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6일 - 유괴, 감금, 노예생활 그리고 8년 만에 되찾은 자유
나타샤 캄푸쉬 지음, 박민숙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9월
절판


거리를 거닐며, 누군가를 기다리며, 우리는 영화나 책들을 통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또 다른 이야기들을 접하곤 한다. 살면서 이런저런 경험들을 하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지만, 한명의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인간의 삶이란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일. 그래서 사람들은 영화를 통해, 책을 통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전해듣고, 공감하며, 그들의 삶에서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무엇이가를 찾아내고자 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은, 그것이 순수한 상상을 시작점으로 하는 창작물일때보다, 실제 일어난 일들을 말해주는 것일때 조금 더 진하고 강렬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일까? 최근에는 '실화'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문화 컨텐츠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누군가가 실제로 경험했던 이야기들, 하지만 나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들, 때로는 내가 이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이 아님을 무한히 감사할 수 밖에 없는 사건들, 이렇게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들은 새로운 문화의 장르로 사람들 앞에 이야기를 전하고 이 이야기들의 앞는 이런 수식어가 붙곤 한다. '충격실화'....

3096일 역시 바로 이런 충격실화를 바탕으로 한 책이다. 그것도 다른 누군가가 제3자의 눈으로 보고 듣고 느껴서 정돈한 그런 글들이 아니라, 사건의 당사자가 직접 이야기를 전하는 책. 그래서 더욱 절제될 수 없는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때로는 격하게 때로는 아프게 전달되는 바로 그런 이야기이기도 하다. 3096일이라는 이 책의 제목처럼 3096일이라는 엄청난 시간동안 세상과 단절된채로 다름아닌 세상과 자신을 단절시킨 납치범과 함께해야했던 끔찍한 시간들의 기억들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이 책은, 그래서 읽는 내내 절대로 마음 편할 수 없고, 절대 즐거울 수 없는 책이기도 하다. 세상에 무수히 벌어지는 납치라는 범죄 중 하나, 그러나 그 많은 범죄 중에서도 결코 흔하지 않은 과정을 경험하고 인생의 많은 시간을 고통 속에서 보내며, 앞으로 남은 시간도 절대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은 상처로 얼룩진 3096일의 이야기는 그래서 8년이 넘는 시간이라는 단순한 표기보다 3096일이라는 표시가 더 잘 맞아 떨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시간은 단순히 8년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없을테니까.. 3096일 동안, 그녀가 맞딱드려야 했던 더 많았던 고비와 고통을 표현하기엔, 1년이라는 뭉그뜨려진 단위보다는, 하루하루가 처절했던 길고 긴 시간의 3096일이 더 맞는 표현이 될 테니 말이다.


나타샤 캄푸쉬는 이미 이혼이라는 결코 좋지못한 과정을 경험한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그다지 행복하다고 기억되지 못할 유년을 보낸다. 아빠와 엄마가 함께 다정한 가정을 이루지 못하는 집에서 나타샤는 대인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끝없이 방황하며 엄마와도, 세상과도 섞이지 못한채 서성이는 아이였다.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에게서 남부럽지 않은 사랑을 받으며 유복하게 자란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전형적인 드라마의 스토리가 아니라, 이미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는 당하고 있을지 모르는 유년의 상처를 안은채, 더 깊은 어둠속으로 끌어내려져버리는 아이가 되어버린 나타샤. 세상에 섞이는 것을 두려워하고 어려워했던 아이는, 세상에 섞여본 적도 없는 상태에서, 납치라는 범죄로 인해 완전히 세상과는 단절된 상태에 놓이게 되어버린다. 감금된 채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곤, 자신을 납치한 납치범이 전부인 어둠으로 가득한 곳. 그곳에서 그녀는 3096일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감시당하고 통제당한채로 길고 긴 시간들을 보내며 홀로 살아남는다.

세상에 섞이지 못했던 소녀가, 홀로 세상과 단절된채로 결벽증처럼 그녀를 통제하고 감시하며 함께ㅔ 한 비정상적인 납치범과 함께한 상상할 수 없는 삶 속에서 살아남은 이야기. 이 이야기는, 실화이지만, 말 그대로 세상에서 과연 일어날 수 있는 일일까 싶을만큼 비현실적이기도 한, 그래서 더욱 충격적인 충격실화라는 표현이 아마도 정확하지 않을까?

3096일이라는 길고 긴 시간동안, 세상을 그리고, 세상속에 들어가길 꿈꾸며 언제나 벽 뒤의 세상을 상상했던 이야기는, 나타샤가 탈출에 성공하는 것으로 일단락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말 그대로 일단락일뿐, 그녀는 세상에 갓 처음 나온 아이와도 같은 두려움으로 세상을 마주해야만 한다. 그녀는 분명 납치라는 범죄로 희생된 길고 긴 시간의 상처를 안은 피해자이지만, 그 상처로 인해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더욱 힘든 존재가 되었고, 세상은 그런 그녀를 불쌍하게는 보지만, 사랑스럽고 온화한 눈동자만으로는 감싸주지 않는다. 그녀는 여전히 고통스러울것이고, 남은 시간을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평생 그 고통을 떠안은채로 그녀 삶의 전체가 상처로 남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어느 정도는 세상에 발을 내딛은 것 같다. 상처를 전하고, 상처를 타인에게 보여줄만큼, 담대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담대함 속에 이 책 3096일이 탄생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최소한 그녀는 이제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통해, 누군가가 자신처럼 상처받고 고통으로 가득한 삶에 처하게 놓이도록 가만히 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그런 그녀의 목소리를 3096일을 통해 듣고 기억할지도 모른다. 나타샤 캄푸쉬가 자신의 고통을 이토록 고통스럽게 떠오릴며 이 이야기를 책으로 남긴것은, 바로 그 점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가 그 고통을 알아주기를, 그리고 그 고통으로 가득한 삶이 또 생기는 것을 막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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