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자오선 민음사 모던 클래식 6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구판절판


사람들은 글을 읽을 때 그 글의 장르나 소재와는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비슷한 몇가지 기대를 건다. 권선징악이라든지, 희미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진실이라든지, 혹은 밝게 빛나는 희망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좌절하기 보다는 힘을 얻고, 분노하기 보다는 기뻐하기를 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비록 그렇지 못할지라도 사람의 상상력과 그 사람의 의지로 창조해내는 미지의 세계에서만큼은 조금 더 아름답게 살고 싶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글의 마디마디 마다 모두 처절한 비명이 있고, 한줄한줄에 잔혹한 현실과 외면하려 애쓴 과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면 말이다. 아마 그것이 너무도 분명한 현실이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읽고 싶어하지 않을것이다. 애써 고개 돌리고 외면해온 현실을 글을 통해 대면해야하는 것은 자신의 치부를 마주 보는 것과 다름없는 고통일테니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
<핏빛 자오선>은 한 마디로 규정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듯 한 느낌을 주는 이야기다. 일반적인 소설들과는 그 분위기나 전개, 그리고 표현의 방식까지 어느 한 구석도 평범하지 않고, 때문에 그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부터 한참을 헤매이게 했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이 책이 화려한 미사어구나 어지러운 표현력으로 한글자 한글자를 읽어내리기조차 어려운 책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그 동안 읽어왔던 이야기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 그 이야기 자체가 너무도 충격적이었기에 내가 이해하는 이 내용들이 정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인가에 대해 스스로 수없이 의문을 가져야 했다는 것이 적절한 말이 되지 않을까? 아마 그것은 너무도 충격적인 내용들이 계속해서 벌어지지만, 그저 원래 그랬다는듯이 별다른 감정의 동요가 없었던 이 글만의 분위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갔던 잔인한 시대.
<핏빛 자오선>의 시대는 제목처럼 선혈이 낭자하다. 멕시코에 고용된 용병들, 거칠고 위협적인 아파치를 잡아 그들의 머리가죽을 돈으로 바꾸어가며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지기에 그 이야기는 그 자체로 죽음이고, 붉은 피의 색을 지닌다. 영화로 만들어져 내 눈앞에 펼처진다면 고개도 똑바로 들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지 않아을까 싶을만큼 잔인한 살인의 연속, <핏빛 자오선>의 사람들은 사람을 죽이고, 그 죽음으로 자신들의 삶을 이어가는 죽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죽음에 익숙하고, 살인으로 돈을 벌며, 죽음과 가까이에서 죽음을 지배하기도, 혹은 그것에 일순간 자신이 지배당하기도 하는 하루앞을, 혹은 한순간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핏빛 자오선>은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대로 너무도 잔인한 장면을 그저 일상처럼 주절거린다. 마치 매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이야기를 하는것처럼, 매일 일어나는 그저 평범한 일인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런 무감각함은 그 시대의 그들이 살아았던 일상이기에, 글의 분위기처럼 매일 일어나는 정말 평범한 일이었던 것이다. 자세한 설명보다는 그냥 그랬다는 식의 말투로 끝없이 이어지는 살인의 현장에서 이 책은 그 시대의 붉은 피와 사람의 존엄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한가지는 살아남아 있다.
<핏빛 자오선>자오선의 주인공은 소년이다. 어린 나이에 불행한 시대를 살고, 그 자신도 자연스레 죽음에 가까워져 살아야했던 소년, 우연히 아파치의 머리가죽을 벗겨 돈으로 바꾸어 살아가는 용병대에 입대한 그 소년은 이름도 없고, 자신을 중심으로 사건이 돌아가지도 않지만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아니 정확하게는 마지막까지 의미를 부여하는 분명한 주인공이다. 피로 얼룩진 세상. 그 피가 자신의 삶을 이어주는 수단이 되는 잔인한 세상에서 주인공인 소년만이 유일하게 순수의 존재로 남기 때문이다.




미국인이 그려낸 미국의 잔인한 역사
수 많은 평론가들은 <핏빛 자오선>속에서 미국의 잔인했던, 그리고 그 잔인함으로 자신들의 땅을 다졌던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그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 작가 자신이 그 미국땅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이기에 더욱 빛나는 것이라고도 한다. 한 나라의 역사, 그리고 어쩌면 그들이 아니라고 주장하거나 외면하려는 과거의 어느 시점을 글로써 이야기하고, 자신의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치부라도 언젠가는 다른 이들이 볼 수 있게 고백해야한다는 듯 말하는 이야기, 그러나 그럼에도 그들에게 작은 희망의 소년이 있었다는 이야기, 그 이름없는 소년이 지금의 미국을 만든, 당신의 아버지, 그분의 동료, 그리고 바로 당신이라는 이야기, 코맥 맥카시가 이 잔인하고도 처절한 피로 물든 이야기를 꺼낸 것은 어쩌면 바로 그런 희망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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