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오바마 북클럽 1
조지프 오닐 지음, 임재서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09년 10월
품절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대게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그 책을 읽고 난 나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소감일 경우도 있고, 그 책의 여운이 끌어당기는 개인적인 기억들인 경우도 있지만 어쨋든 거의 매번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그 순간 떠오르는 느낌은 분명 늘 있어왔다. 그리고 나는 그런 느낌들을 되새기며 책의 이야기와 그 순간의 감정을 기억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 그렇지 못한 한 권의 책을 만난것 같다. 무엇인가 끝없이 말하고 있지만 무엇인지 모를, 그러나 알것도 같은 아리송한 무엇인가를 한껏 뭉쳐있는 잘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얽힌 그대로 던져버리고 간 그 책의 제목은 바로 <네덜란드>이다.


희망과 위기를 동시에 준 곳, 뉴욕.

<네덜란드>에는 잘나가는 애널리스트 한스와 그의 아내, 그리고 아들이 이루고 있는 그의 가족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스는 변호사인 아내가 미국으로 진출하기를 원하자 아내를 따라 뉴욕으로 이주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직장을 얻고 석유업 관련 애널리스트로 자리를 잡아 꽤 잘나가는 성공한 애널리스트로 나름의 삶을 유지한다. 그러나 9.11이후 그의 아내 레이철은 다시 그들이 왔던 영국으로 돌아가길 원하게 되고 그렇게 한스는 레이철과 그의 아들을 떠나보내고 홀로 뉴욕에 남는다. 물론 일정간격으로 가족들을 보기 위해 날아가지만 그에게 가족이 함께 하지 않는 뉴욕은 어딘지 안정감이 없고 소속감을 느낄 수 없는 불안한 곳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영원한 이방인.

그는 흔들리는 뉴욕에서의 시간동안 끝없이 과거를 맴돌게 된다. 뉴욕이라는 땅에서 자기 분야의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저명한 애널리스트가 되었지만 여전히 뉴욕은 임시운전면허 하나 발급하는데에도 끝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되묻게 하는 발을 딛기엔 어렵고 난해한 땅인 것이다. 언제나 뉴욕이 멀게만 느껴지는 한스는 자연스레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위안을 얻게 되고 그 위안의 매개중 하나로 크리켓이라는 운동을 선택한다. 어린시절 어머니가 늘 동행하던 크리켓, 자신이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아주던 그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기 위해 크리켓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스에게 크리켓은 승부가 중요한 운동이 아니다. 뉴욕스타일의 크리켓을 익혀 팀을 이기게 하는것 보다 중요한 것은 어린시절 그대로의 방식으로 그 기억으로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크리켓과 현실.

한스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뉴욕에서의 소외감을 외면하는 방식을 선택했다면 그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미국이라는 땅에, 그리고 뉴욕이라는 도시에 적응하고 있는 혹은 그곳을 자신에게 적응시키려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네덜란드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또 다른 한 사람, 척 렘키순이다. 트리니다드 출신의 흑인 척 렘키순은 한스와 마찬가지로 검은 피부의 이방인이지만 그가 뉴욕을 대하는 방식은 사뭇다르다. 한스가 자신만의 기억을 더듬는 것으로 과거에서 현실의 위안을 찾는 소극적인 방법을 선택했다면 척은 자신이 좋아하는 이민자들의 운동 크리켓을 뉴욕의 중앙으로 끌어오려한다. 크리켓을 할 수 있는 대형 경기장을 건설하는 꿈을 꾸는 척은 그래서 과거의 기억으로 도망하기 보다는 현실로 자신의 과거를 이끌어오려한다. 스스로가 이민자라는 이름의 영원한 이방인임을 인정하고 그대로 현실에서 연명하려는 한스에 비해 척의 꿈은 그래서 때로는 황당하고 때로는 말도 안되어 보이기까지 한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서 또 다시 만들어진 이민자들. 그들이 각자 미국이라는 땅에서 스스로를 찾아가는 방식을 <네덜란드>는 참으로 냉정하고 차갑게, 그러나 한켠의 희망을 품은채 보여준다


오바마가 읽었다던 그 소설.

<네덜란드>라는 이름의 이 책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미국의 첫 흑인대통령인 버락 오바마가 읽고 있다는 한줄의 소식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무엇이 한나라의 대통령. 그것도 그 존재만으로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상징처럼 느껴지는 그 대통령의 눈을 끌었던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미국이 아직도 온전히 끌어안고 있지 못하는 이민자라는 존재에 대해 사실적이고도 잔혹하게 그 현실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민자의 나라라는 이름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열린 곳처럼 보이는 미국의 거대한 땅, 그곳에서 부유하는 이민자라는 같은 이름의 새로운 이방인들은 미국이 놓인 현실이고 동시에 풀어야할 과제이기 때문이니 말이다. 물론 <네덜란드>라는 이름의 이 소설은 그저 그들의 현실과 그들의 좌절, 그리고 그들이 한 때 꿈꾸었던 꿈에 대한 것들을 그리고 있을 뿐이지만 그 이야기가 잔인하리만큼 사실적이고 현실 그대로이기 때문에 그곳의 지도자인 한 사람의 눈을 끌었던 것은 아닐까? 이민자들이 꿈을 안고 어딘가를 향할때 그들은 그저 물질적인 안정이나 사회적인 지위만을 그들의 최종목표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속했떤 땅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그들이 속할 곳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더이상 이민자가 아닌 그곳의 사람이기를 바란다. <네덜란드>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바로 그들을 받아들여줄 완전한 포용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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