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슨의 미궁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12월
품절


사람들은 극한의 상황에 처하면 마음속 저 깊이 숨겨둔 은밀한 본성을 드러낸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은 혼자만의 극단적인 폭력성, 혹은 비열함과 속물근성.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물듯, 극단적 상황에서는 자신 이외의 아무것도 신경쓸 것이 없고 그럴 여유도 없으니 그동안 남몰래 숨겨두었던 자신만의 은밀한 본성을 이용해서라도 그 극단의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는 사람들. 생존은 그만큼 사람의 가장 말초적인 본성을 자극하고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을만큼 이성을 마비시킨다.

생존과 보상이 걸린 게임, 한치앞도 알 수 없는 미궁.
<크림슨의 미궁>은 제한된 조건만을 제공받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진행해야하는 게임이라는 설정을 세운다.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초반의 상황에서는 서로 공모와 협의, 그리고 절충이 가능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 그러나 돌아서면 누군가 변할지도 혹은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너나할것 없이 먼저 배신의 길을 선택한 지극히 나약하고 흔들리는 인간의 존재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잘나가던 주식중개인에서 실직의 고통을 겪고 실직자와 노숙자의 중간계에 겨우 몸을 끼워넣은 한명의 남자 후지키가 있다. 각자 동일한 내용을 담은 게임기를 하나씩 가지고 모인 몇명의 사람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리고 그 첫번째 선택은 바로 게임이라 일컬어지는 이 황당한 곳에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지도 모를 첫번째 아이템을 고르는 일이다. 게임기를 고장낸채 아무런 정보도 가지지 못한 아이와 파트너를 이룬 후지키. 아이의 설득으로 정보라는 무형의 아이템을 얻은 후지키는 아이와 함께 자신들이 선택한 아이템을 가지고 게임을 진행하게 되는데, 손에 쥔것은 없지만 필요한 것들을 선별하여 얻을 수 있는 정보를 가지게 된 후지키는 다른 팀들보다는 비교적 유리하고 쉽게, 그리고 다른 팀들의 성향까지 파악할 수 있는 조건으로 게임을 시작한다.

가장 무서운 존재는 사람. 바로 그 자체.
오스트레일리아의 벙글벙글이라는 황량한 곳. 벗어날 수 없는 게임의 규칙. 먹을것도, 보호받을 곳도 없는 이 곳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게임을 진행하며 점점 변해간다. 생존이라는 절대절명의 가치 앞에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이성을 상실한 사람들의 선택은 점점 결과를 예측하지 않은채 진행되고 그 결과 사람의 모습을 잃고 본성만을 간직한 식인귀의 모습으로 인간의 가장 잔악한 본성을 형상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제 방글방글에서는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을 잡아먹어야 스스로가 살아가는 식인귀가 쫓고 쫓기는 추격적은 펼치게 된 것이다

비현실적인 게임과 현실적인 트루엔트
<크림슨의 미궁>은 배틀로얄이라는 일본영화와 함께 트루먼쇼라는 헐리웃의 영화 설정을 따온 것처럼 느껴진다. 서로를 죽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게임. 그래서 선택의 여지 없이 점점 잔혹해져가는 인간의 모습. 그리고 그렇게 모습을 드러내는 가장 추악한 본성들은 배틀로얄의 그것들과 많이 닮아있다. 여기에 모든 것이 중계되는 방송의 하나였다는 트루면쇼의 소름끼치도록 두려운 설정은 인간의 죽음을 보며 흥미를 느끼는 이들을 위한 스너프비디오라는 이름으로 살짝 비틀어져 모습을 드러낸다. 물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은채로 이야기는 끝을 맺지만 말이다. 사람의 가장 추악한 본성. 그것은 무엇일까? 목숨을 걸어야 살 수 있는 극한의 상황에서 타인을 잡아 먹는 식인귀. 그것일까? 아니면 사람의 죽음을 구경하며 흥분과 쾌감을 느끼는 바로 그 저급한 욕구일까? 어쩌면 방글방글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귀가 되어버린 그들보다, 그것을 단지 유희거리로만 만들어 즐기고 있는 돈 많은 부자들이.. 진짜 식인귀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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