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큐에게 물어라
야마모토 겐이치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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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큐에게 물으라 했다.
리큐가 무엇을 말했노라라고 하지 않고, 리큐에게 물으라 했다.
리큐에게 무엇을 물어야 하는 것일까?
리큐는 답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가 그를 향해 쏟아낼지도 모르는, 아직 그 의미조차 완성되지 않은 수 많은 질문들 앞에서..
리큐는 그저 담담히 답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되었든.. 그에게 물으면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리큐에게 물어라>라는 제목의 꽤 두툼한 한 권의 책을 들고 앉아, 한동안 제목을 꼽씹었다.
과연 나는 리큐에게 물을 질문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리큐에게 무엇인가를 질문하기 위해 질문을 준비했던가 싶어서..
리큐에게 답을 원하는 질문이 없다면, 이 책에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망설임이 생겨서 말이다.

나에게 이 책의 첫 장을 넘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리큐에게 간절히 답을 듣기 원하는 나의 질문이었다. 리큐에게 물을 것이 없다면, 어쩌면 그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는 답도 없으니 결국 이 한권의 책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을 펼치기 전 질문을 찾아야 했다. 리큐에게 물어야할 질문, 단 하나의 질문을.

그리고, 책의 첫 장을 펼치며 조용히 리큐에게 물었다.
"다도는 무엇인가요?'

<리큐에게 물어라>는 일본 문화의 큰 흐름을 주도 하고 있는 다도, 그 다도를 역사속에서 완성했다 평가 받는 센 리큐의 생애를 소설로 풀어낸 이야기이다.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었던 부유한 어물상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 유희에 눈을 떳으나 모든 것에 실증을 느끼고 다도의 세계에 빠져들었던 젊은 시절을 지나, 다도로 대표되는 일본의 미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다두로서의 인생을 살고, 더 나아가 최고의 권력자였던 히데요시의 스승이었으나 결국 그의 분노와 질투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었던 역사속의 인물 센 리큐. 일본의 대표적인 다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그의 삶을 통해 작게는 한 인물의 인생과 그의 인생에 진정한 가치, 그리고 그가 그토록 집착하고 몰두 했던 다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살펴보고 크게는 일본문화의 큰 흐름을 주도 하고 있다는 바로 그 다도가 역사 속에서 어떤 사건과 의미들을 만들어내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이야기를 책 안에 담고 있는 것이다.

사실, <리큐에게 물어라>를 골라 들었던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다도"라 불리우는 일련의 과정. 사람을 초대하고 차를 끓이며 그 차를 나누어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길래 한 나라의 문화를 주도하고 역사속에서 큰 의미로 자리잡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쓰디 쓴 차를 한잔씩 나누어 마실 뿐인 다도가 무엇이길래, 명문이라는 이름으로 한 가문을 일으키고, 다두라는 이름으로 어떤 학자의 위엄보다 더 높은 명예를 선사하는 것일까에 대한 궁금증. 바로 그 궁금증을 바로 이 책 <리큐에게 물어라>를 통해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하지만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센 리큐와, 그 처럼 다도에 몰두하고 그를 질투하거나 존경해온 수 많은 사람들과의 일화속에서도 그 답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리큐에게 물어라>는 다도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을 담은 책이 아니라 다도라는 공동의 관심사를 가졌던 일본의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였고, 다도라는 매개를 통해 무섭도록 날이 선 채로 권력을 탐하고 욕심을 채우려했던 권력가들의 쟁투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한때는 스승으로 한때는 질투의 대상으로 존재했던 센 리큐는 날 선 일본의 역사 속에서 또 하나의 욕망인 아름다움에 대해 끝없이 갈망하고 집착하며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진 다두라는 이름의 권력가였다. 권력을 탐하고 힘을 과시하며 생명을 아까워 하지 않는 무인들을 눈 아래로 내려다보면서도 그 자신도 무언가를 끝없이 탐하고 자신의 안목을 과시하며 그것을 위해 치루어지는 어떤 희생을 아까워 하지 않았던 다른 이름의, 그러나 같은 모습을 한 권력가 말이다.

<리큐에게 물어라>에는 그래서 책 속에서 다도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내어놓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가졌던 의문처럼 도대체 다도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수 많은 사람들이 억만금의 재산을 아까워하지 않고, 그토록 집착하며 몰두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수 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집착하고 몰두하며 그 자신들도 나름의 권위있는 다도인으로 명성을 가졌던 수 많은 사람들. 그들 조차도 알 수 없었던 다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물음. <리큐에게 물어라>는 어쩌면 일본의 역사와 일본의 문화가, 그리고 당시의 시대와 현재가 센 리큐라는 위대한 다도인에게 묻고 싶은 단 한가지 질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누구도 다도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었기에, 최고의 명인으로 역사에 남은 그에게, 그 답을 듣기 위해 내어놓는 한 마디의 질문 말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뛰어난 심미안을 가지고 언제나 최고의 미만을 추구했던 그라면 혹시나 알지도 모른다는 한가닥 희망을 걸고 그에게 답변의 기회를 던진 것은 아니었을까? 그 누구도 그 답을 알 수 없었기에 그들이 진정한 다인이라 인정했던 리큐라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어놓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말이다.

하지만 책장을 뒤로 넘기면 넘길 수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리큐에게서도 답을 얻을 수 없었을지 모른다고..그 자신도 무언가를 위해 끝없이 갈망하고 원했던 욕망을 가진 뜨거운,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이었으니 말이다.그가 인생을 걸고 끝없이 다도를 탐하고 갈망했던 것은 그 역시 그 답을 얻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다도가 아닌 다도로 표현되는 수 많은 사람들의 욕망과 탐욕, 그리고 인생에 대한 답 말이다.

한 여인을 얻지 못해 인생모두를 그 아련한 그리움을 끌어안고 살아야 했던 인간으로서,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완전한 것은 없으리라는 어렴풋한 답을 인정하기 위해 그는 그토록 단 하나의 완벽함을 추구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인가를 가지기 위해 끝없이 탐하는 인간이라는 존재. 그 인간의 욕망 앞에 때로는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인간이라는 존재 역시 탐욕의 대상이 되어버림을 경험했던 젊은 시절의 리큐의 기억은, 가장 완벽한 생명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간직하고 있으나 그 아름다움을 미쳐 깨닫지 못하고 그 외의 것들에만 불필요한 가치를 부여하는 인간들에 대한 반감으로, 그리고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완벽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그의 인생으로 모습을 갖추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다도를 통해 그가 추구했던 최고의 미는, 그 어떤 최고의 아름다움에도 완벽함이란 존재하지 않음. 그 불완전함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비싼 명물과 아름다운 장식으로 꾸며져 있는 다실에 앉아있는 명예와 권력을 갖춘 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삼켜야 하는 것은 누군가의 손에 끓여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언제나 불완전한 쓰디 쓴 차 한잔일테니 말이다. 다도를 통해 그들이 삼키는 것은 어쩌면 책의 한 구절에 나오듯, 쓰고 불완전한 인생이라는 것의 무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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