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26
오스카 와일드 지음, 하윤숙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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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방 바닥에 누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어대던 세계명작동화 중 특히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동화는 바로 행복한 왕자였다. 온 몸이 금박으로 뒤덮혀 있고 눈과 칼에는 보석이 박혀 수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 보며 행복을 소원했던 행복한 왕자라는 이름의 거대한 동상, 높은 동상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지내던 행복한 왕자는 그 자신은 화려한 금과 보석으로 뒤덮여 있지만 그가 내려다보고 있는 마을에서는 끝없이 불행한 이들의 힘겨운 한숨이 들린다는것을 알게 되고, 그들의 한숨이 가난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행복한 왕자는 자신의 발에서 하룻밤을 보낸 제비에게 부탁해 자신이 가진것들을 하나씩 나누어주기 시작한다. 칼에 박힌 보석과 자신의 눈, 그리고 다신을 둘러싼 금박들까지.. 그리고 행복한 왕자와 제비는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죽게 된다. 물론 그들의 영혼은 영원한 천국으로 가지만 말이다. 어린 아이가 읽기에는 다소 많다 싶을 정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행복한 왕자,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저 단순히 착한일 하면 죽어서라도 천국에 간다는 식의 단순한 의미를 가진 동화는 아니었지만 그 의미를 모두 알지 못했음에도 무슨 이유에선지 그 당시에도 내게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화였다. 그리고 그 동화의 작가가 바로 이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이다.

세 사람의 미묘한 관계, 그 안의 불안감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이끄는 등장인물은 크게 세 사람을 들 수 있다. 도리언 그레이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자신의 모든 열정을 그의 초상에 투영하여 그의 초상을 그린 화가 바질 홀워드, 그리고 냉정하고 잔인할만큼 세상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헨리 경,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초상화의 주인공 도리언 그레이가 바로 그들이다. 화가인 바질은 자신에게 미적 영감을 주고 자신의 작품에 모든 열정을 쏟아붇게 만드는 도리언의 매력에 빠져 그의 초상을 그리기 시작한다. 온전히 순수한 자신의 열정과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는 도리언 그 자체의 모습을 표현해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며 말이다. 그리고 그 그림이 완성되는 그 순간 그를 찾아온 그의 친구가 있다. 모든 세상의 존재하는 것들을 피상적이고 외면적으로만 파악하고 바로 그것이 진리라는 신념을 가진 귀족 헨리 경이 바로 그이다. 친구인 바질이 그린 도리언의 초상화를 보고 도리언이라는 인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는 바질을 통해 도리언을 만나게 되고 도리언은 그만의 확고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헨리에게 매력을 느낀다. 아직 어린 소년기의 도리언은 자아를 만들어가는 그 순간 헨리의 사고방식에 강한 이끌림을 느끼게 되고 그의 신념을 마치 자신의 신념인듯 흡수하기 시작한다. 세상을 헨리의 방식으로 보기 시작한 도리언, 바로 여기에서 도리언의 불행이 시작한다.


그림 속에 나타나는 잔인한 흔적, 스스로에게서 도망가는 도리언

도리언에게 도리언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절대성을 주장한 헨리에 의해 도리언은 자신이 가진 가장 값진 것은 그가 가진 외모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 믿음은 바질이 도리언을 그린 초상화에 대한 질투와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하루가 지나면 하루만큼 자신은 늙어가고, 초상화 속 자신은 그대로 젊은 모습을 유지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도리언은 자신이 가진 가장 큰 힘이 자신에게서 초상화로 옮겨간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도리언은 기도하기 시작한다. 초상화의 자신이 현실의 자신을 대신해서 늙어가고 자신은 그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하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소원은 이루어진다. 도리언은 늙지 않고 초상화가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퇴폐와 향락에 물들어 추하게 변하는 도리언의 영혼은 그가 소원한대로 현실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영혼이 변화할수록 그 대신 늙어가는 도리언의 초상속 도리언은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시작한다. 도리언은 초상화를 마주 볼 수 없게 되고 추악하게 변해가는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는 초상화를 오래된 공부방에 가두어놓기에 이른다.


동화처럼 돌아오는 내면과 외면의 자리.

이야기가 끝으로 갈수록 도리언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그래서 읽는 과정에서 그 끝을 쉽게 예측할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주는 의미는 단순히 정해진 순서에 따라 펼쳐지는 이야기의 전개방식에 있지는 않다. 어린시절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의 눈길을 끌었던 그 동화 <행복한 왕자>를 지은 바로 그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나는 잠시 스스로의 오점을 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포를 보았던것 같다. 어떤 두려움도 나 스스로의 잘못을 마주보는 것에 비하지는 못한다는 사실 말이다. 게다가 그것이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가장 피하고 싶었던 스스로의 모습이라면 그 공포는 아마도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싶을 정도가 아닐까? 도리언 그레이가 자신의 실제를 대신에 변하는 초상화를 마주 보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그 공포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치명적인 오점이 한두가지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오점을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시작이 어쩌면 그것을 마주하는 것이라는 가장 간단한 진리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그려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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