하고, 교과서를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되어서도 글로, 영화로, 때로는 드라마로 끝없이 그려진다. 그리고 이런 끝없는 반복들을 통해 사람들은 역사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기도, 의미를 되새기기도 한다. 단지 시간이 과거일뿐, 한겹을 들춰보면 조금 더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조금 더 많은 것들을 이용하며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역사속의 시대상은 어떤 의미에서건, 우리에게 또 하나의 거울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까? 역사라는 이름을 별칭으로 달고 만들어지는 수 없이 많은 이야기와 영상들은 뭔가 조금 거대하고 부담스럽기도 했었다. 역사적인 의미라는 무거운 가치를 위해 사람들에게 조금 더 익숙하고 편안한 이야기들 보다는, 시대와 사회, 권력과 역사의 흐름등에 집중했으니 말이다

역사소설이라고 해서 꼭 무겁고 거대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일까? 역사소설들은, 그 가치를 알면서도 때로는 쉽게 손에 잡기에는 어쩐지 큰 맘을 먹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을 가지게 하곤 했다. 그리고 이런 의무감은 역사소설을 대하는 것을 조금 더 어렵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왕은 사랑한다>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인상적인 소설이다.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중심으로 다른 이야기들을 양념으로 곁들이기 보다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늘 화두가 되는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가장 중심에 놓고, 역사적 배경들을 이야기의 흐름에 영향을 끼치는 또 다른 요소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역사소설 특유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물론, 그러면서도 당시의 시대에 대한 전체적인 분위기와 역사적 사건들을 다룸에 있어 소홀함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에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고 할까? 게다가, 이야기가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 세 남녀의 사랑과 각자의 사연들이 모두 설득력있게 들렸음은 물론, 읽는 내내 즐거움까지 느낄 수 있었으니 따지고 보면, 두 마리 토끼가 아니라 세마리 토끼를 모두 잘 잡은 이야기라고 해야할 것 같다

한 여인을 사랑한 남자, 한 여인과 한 동무를 사랑한 왕

<왕은 사랑한다>를 이끌고 있는 주인공은 세명이다. 몽고지배기의 고려의 세자였던, 그리고 훗날 충선왕이라 불리운 역사적 인물이 되었던 남자 원, 그리고 그를 가장 지척에서 지키고 보호하며, 끈끈하고도 진한 우정을 나누었던 린, 여기에, 두 남자에게 각각 남다른 감정을 불러왔던 여인 산. 이 세 사람이 만나 서로를 알아보고 친구라는 돈독한 우정을 나누며, 더 나아가 남다른 남녀의 감정을 깨닫게 되는 과정, 그리고 둘이 아닌 세명의 남녀였기에 빚어진 안타까움들이 이 책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

왕이지만, 부마국이라는 국가의 한계에 부딪혀 절망과 좌절을 반복하며 힘을 잃어간 아버지의 뒤를 밟지 않기 위해 그 누구보다 강력하고 냉철한 이성을 키워가는 고려의 세자 원, 그의 옆에서 세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함께 하고, 생각도 의견도 모두 함께 나누는 친구이자 충신으로 부족함이 없었던 린은 두 사람 모두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지성을 갖춘 사람들이다. 둘 모두 아름다운 사람이었지만, 각자 다른 분위기만큼이나 조금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보통의 여자들과는, 아니, 원과 린이 그동안 보아왔던 여자들과는 너무도 다른 여인이 나타난다. 남자만큼이나 저돌적이고 용기가 있는, 그리고 측은지심을 가지고 백성들의 구휼에 앞장서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산이 바로 그녀이다. 하지만, 두 남자와 두 여자의 이야기가 아닌,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미 정해진 것처럼 이 세 사람은 어느날 문득 서로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게 된다. 산과 린이 먼저 서로를 바라보고, 원도 산을 바라보게 되지만, 원은 산과 린보다는 조금 뒤늦게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다

왕이기 이전에 한 남자였던 원

절대적 권력을 지닌 한 남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 자신만이 제외되는 것 같은 소외감을 허락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산과 린을 막아선다. 자신이 가진 힘을 이용해서 말이다. 그것으로는 서로를 향하는 두 사람의 마음을 결코 막지 못하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그가 두 사람을 모두 잃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그것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세사람의 관계가 애정과 질투라는 감정으로 변화하며 서로를 보는 시선들조차 달라지면서 세 사람의 이야기는 전처럼 따스하고 포근하게 흘러가지 못하게 된다. 질투에 빠진 남자에게 힘이 있기 때문이다.

<왕은 사랑한다>는 이렇게 원 지배기에 있었던 위태로운 국가의 운명보다는, 그 국가 아래에서도 힘을 가지고 있던 세자와, 그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한다. 최고의 지위에 있었기에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던 한 남자가, 가장 원했던 딱 하나, 사랑하는 여인을 가지지 못했기에 느꼈을 좌절감과 상실감. 그로 인한 결정과 선택들이 빚어낸 또 다른 이야기들을 통해, 권력자인 왕이 아니라, 사랑에 빠졌기에 처절하게 치졸하고 유치해질 수 밖에 없었던 한 남자의 모습들을 역사적인 배경과 그들의 지위를 통해 극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길고 길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

<왕은 사랑한다>는 총 세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권이 대략 500여 페이지이니, 이 책의 분량은 1600여 페이지에 이른다. 분량으로만 따진다면, 사실, 굉장히 길고 긴 이야기라는 데 굳이 의의를 달지 않아도 될 것이다. 또, 이 책은 앞서 언급한대로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역사소설이다. 역사소설, 그리고 1600여 페이지의 분량만을 두고 본다면, 이 책은 분명 큰 맘을 먹고 첫장을 펼쳐 들어야 하는 책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길기는 하되 결코 지루하지 않다. 그 만큼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해야할 듯 하다.

게다가 원 간섭기의 위태로운 국가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 동안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충선왕이라는 우리 역사의 한 인물을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을 통해 배경과 함께 설명하고 있음은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당시의 분위기와 시대상들을 잘 표현해두어 자연스레 고려의 당시 모습들을 한번쯤 연상하게 만들었다는 점도, 이 책의 무척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 같다.

고려는 조선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시대가 아니다. 고구려를 본받고자 하였고, 때문에 북진의 의지를 불태웠으나, 주변국들의 끝없는 침입에 시달렸던 나라, 나라의 운명을 한동안은 원이라는 또 다른 나라에 넘겨야 했던 슬픈 역사를 지닌 나라이지만, 그 안에서도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던 고려에 대해 이 책을 통해 조금은 관심을 가지게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새 책에 대한 간단 코멘트

장점
역사소설이라는 장르에도 불구하고 결코 지루하거나 거창하지 않다.
고려라는 우리의 역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 남녀의 이야기를 결코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충선왕에 대한 역사적 가치들을
인간적인 관점을 통해 살짝 엿볼 수 있는 매력적인 소설

단점
역사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징이 있는 소설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펼쳐진다.
이야기의 주요 흐름이 세 남녀의 관계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자칫 이 역사적 사건들을
너무 간단하게 지나칠 위험도 있다.

흥미정도
책을 읽고 난 다음, 무척 재미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분량상 긴 소설임에는 분명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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