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구판절판


책을 읽기 전에 한 TV프로그램을 통해 작가의 모습을 먼저 보았다. 이미 평단에서는 인정을 받는, 그러나 그러기에는 한 없이 젊어보이는 김영하라는 이 작가는 실제로도 그의 모습만큼이나 젊은 감성이 살아 숨쉬는 이야기들로 문단의 호평은 물론 독자들의 사랑까지 받는 작가임과 동시에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 안에 갇혀있지 않고 많은 언어권의 나라에서 자신의 작품을 알린 이름만으로도 기대를 모으게 하는 젊은 작가의 새로운 글들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는 바로 그런 작가의 단편집이었다.

자신의 미출간 단편들을 엮어 만들었다는 한 권의 책을 들고, 책에 대한 이야기들을 짧게 나누는 그 젊은 작가는 지금, 이곳에서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끝없이 살피고 관찰중이라고 했다. 기억이 어렴풋한 과거나, 아직 닥치지 않는 미래, 혹은 영원히 알 수 없을 이상을 꿈꾸고 그리기 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바로 지금이라는 현재, 그리고 지금이라는 순간을 끝없이 관찰하고 있는 중이라는 작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라는 뭔가 흐릿한 여운을 남기는 이름을 가진 이 책은 바로 그런 작가가 언젠가 적어내려갔던 바로 그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을까? 책장을 펴들기 전, 작가의 눈으로 본 이곳과 현재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못 내 궁금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속에는 그 제목 그대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알 지 못하는, 혹은 알려고 하지 않는 지금과 이곳의 모습들이 나의 상상과는 다르게, 혹은 비슷하게, 또는 같게 펼쳐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에는 총 13편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일상에서 겪었을 법한, 혹은 앞으로 겪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상황들 안에 이어지는 이 이야기들은, 지극히 단조롭고 평범해보이지만, 그래서 더욱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흔들림을 느끼게 한다. 늘 같은 일상이 이어지지만, 인생을 뒤흔들만한 거대한 사건들이 그 일상속에 은밀히 숨어있다가 아주 작은 틈을 타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평온하기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들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해야할까?

마치 어제 내가 겪었던 일처럼, 혹은 어느 휴가지에서 겪었던 일인것처럼 어렴풋한 기억과 함께 읽혀지는 이야기는 그래서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낸 상상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나의 이야기. 그리고, 바로 지금, 오늘 내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처럼 낯익었고, 동시에 낯설은 묘한 느낌을 선사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에는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그 내막과 진실을 알 수 없는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지극히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나의 현실이 담고 있을지 모르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진실과 의미를 곱씹게 하는 13편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결코 행복하지 못한 가족사에 묶여, 돈이라는 피할 수 없는 문제에 얽혀 하루하루를 억지로 끌려가며 살아가는 여인에게 어느날 나타난 남자. 너무도 순수한 눈으로 자신은 로봇이라며 다가오는 비현실적인 사람에게 한 순간 끌리게 되는 여인은 로봇이라 말하는 비현실에 의지해 현실 속의 자신이 가진 억압과 분노를 풀어낸다.

이미 오랜 시간 전에 끝났던 한 남자와 한 여자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앞둔 어느 날, 어느 드라마나 영화,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마지막 밀회를 하게 되지만, 환상속에서 그려왔던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비현실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기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고로 끝을 맺기도 한다.

어느날 갑자기 하늘이 내린 선물처럼 자신에게 내려진 아름다운 목소리는, 그 목소리가 왔던 그 때처럼 순식간에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되기도 하고,

우연한 사고로 친밀함을 잃어버린 남자는 자신의 아내를 아내의 모습을 한 다른 존재로 의심하고, 아내는 친밀함을 잃어버린 남편의 친밀함을 채우기 위해 이미 오랜 시간 전에 헤어졌던 옛 연인과 일년에 한번 단지 사람과의 관계를 위해 외도를 하기도 한다.

자신이 한때 짝사랑했던 남자를 가로챘던 여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한 여성은, 자신을 위해 그 여인의 진짜를 보려 하지 않고 끝까지 외면하며 왜곡된 모습으로 그녀를 남겨두는 쪽을 선택하기도 하며,

3000원짜리 아이스크림에서 작은 행복을 느끼던 부부는, 3000원의 행복을 주었던 아이스크림에서 제품하자를 발견하지만, 3000원짜리 아이스크림이 주는 3000원 이상의 행복을 빼앗아간것에 분노하는 대신 3000원이 넘는 초콜릿으로 만족하는 지극히 단순한 계산에 익숙해진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타락한 경찰은 경찰으로서의 본분보다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쳐 스스로 그 끝이 어딘지 빤히 보이는 끝을 향해 끝없이 걸어들어가고,

참혹한 가족의 기억을 가진 20대의 여인은 가족의 아픔 속에서 걸어나오기 위해 수 없는 오류와 실수를 범하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 참담한 기억의 한 덩어리로 기억되어가고, 그녀 자신도 과거와 현실 사이에 위태로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아슬아슬한 하루하루를 그저 이어가고 있다.

때로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때로는 황당하고도 당황스러운 이야기들을, 때로는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진짜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다양한 이야기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안에서 매일매일 우리가 겪고 있거나 혹은 겪을지도 모르는 다양한 일화들에서 현실과 비현실, 과거와 현재, 일상과 특별함을 구분없이 섞어 놓은, 그래서 어쩌면 더욱 현실적이고도 더욱 환상적인 우리네 일상에 근접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평온하고 안정되어 보이지만 언제고 무너질지도 모르는 그 위태로움을, 그래서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지키고자 애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고 말이다. 지루하고 단조로운 이 일상조차 그렇게 혼신의 노력속에 지켜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하루하루였기에 그 위태로움과 위기까지도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무덤덤하고 건조한 일상. 그 속에 숨어있던 팽팽한 위기의 순간들에 대해, 그리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 지켜내었던 평온의 순간들에 대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는 때로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때로는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며, 때로는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그 의미를 곱씹을 기회를 주는 듯 했다.

젊고 도시적인 감성 시대의 보편적인 고통을 함께 하고 생각하는 젊은 작가로서의 모습으로 언제나 기억되고 있는 작가 김영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 나에게 일어났을 때에만 비로소 그 의미를 곱씹게 되는 일상의 수 많은 일들을 담은 이 한권의 책을 통해 일상과 지금, 그리고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잠시 서서 곱씹어볼 여유와 의미에 대해 책속의 한 토막을 통해 생각해보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몰랐던 나와 누군가의 일상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를 수 없는 조금 더 가치 있는 순간으로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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