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스테인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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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 무엇인가를 원하고, 이루고, 쟁취하고, 도달하는 그 과정이, 누군가에게 혹은 인간이라 불리우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일래 한평생을 내달리고 치열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진정으로 인생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의문을 품자면 그 끝을 알 수 없을정도로 막연해지는 의문들에 대해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답을 내어놓으며 인생의 정당성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에 대답, 혹은 당신의 인생이 무엇을 위해 그토록 치열했는가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답이 먼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의문에 하나의 답을 제시해주는 제목을 가진 책이 바로 휴먼 스테인이었다.

휴먼스테인은 콜먼실크라는 노 교수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수업을 참석하지 않던 학생을 지칭하며 사용했던 단 하나의 단어가, 그가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의도로 학생들에게 전달되는 바람에, 학교의 총장으로서 뛰어난 업적과 개인적인 성공을 이루고도 인종차별주의 교수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학교에서 사퇴해야했던 콜먼, 콜먼이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는 전쟁을 치루는 동안 그는 그의 아내 아이리스를 잃고, 결국 그가 그의 손으로 임용했던 수 많은 교수들에게 단 한조각의 지지도 얻지 못한채 불명예로 가득찬 사회의 외진 곳으로 내몰린다. 언제나 뛰어난 학업성적으로 눈길을 끌고, 최초의 유태인 총장으로 학교의 변화를 이끌며 존경을 받았던 콜먼은 단 한순간의 실수로 사회적 명성과 지위도, 가족도, 그리고 그의 아이들과 그 자신도 지켜내지 못한채 나락으로 추락하게 된 것이다. 추락한 콜먼에게는 명예와 자부심 대신, 억울함으로 가득찬 분노만이 남고, 그 분로를 풀어내기 위해 주커먼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풀어내려 한다. 주커먼은 콜먼에게 성공과 확신으로 가득찼던 자신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 단 하나의 오점(잘못된 단어 선택으로 만들어진 오해)을 지워줄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주커먼은 콜먼의 인생을 들여다볼 기회를 얻은 유일하게 존재하는 콜먼의 관객이 된다.

소설로서 자신의 인생에 남겨진 오점을 지우려 했던 콜먼에게 새로운 변화가 생긴다. 분노마저도 무덤덤하게 만들어버릴 변화, 자신이 일했던 대학에서 일하는 30대 여성 포니아와의 밀회가 그에게 과거의 오점에서 자유로워질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자신과는 너무도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포니아, 글을 읽을 줄 모르고, 어린 시절부터 성적으로 학대당해왔으며, 집을 나온 후에도 포악한 남편으로 인해 기절할만큼 매질을 당했던 여인에게, 저명한 대학교수이자, 명예와 지위를 한꺼번에 가지고 있었던 노 교수가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지성과 교양으로 이루어진 위안이 아닌, 가장 원초적이고 그래서 가장 자연스러운 성적인 관계를 통한 위로. 그것만으로 콜먼은 다른 어떤 것도 신경쓰지 않을만큼 완벽한 자유를 얻는다.

휴먼 스테인에는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노 교수 콜먼과, 그의 학교에서 일하던 문맹의 여인 포니아를 중심으로 그들을 둘러싼 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콜먼의 과거부터 현재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포니아의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간에 존재하는 사람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뭉쳐지고 더해져 한덩어리의 커다란 무게가 되어 콜먼과 포니아의 배경을 이루고, 그 배경에는 각자 다르지만 모두 같은 사연들이 섞여 있다. 바로, 완벽하지 못한 인간의 오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그 진실에 대한 사연들 말이다.

흑인이라는 자신의 오점을 가리기 위해 시작한 거짓말로 인해 결국에는 얻은 모든 것들을 잃어야했던 콜먼의 개인적인 모습에서부터 콜먼으로 대변되는 인종차별과 포니아의 남편인 레스로 설명되는 전쟁이라는 문제, 그리고 델핀 포가 놓여있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자기혐오까지 수 없이 많고 많은 사회적 오점을 끌어안고 사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 그것이 바로 휴먼스테인이 작게는 바로 당신에게 묻는 질문이요, 크게는 사회에 대해 내뱉는 통렬한 비판인것이다.


인간의 오점이라는 조금은 노골적이고 껄끄러운 제목.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600페이지가 훌쩍 넘어가는 2권 분량의 이 책에 담긴 질문이자 답이었다. 완벽하지 못하기에, 스스로의 오점을 깨닫는 순간, 그 오점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인간이라는 존재, 하지만 그 바람과 오점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들이 집착이 되고, 다시 그 집착이 인간의 완벽하지 못한 사고와 만나 영원이 빠져나올수 없을지도 모르는 더욱 큰 오점 속으로 스스로를 몰아넣는 악순환에 대해 콜먼과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빌려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휴먼스테인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내려고만 한다. 그 누구도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은채 사회가 자신에게 남긴 오점, 그것만을 비판함으로서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려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오점에 대해 나만이 결백하다는 주장. 책의 어느 부분에 나왔던 표현처럼 홀로 신성한 처녀인척 하는 오점으로 가득한, 아니 어쩌면 오점 그 자체인 인간의 변명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휴먼스테인인것이다.

누구나 완벽할 수 없는 사회에서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완벽해지는 방법은, 어쩌면 자신의 작은 오점을 인정하고, 오점이 있는 인간으로서의 불안정한 삶을 그 자체로 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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