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 : 온화한 빛의 화가 마로니에북스 Art Book 20
스테파노 추피 지음, 박나래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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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대부분은 그 책에서 작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상상하고, 창조하여 쓰는 글일지라도, 그 글의 어느 구석에서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생각, 그리고 그 마음속의 그림자까지도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기 때문에 말이다. 작가가 글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면, 다른 이들은 어떨까? 작곡가는 음악을 통해, 연주자는 연주를 통해, 가수는 노래를 통해, 그리고 예술적 재능이 없는 우리는 그저 끄적이는 한줄의 메모와 일기를 통해, 혹은 걸음과 손짓을 통해 자신을 내보이지 않을까? 그림을 그리는 재능을 가진 화가가 그들의 그림을 통해 자신을 드러냄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을테고 말이다.

네델란드, 그 나라의 미술가에 길이 남을 위대한 화가 베르메르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이라는 한편의 작품으로 유명한 베르메르, 북구의 모나리자라는 이름을 별명으로 가지고 있다는 이 한장의 그림은 사실 우리에게 너무도 유명한 명화에 속한다. 그림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는 이들에게도 이미 동명의 영화나 소설들로 그 모습들이 익숙해진 그림. 그래서 베르메르라는 화가의 이름보다 그 그림 한장의 이름이 더욱 유명하기도 한 신비한 그림의 작가 베르메르,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추상화도 아니고, 어둡거나 혹은 거대한 진실을 담은 성서속의 비밀에 대한 그림도 아니기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베르메르의 여러 작품들은 그래서 이 책을 펴는 순간 "아!"라는 외마디 감탄사를 내뱉게 한다.

그가 살았던 네델란드와 17세기 시대, 그리고 그의 삶.
<베르메르:온화한 빛의 화가>는 그저 그림을 소개하고 그림을 해석하는 책이 아니다. 베르메르라는 한명의 작가를 테마로 하여 그의 전 생애와 알려지거나 혹은 조금은 비밀스럽게 남아있는 그의 인생이야기를 꺼내어 그의 삶이 존재했던 당시의 시대와 더불어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에는 베르메르와 베르메르의 그림 뿐 아니라, 17세기 네델란드의 사회상과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베르메르라는 화가와 그가 그린 그림을 이해하기 위한 조금 더 적극적인 시도가 책 전체에 담겨있는 것이다.

사람의 삶을 그렸던 화가, 베르메르
물론 그렇다고 하여 이 한 권의 책이 시대사나 베르메르의 개인사에 치우쳐 정작 중요한 그의 작품에 집중하지 못하는 내용을 담은 것은 아니다. 그의 일생을 비추어 그가 그 시간을 살며 그려내었던 그림들의 주된 소재와 당시의 미술계의 분위기등을 설명하고 그가 왜 그의 그림에서 그런 소재를 선택했는가를 스스로 이해하고 공감하게 하는 내용이라는 설명이 조금 더 정확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은 베르메르의 그림에 영향을 미쳤던 또 다른 이들의 그림과 동시대의 흐름을 주도하거나 후세에 같은 시대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다른 화가들의 작품들을 함꼐 설명하는 배려도 보여준다.


베르메르, 그를 위한 사전
이 책은 연도별로 당시의 시대상과 그의 삶, 그리고 그 시점에 탄생한 명화들을 설명한다. 그가 화가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베르메르라는 한명의 화가를 위한 연도별 사전쯤 된다고 설명하는것이 맞을 듯 하다. 덕분에 그 동안 친숙하게 보아왔던 베르메르의 수 많은 작품이 이제는 당시의 시대와 어떤 연관이 있었으며 베르메르 개인의 삶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 하겠다.

그림은, 사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멀거나 혹은 동떨어진 세계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림 한장을 보기 위해서 평론법을 배우고 미술사를 배워야 할것 같은 압박, 아마도 클래식 음악이 대중음악보다 조금 더 멀게 느껴지는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우리도 이런 유명화가의 그림보다는 즐거이 읽을 수 있는 만화를 조금 더 좋아하니 말이다. 하지만 대중 음악이 그 위상을 높여가듯, 만화도 이제는 그 위상이 날로 높아만가고 리히텐슈타인이나 앤디워홀등의 팝아트 작가들이 고전과 만화의 중간계를 형성하며 엄청난 인기를 몰고 있는 것을 상기한다면 명화라 불리우는 누군가의 그림과 우리가 읽는 작은 책자 속 만화의 위치도 어느 순간엔 일직선상에 놓이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 순간이 되면 만화를 좋아하는 우리는 램브란트의 그림과 작은 책자 속 만화를 동일한 거리에서 볼 수 있게 될까? 아마도 그렇진 않을 것 같다. 우리에게 이런 명화들이 멀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들이 우리와 멀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들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이니 말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조용히 화랑을 거닐며, 명화한편에 감동할 수 있는 여유를 그려본 사람이라면, 그래서 오랜 시간을 들여 해야하는 전문적인 공부가 아닐지라도 이렇게 작은 책자 하나로 만나는 누군가의 그림과 그 시대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번쯤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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