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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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어느 학년즈음의 윤리시간에, 우리를 담당하시던 윤리 선생님이 자신이 꿈꾸는 스스로의 인생을 그려보자고 한 적이 있었다. 아마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창시절 한번쯤은 이런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고작 13~4살의 교실 안 아이들은 서로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조용히 앉아 그렇게 자신에게 닥쳐올 인생이라는 시간을 꿈처럼 그려보았었다. 마치 앞으로 다가올 나의 인생은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확신과 힘이 나에게는 있다는 듯 말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생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하는 어린 나이였기에 가능했을지 모르는 그 꿈같은 인생의 그래프는 늘 위로만 올라가고 있었던 것 같다. 나에게 준비된 행운들이 차례로 나를 환영하며 나에게만은 축복을 아낌없이 내려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그리고 이제 시간은 흘러, 나의 나이도 30대중반에 가까워져 있다. 여전히 나는 10대의 어느 시절처럼 나의 인생이 아름답고 평탄하며 행복이라는 축복을 남김없이 받기를 바람하고 있지만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인생이란 시간은 내가 원하는 만큼, 그리고 내가 그 시절 바람했던 것 만큼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주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인생은 가끔 내가 원하지 않는 것들을 나에게 던져주기도 하고,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을 만들기도 하며,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고통을 준비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이고 있다. 아름답고 화려한 인생을 꿈꾸지만, 그렇게 우리는 때로는 시시한, 그리고 때로는 내 맘과 같지 않은 시간들을 맞딱드리기도 한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시간이니까..

<올리브 키터리지>는 바로 그런 인생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크로스비라는 이름의 마을에 살고 있는 올리브 키터리지 내외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이들 주변에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수 없이 많은, 각자 다른 사연을 담고 있는 13가지의 이야기는 때로는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이고, 때로는 내가 마음에 담고 있던 상상의 이야기이며, 때로는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할만큼 일상의 아주 작은 변화와 갈등, 그리고 그 갈등이라는 이름의 틈새로 스며드는 인생의 힘겨움을 담고 있다. 스스로를 통제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욕망인 식욕을 억누르다 그마저도 통제의 바깥으로 밀려나며 죽음을 향하는 십대부터, 병상의 남편과 자신의 마음과는 다르게 자신의 사랑을 부정하는 아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호소하는 노년의 올리브 키터리지까지, 세대와 각자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부여된 이들의 고통은 어쩌면 누군가의 인생이기도 하기에, 결코 멀게 느껴지지 않고, 때로는 사소하기까지 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크로스비의 그 사람들도, 인생의 어느 때에는 자신의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만 꿈꾸었으리라. 학교를 마치고, 평범하지만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보고만 있어도 행복한 자신을 닮은 아이들을 키워내며, 노년에는 주름진 손과 하얗게 센 머리까지 아껴주며 장성한 자녀들과 손자들을 바라보는 행복한 삶이 자신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말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렇듯 인생이라는 시간은 그들에게 평탄한 삶보다는 굴곡져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를 흩뿌리기도, 돌뿌리에 걸려 넘어져 생채기가 생기게도 했다. 의도하지 않은 사건으로 부부관계가 소원해지고, 자신은 기억하지도 못하는 어느 순간으로 인해 그토록 사랑했던 자녀들에게 외면을 받기도 하고, 평생을 함께 하리라 믿었던 연인과 헤어지고, 남몰래 배우자가 아닌 이성을 가슴에 품게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며 경험할 수 있는 수 없이 많은 사소한 사건들과 그 사건들로 생겨나는 사람들의 변화, 그들의 인생의 변화들을 담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올리브 키터리지>에 담긴 내용이 모두 다른 이야기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올리브 키터리지>의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각자 다른 사연으로 모두가 한가지를 원하는 사람들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들이 그토록 많은 인생의 시간들을 투자해 갈등하고 실수하며 찾아 헤메였던 것. 그것은 아주 간단하지만 누구에게나 어려운 단 하나의 가치였다. 바로 자신을 향한 누군가의 사랑 말이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자신이 아닌 약국의 직원인 데니즈를 바라보는 남편 헨리를 보며 자신을 사랑해줄 짐 오케이시라는 남자를 간직했고, 헨리는 자신을 보며 따스히 말을 건네지 않는 아내 올리브를 보며 그녀와는 다르게 포근한 눈빛을 가진 데니즈를 꿈꾸었다. 하먼은 더 이상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아내 보니를 보며 자신의 보살핌을 필요로 했던 거식증 환자 니나와 데이지를 향했고, 올리브의 아들 크리스토퍼는 어머니에게서 느꼈던 압박을 피하기 위해 결국엔 어머니와 전혀 다른 여자와 자신이 자란 환경과는 전혀 다른 가정을 꾸려 애정을 가지려 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연을 간직하고 있지만 실상은 모두가 자신을 사랑해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인생을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그렇게 꼭 아름답기만 한 것도, 꼭 행복하기만 한 것도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단 한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아름답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한때는 행복을 꿈꾸었으며, 아름답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인생 한가운데에서 방황하고 있는 지금도 그 행복을 향해 끊임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그 행복의 한 가운데에는 누군가가 나를 아끼고 사랑해준다는 믿음. 그 간단하고도 중요한 사실이 놓여 있다. 행복이라는 것은 어쩌면 누군가의 사랑 속에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사랑으로 남은 인생을 채워나갈 노력을 할 수 있다는 확신속에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때론 시시하고, 때론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누군가의 삶. <올리브 키터리지>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했듯, 우리 모두는 그렇게 때론 시시하고, 때론 의도하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조금 시시하다 할지라도, 조금 내가 꿈꾸었던 화려하고 환상적인 삶과 동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누군가 나를 사랑해준다는 믿음이 그 삶에 존재한다면, 그 삶은 행복한 삶이 아닐까? <올리브 키터리지>가 아들과의 소원한 관계에도, 병석에서 숨을 거둔 남편을 두었음에도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하며 인생을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바로 그 사랑의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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