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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짐승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한 글자, 또 한 글자...
참으로 오랜만에 눈으로 글자들을 꾹꾹 눌러가며 읽어내려갔다. 한 단어, 한 단어에 실린 그 알 수 없는 의미들을 행여나 보고도 깨닫지 못할까봐.. 그렇게 공을 들여 오랜 시간을 글자들 속을 헤매이고도, 글자 속에 숨어 있는 공포와 좌절들을 미쳐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쳐버릴까봐.. 책 속에서, 시간 속에서 사라지게 해 버릴까봐 순간순간 긴장을 늦추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눈으로 읽어 넘긴 단어들이 쌓여갈수록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시대라는 무게와 시대 속에 녹아있던 억압이라는 단어가, 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얼마나 단단히 묶어, 조일 수 있는 거대한 힘인지를.. 그 힘 아래 깔려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참담한 심정으로,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단련시키며 그 힘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그 고통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힘이 들었다.
<마음짐승>이라는 알 수 없는 제목의 이 책들 속에는.. 그렇게 눈으로 글자 하나 하나를 눌러 읽어가며 담아낸 힘겨움이 책 장의 무게로는 측정되어 질 수 없을만큼 가득하게 담겨 있었다. 과연 내가 이렇게 글자를 읽는 것만으로 그들의 그 시간들을.. 모든 것들이 상실되어 하나도 가질 수 없었던 그 시대의 고통들을 지나가버리는 것이 괜찮은 것인지 수 없는 의문을 가져야했을 만큼 말이다.
<마음짐승>은 작가인 헤르타 뮐러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배경을 가지고 시작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르타 뮐러의 생을 둘러싸고 있는 그녀의 청년기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녀가 살아온 시대를 떠올리며 한 글자 한 글자를 따라가야 한다. 독재와 억압. 공포와 가난이라 불리우는 수 없이 많은 시대의 고통들을 온 몸으로 겪으며 살아온 한 시대의 증거물이기도 한 그녀 자신의 이야기는, 그래서 단순히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한 나라의,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공유된 기억이기도 할 것이다.
또, <마음짐승>은 모든 사람들이 가난을 얼굴에 심고 살아가는 곳에서 전쟁이 끝났음에도 전쟁 속에 남겨져, 여전히 초록 자켓만을 입어야 했던, 전쟁의 피로 얼룩진 부모세대의 고통과 어두움의 그림자가 여전히 존재하는 가운데 그들 자신도 그 고통의 일부를 물려받아야만 했던,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그저 받아들이는것으로 지나가려 하지 않았던 그 다음 세대를 살아간 젊음들의 몸부림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헤르타 뮐러는 <마음짐승>으로 자신의 과거와 함께 그 시대의 젊음들 앞에 놓여있던 공포에 눌린 무기력함과, 그럼에도 놓을 수 없었던 희망이라는 선택지 앞의 갈등을 써내려가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온 책 속의 그녀는, 작은 네모 안에서 함께 살아가다, 네모 안의 더 작은 네모의 벽장 속에서 목숨을 끊은 같은 방의 롤라를 통해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 전체 속의 개인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갸냘픈지를 눈으로 보고 억압의 공포와 두려움을 배워나간다. 그리고 롤라와 함께 보낸 시간들을 기억하는 것으로 그녀를 존재시키려 하지만 그것마저도 허락되지 못한다. 벽장 속에 목을 맨 롤라는 그저 없어진 무엇일 뿐인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라져간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해 간직한 공책 한권도 허락되지 않은 세상, 그저 얇은 스타킹과 마스카라가 들어있을 뿐인 트렁크 하나도 온전히 보전할 수 없는 세상에서 그녀는 머리카락 한 올처럼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위태로움을 느끼며 살아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녀는 롤라의 죽음과 그 죽음의 무가치함을 보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는다. 누군가는 빨간 머리카락을, 누군가는 갈색 머리카락을 지니듯, 그 모두가 다른 이들이지만, 그저 모두 머리카락이라는 한 가지 단어만을 허락받은 세상에 살고 있기에 그녀는 그렇게 자신에 대한 의문을 쌓아가고 있었으리라.
단지 한 가닥 머리카락이 아닌, 다른 사람과 다른 바로 나의 머리카락을 끝없이 소망하고, 그 머리카락으로 다른 사람과는 다른 나를 증명하고자 했던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의 바람을 시대의 어둠은 단 한마디 비명도 허락하지 않고, 그저 꿀꺽 삼겨버릴 뿐이다. 빨간머리는 빨간머리로.. 갈색머리는 갈색머리로.. 검은 머리는 검은 머리로 대체될 뿐인 세상이기에..
모두 다 조용히...침묵의 불편함을 삼키고 조용히..
이 도시와 저 도시는 그저 위치만 다를 뿐, 그저 모두 같은 도시이듯이.. 너희도 그저 사람일 뿐. 누군가가 사라지면, 다른 누군가가 자리를 메꾸기만 하면 되는.. 너희는 그저 사람. 이름도, 나이도, 머리카락의 색도 상관없이.. 그저 너희는 한 덩어리의 사람 뭉치라고 말하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찾는 방법은 어쩌면 기억되지도 못할 죽음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바로 그 단 한 순간의 선택에만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어쩌면 롤라의 죽음 속에서 이미 깨닫지 않았을까? 그녀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내 자신이 나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은 바로 죽음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롤라처럼 죽음을 선택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죽음을 선택한 찰라의 바로 그 순간에는 자신이 존재할 수 있었을지라도.. 죽음 후에는 다시 내가 될 수 없는 곳에 살고 있음을 롤라의 죽음을 통해 또 확인했을 테니 말이다.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롤라의 죽음으로 그녀는 그녀가 살고 있는 그 세상에서는 영원한 "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책 속의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얻고, 그들에게 주어진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끝없이 갈등하고 고민한다. 모든 것들이 상실된 세상에서, 나를 말하는 것에 대한 댓가는 그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크고, 그들을 끝없이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하며, 또 다른 세상을 끝없이 갈망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망명이라는 단어를 선택한다.
그녀는 망명했고, 그녀의 친구도 망명했다.
책 속에서 그들은 그들을 눌러왔던 억압과 고통의 이름이 된 자신들의 나라를 벗어나고야 만다.
이제 드디어 나를 말할 수 있는 세상.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그들이 떠나온 세상은 그들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나를 말할 수 없는 세상에서 말로써 죽음을 강요당한 그들에게, 새로운 세상은 그들이 떠나온 세상 속에 남겨진 그들을 물어온다. 이미 죽어버린 자신을 요구하는 새로운 세상은, 어쩌면 그들에게 '너의 존재는 원래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망명한 그녀의 친구를 죽음을 선택한다. 그는 어쩌면 원래의 내가 죽었듯, 나는 죽어야 한다고 것은 아니었을까?
시대는 그렇게 그 젊음들에게 끝없는 고통을 강요했다.
<마음짐승>은 그래서 그들을 고통으로 몰아가고, 죽음으로 몰아간다.
<마음짐승>의 첫 장, 그 안의 첫 글자 부터 맨 마지막의 점 하나까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을 들여 읽어내려갔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 글 안에 담긴 그들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느꼈는지 장담할 수가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 충분하다 할 수 있을 자유속에서도 더 많은 자유를 그리는 세상에 살고 있는 나에게 단 하나의 자유도 허락되지 않았으나,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보내는 것조차도, 떠올리는 것 마저도 허락되지 않은 그 삶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 말이다. 그저 나는 글자들 위를 떠다니는 공포와 사라진 망명중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목록 속에서 그 공포를 상상할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원했던 하나에 대한 간절함은 그 공포 속에서 더욱 강한 존재로 다가온다.
헤르타 뮐러의 글 과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간절함.
시대와 국가라는 거대한 힘에 눌려 침묵했으나, 그 침묵속에 여전히 불편함으로 자리잡아 살아남은 그 간절함이 끝내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말을 한다고 해도 결코 우스워지지 않을 역사속에서 그 존재를 발할 것이다.
<마음짐승>은 어쩌면 공포와 두려움 속에 한 없이 웅크리고 있던, 그러나 분명 죽지 않고 살아숨쉬며 존재했던 침묵의 불편함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