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로드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대재앙이 휩쓸고 간 인류, 단지 몇몇 만이 남은 고통과 절규의 세상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생존을 위해 남쪽으로 길을 걷는다. 아버지가 살아남은 이유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이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 역시 오로지 아들을 위해서이다. 신이 있다면, 신이 남긴 마지막이 그 아들이라고 믿을 만큼 아버지에게 아들은 절대적인 삶의 이유이다. 아직은 고통과 공포만이 남은 세상에 홀로 남겨둘 수 없는 순수한 아이. 아버지는 아들의 삶을 지켜주기 위해 점점 고통스러운 생으로 떨어지고, 아들은 그 아버지만이 자신의 유일한 바람막이이다. 아들은 아직 무섭고 두려운 꿈을 악몽이라 말하고, 아버지는 재앙이 덮치지 전의 평화로웠던 삶에 대한 꿈을 악몽처럼 꾼다. 아들에게는 아버지가 존재하는 현재가 여전히 더 나은 삶을 위한 희망이 남아있는 삶이고, 절망에 절망을 거듭하며 하루하루 생을 걸고 아들을 지키는 아버지에게는 평화로웠던 과거의 기억이 단지 지금의 고통을 더욱 처절하게 느끼게 하는 악몽일 뿐이다. 아버지가 절망하는 동안 아들은 희망을 꿈꾸고, 아버지가 죽어가는 동안 아들은 성장을 한다. 아버지는 그렇게 아들을 지키고, 아들을 성장시키고, 아들에게 삶을 준다.

매카시의 소설들은, 아름답고 환상적이지 않다. 처절하게 괴롭고 고통스럽다. 그리고 절망과 절망을 거듭하는 동안 사람들을 아프고 지치제 만든다. 미래에 대한 아름다운 장밋빛 희망들을 늘어놓고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기 보다는 가장 극단적인 고통을 말하고, 무엇도 희망이라 부를 수 없는 파멸의 순간을 이야기한다. 때문에 그의 소설들을 읽는 것은 언제나 힘들고 버겁다. 아름답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 희망과 찬란한 미래를 꿈꾸기에도 부족한 시간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매카시의 소설에 열광하고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계속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희망이 없는 그의 이야기에서 마지막 희미하게 빛나는 그 무엇인가를 더욱 찬란하게 느끼게 되기 때문일것이다.

<더 로드>는 그런 의미에서 매카시스럽고, 매카시적인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바로 인류가 멸망하는 그 순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원작을 따로 가진 작품들이 가지는 최대의 숙제는, 바로 원작의 작품성과 영화적인 재미를 얼마나 잘 섞어내느냐가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더 로드>는 개인적으로는 성공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을 한다. 원작을 이미 읽고 간 이들에게는 원작의 처절하고 참담한 인류 최후의 순간을 잘 표현해낸 영화의 이미지들이 강한 매력을 느끼게 하고, 원작을 미리 읽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영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그 절망과 비참함만이 남은 날들을 잘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으며 상상했던 장면장면을 놀랍도록 비슷한 느낌으로 만날 수 있어 나만의 상상속에 갇혀 있던 인류 최후의 순간들을 눈으로 확인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여기에 연기력이라면 두 말할 나위 없는 명 배우들의 연기가 어우러져 굳이 장면장면을 강한 인상으로 남기지 않아도 단 한줄의 나레이션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아버지와 아들, 세상에 오로지 둘만 남은 이 가족의 생존에 대해, 그리고 무한한 부성에 대해 영화를 보지 않았다 한들 모를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세상이 멸망하는 순간에도 존재하는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은, 영화를 보기 전과 후, 그 거대함이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것, 그것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지켜낸, 아들의 생이자, 아들의 희망이고,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가슴속의 불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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