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편지
마야 안젤루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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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단어는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이제 겨우 30년을 살았을 뿐이지만, 30년의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내가 인생이라는 단어에 대해 배운 것이라고는, 이 짧고도 명료한 두 글자의 단어는 절대 나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다는 것 뿐이니 말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을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껴질때, 그 순간을 이겨내기 위해 애를 쓰고 고민하며 가슴앓이를 할때, 그런 나를 조금은 일어서게 하고 힘을 내게 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앞으로 살아가야할 인생의 남은 시간들에 또 다시 쉽지 않고 힘에 겨운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어디서 살아갈 힘을 다시 얻어야 하는 걸까? 나는 그동안 그 일들을 이겨내는 힘을 어디서 얻었을까? <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책을 읽으며 나는 그 힘이 어디에서부터 온 것이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내가 가장 필요로 한 순간에 어김없이 나를 부축해준 그것이 담겨 있었다. 아무런 말없이 나의 뒤에서 나를 지켜준 누군가의 눈빛, 아무것도 없다며 주저 앉았을때 나를 지탱해준 따뜻한 흙처럼 보드랍고 든든했던, 그래서 혼자였더라도 절대 혼자가 아닐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바로 그 존재,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말이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그리고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여성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의 멘토라고 불리우는 여성지도자 마야 안젤루의 에세이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자녀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과 자녀들에게 남기고 싶은 인생을 먼저 살아낸 선배로서의 지혜들을 담아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는 슬하에 딸을 두지 않았다는 그녀. 아들 하나를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아이의 아버지로, 한 여자의 남편으로 잘 성장시킨 그녀가, 정작 그녀에게는 없다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어떤 이야기들을 담고자 했던 것일까? 왜 굳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자신의 인생에 가까운 제목을 선택하지 않고, 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을 선택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자신이 딸로서 어머니에게 받았던 그 지혜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그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어머니인 수 많은 여성들에게, 자신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한번 더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그렇게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왔던 한 여성에게, 그리고 누군가의 아내에게, 누군가의 어머니에게, 그녀들도 누군가의 무한한 사랑을 받을만한 대상이었던 사랑하는 딸이었음을 상기시켜준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던 소중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더욱 소중히 여기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래서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그녀 역시 누군가의 딸이었음도 담고 있다. 인생의 커다란 거울이 되어준 외할머니와 그녀가 곧게 성장하도록, 당당히 세상앞에 나서도록 등 뒤에서 그녀를 지켜보아준 어머니의 딸. 마야 안젤루 자신도 그런 누군가의 딸이었음을 기억하며 자신의 인생을 담아낸 이야기이기도 한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그리고 그녀가 그녀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그녀의 삶 속에서 그녀가 이겨냈던 수 없이 많은 장애와 고통들. 그 순간들을 기억하며 지금껏 잘해왔다 말하는 그녀 자신을 위한 기도. 그리고 지금도 그녀처럼 어느 곳에서 힘겹게 사투를 벌이며 고통의 순간들과 대면하고 있을 수 많은 딸들을 위한 응원.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그녀가 있고, 그녀의 어머니가 있고, 그녀의 외할머니가 있으며, 수 많은 세상의 딸들과 세상의 여성들이 담겨 있기도 하다.

마야 안젤루는 분명 사회적 약자였을테다. 차별이 유독 심한 곳으로 알려진 아칸소출신의 흑인 여자아이. 공평한 것들보다는 공평하지 못한 것들이 더욱 많았던 그녀의 세상에서 그녀는 흑인이었고, 여성이었으며,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 시절을 지나 성장했고,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었으며 이제는 세상을 아우르는 사회 지도층 누군가의 멘토로 불리우는 삶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아주 작은 흑인 소녀를 그토록 위대하고 큰 사람으로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고난으로 가득찬 인생에서 그녀가 지금껏 똑바로 세상을 보고 살아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그녀가 누군가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던 소중한 딸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흑인이라도, 여자라도, 어린 아이라도.. 누구나 사랑받을 권리가 있으며 누구에겐가는 한 없이 소중한, 그래서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켜내야할 존재일 수 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 바로 그런 소중한 존재임을 스스로 기억하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사랑으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 담고 싶었던 그녀의 진짜 인생이야기는, 어쩌면 바로 당신 역시 그렇게 세상을 향해 자신의 존재를 아낌없이 사랑받도록 만들어야 하는 그런 소중한 존재임을, 바로 그런 누군가의 딸임을 세상의 모든 딸들이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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