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축제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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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사실 나에게 작가의 이름은 그다지 익숙한 이름이 아니었다. 단지,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후보자의 이름, 그리고 그 때문에 우리나라 최초로 고은시인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실망으로 바꾸어 버린 수상자의 이름으로 처음 귀에 들려온 이름일 뿐이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노벨 문학상 수상소식을 전해듣고, 나는 고은시인이 수상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살짝 밀쳐둔채 이런저런 인터넷 공간의 틈바구니에서 그의 작품에 대한 짧은 이야기와 작품 목록등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그 중 그의 대표작으로 불리운다는 바로 이 책 염소의 축제에 대한 글들을 짧게나마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그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염소의 축제를 만나게 되었다. 노벨 문학상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무엇인가를 상징하는 상을 받은 작가의 대표작. 염소의 축제는 그 이름과 작가의 수상경력만으로도 뭔지 모를 위엄과 경건함을 함께 보여주는 듯 했다. 도대체 이 안에는 어떤 세계가 담겨 있는 것일까?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세상의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일까? 노벨 문학상이라는 거대한 상을 수상한 작가의 문학세계, 그 한 토막을 앞에 두고, 나는 기대와 두려움을 한꺼번에 품에 안은채 염소의 축제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의 첫장을 펼쳐들었다.



염소의 축제는 도미니카라는 우리에게는 아주 익숙치도, 그렇다고 너무 생소하지도 않은 나라의 독재정권치하의 격렬하고도 잔인했던 사회상과, 그 시대를 살았던, 혹은 그 시대를 살짝 비켜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야기이다. 우라니아라는 이름의 한 여성이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던 어린시절의 자신의 조국 도미니카의 과거와, 그녀가 경험하고 살아야 했던 시절의 도미니카,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도미니카에 대한 이야기. 누군가가 시작했고, 이룩했으며, 무너져내렸던 한 나라의 시대상을 우라니아, 그녀의 삶으로 보여주고, 그녀의 입으로 전하며, 여기에 그녀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이야기들을 더해 염소와 염소의 시대, 그리고 염소의 축제를 지나 염소에 대한 기억으로 남은 도미니카의 이야기를 전한다.

35년의 시간동안 조국을 떠나 단 한번도 아버지와 사촌들의 편지에 답장을 하지 않았던 우라니아, 독재정권 아래서 수령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던 아버지로 인해, 때로는 남들이 누리지 못한 것들을 누리고, 때로는 혜택을 받았을지 모를 그녀가, 어느날 조국을 떠나 35년이라는 길고도 긴 시간이 흘러 이제는 딸에게 말 한마디 자유롭게 전하지 못하는 아버지 앞에서 차가운 조롱과 독설을 끝없이 뱉어내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그 어떤 소식도 전하지 않은 채로, 마치 조국과 가족을 망각한 듯, 그리고 절대로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듯 차갑고 냉정했던 우라니아에게는 그녀의 조국 도미니카의 독재시절이 어떤 상처로 남아 있었던 것일까? 염소의 축제는 우라니아라는 상처입은 여성의 눈과 기억과 입을 통해, 당시를 살아내야 했던 도미니카 사람들의 치욕과 고통, 그리고 절대로 치유되지 않을 지 모르는 상처들을 마치 이제는 지워진 기억의 한 조각일 뿐인 것처럼 때로는 차갑고도 아프게, 때로는 고통스럽게 말하여 그 상처와 고통이 희미해졌을지언정 절대 사라지지 않는 흔적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라니아가 지금 병든 아버지 앞에서 뱉어내는 독설과 조롱 사이로 그녀가 알지 못했을지도 모를, 역사 속에 남은 또 다른 이야기들을 전한다. 독재자 트루히요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운 이들의 이야기와 오랜 시간 권좌에 앉아 스스로를 구원자처럼 여기며 자신이 조국 도미니카를 위해 헌신하며 투쟁한다 여기는 트루히요의 오만과 착각, 그리고 그런 착각 속에서만 가능했을 그의 만행들이 바로 그것이다.

3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권력의 최상층부에 앉아 모든 것들을 좌지우지하며 휘둘렀던 독재자. 권력만으로도 충분히 수 없이 많은 도미니카 국민들을 공포와 좌절속에 떨게 했음에도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한채, 수 없이 많은 여인들을 농락하고 유린하며 마치 그것마저도 자신의 특권이요. 당연한 권리인것처럼 행사했던 염소라 불리운 독재자 트루히요의 모습과, 그가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며 내리는 결론들은, 최후에 독재자를 향해 겨누어진 그의 측근들과 국민들의 분노가 얼마나 당연한 것인지, 그리고 독재의 거대한 권력을 오랜 시간 누리는 자의 뻔뻔함이 얼마나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것인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듯도 하다.

또한, 그러한 독재자 아래 충성을 맹세하고 힘과 부를 얻기 위해 발 밑에 엎드린채 고개를 숙이는 수 없이 많은 자들의 비열함들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게 했던 우라니아의 그 끝을 알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혐오와 증오의 이유 역시 밝혀지게 된다. 독재자 트루히요의 바람둥이 아들에게 혹여나 딸이 유혹당할까 두려워 그 근처에도 있지 말라했던 당대의 지식인 카브랄은, 독재자가 자신을 버리고, 자신이 가진 것들을 모두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토록 아꼈던 자신의 딸을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충성을 바쳤던 바로 그 독재자에게 마치 자신의 죄를 속해해달라는 구걸의 재물로 바친 것이다. 우라니아는 그녀의 아버지에 의해 독재자에게 처녀를 잃고 자신의 조국과 자신의 가족이 더 이상 자신을 지켜주지 못함은 물론, 그들로 인해 자신이 상처입고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조국과 가족을 떠난다.

염소의 축제처럼, 세상 그 어딘가에서 행해지는, 혹은 행해졌던 독재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야기들은, 사실 적지 않다. 그리고 너무도 슬픈 사실은, 이러한 독재정권 아래에서 고통속에 신음하던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사실에 기인하고 있다라는 점일 것이다. 사실 이런 독재정권의 고통과 상처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접하게 될 때마다 우리 역시 이런 시대를 지나왔음을 매번 떠올리게 된다. 무엇하나 자유롭지 못했던 시대. 많은 사람들의 피와 고통으로 겨우겨우 검은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피로 물든 시대의 기억과 이야기들은, 언제나 잊고 싶지만, 그럼에도 절대 잊을 수 없는, 또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우리의 가장 어둡고도 깊은 상처이기도 하다. 염소의 축제가 그리고 있는 도미니카의 어두운 시절에 대한 기억은 우리가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바로 그 상처와 놀랍도록 닮은 모양과 깊이의 것이기도 했다.

염소의 축제는 한 나라가 품은 시대의 아픔을 국가라는 거대한 차원의 것으로 이해하고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대가 품었던 그 고통의 흔적들이, 그 시대가 지나간 뒤에도 남은 시간들을 살아가야 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국민들에게 또 다시 어떤 흔적과 상처를 남기는지를 우라니아의 기억과 처절했던 삶을 통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염소는, 악마와 번식력의 상징이라고 한다. 악마와 번식력, 어쩌면 서로 별개의 것이라고 느껴지는 이 두가지의 상징은 염소라는 하나의 매개를 통해 함께 퍼져나간다. 세상에 고통과 상처의 근원이 되는 악마적 본성은 그래서 염소의 번식력처럼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그 뿌리를 길고도 넓게 뻗어 어느 틈엔가 거대한 또 하나의 악마로 모습을 드러내곤 하니까 말이다. 트루히요가 뿌린 도미니카의 독재의 고통 역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트루히요라는 사람은 사라졌을지라도, 그가 남긴 독재의 공포와 잔해들은 여전히 시대를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에 고통과 상처의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우라니아처럼, 35년간 조국과 가족을 떠나있었음에도 완전히 씻어내지 못한 좌절과 증오를 통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될 지도 모른다.

완전무결한 역사를 지닌 국가는 없다. 그 어떤 나라라도 역사의 한 조각에는 분명 피로 물든 부분이 여전히 남아있으리라. 하지만 누군가의 절대적이고도 영원한 권력에의 욕심, 그것은 그 개인의 욕심이 아닌, 한 나라의 운명을 흔들고 고통으로 남게 하는 악마의 그것과 다를 것 없다는 사실을, 어쩌면, 지금도 어디선가 살아남아 있을 염소에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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