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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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살아간다. 눈을 뜨고, 깨어나고,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어디론가 향하는 발걸음을 내딛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걸음을 내딛는 그 힘을 더해 속도를 더하고 끝내는 달려나가기를 바람한다. 앞으로 내달리는 삶만이 의미있는 것이라고 등을 떠미는 세상에 밀려, 덩달아 내딛는 걸음의 의미도 잘 알지 못한채 말이다. 앞으로 나아가기만을 원하는 세상은 그래서 뒤돌아보거나 멈추어 서 있는 누군가를 향해서는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지도, 그 이유를 묻지도, 손을 내밀지도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뒤돌아보고 멈추어 서 있는 사람들을 잊어간다. 누구나 한때는 그렇게 뒤돌아보고 멈추어 서 있던 시기를 지나왔음에도 말이다.



<공무도하>가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날 밤, 목요일과 금요일을 이어주는 새벽시간에 방송되는 책 읽는 밤이라는 프로그램에는 <공무도하>의 작가 김훈이 출연하고 있었다. 건조하다 싶을만큼의 짧은 말들로 <공무도하>를 이야기하는 그를 보며 저렇게 무심하고 건조한 말을 지닌 작가가 써낸 사람의 이야기는 어떤 느낌일까 하염없이 궁금해했었다.


강의 이쪽에 남아있는 자들의 이야기.

<공무도하>는 과거에 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그들을 퇴행적이라고 표현했었다. 시간을 넘어 과거로 향하는 낙타처럼 오랜시간을 과거에 매여 현실에 살면서도 현실을 살아가지 못하는 퇴행적인 사람들의 이야기. 무슨 이유에선지 강을 걸어 건너고자 하였으나 끝내는 건너지 못하고 강에 휩쓸려 간 남편을 향해 건너지 말라던 경고를 듣지 않고 건너려다 세상을 떠났다는 비난과 원망, 그리고 애통함을 내뱉는 살아남은 여옥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공무도하>의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저 강가에 서서 서성일 뿐이다. 강을 건너고 싶은 욕망, 물살에 휩쓸려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강 이쪽의 지루하고 별볼일 없는 곳임에도 자신의 과거가 묻어 있는 시간에 대한 미련들이 어지럽게 더하고 뭉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한 없이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이야기다.


다른 것 같지만 모두 한 곳에 있는 것들에 대하여..

<공무도하>에는 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신문사의 기자인 문정수, 출판사의 편집자 겸 디자이너인 노목희, 한때 노학연대의 운동을 했던 장철수, 서울에 두고 아이가 개에 물려 목숨을 잃은 오금자, 딸 아이를 방조제 공사장에서 잃은 방석천, 전직 소방대원 박옥출, 그리고 베트남 여인 후에..이들은 모두가 조금은 다른 시간들을 살아왔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는 노목희는 서울에 살고 있지만 얼마전 홍수로 돌아갈 고향이 사라졌고, 그녀의 대학선배인 장철수는 한때 노학연대의 운동을 했던 이력을 가지고 있지만 검거된 후 함께 운동을 하던 사람들의 행적을 넘기는 댓가로 구속을 면하고 고향인 창야를 떠난다. 서울에 아이를 남겨둔채 고향인 해망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오금자는 아이의 사망 소식을 듣고 해망에서 종적을 감추고, 공사용 차량에 딸을 잃은 방석천은 마을 사람들이 반대하던 위자료를 남모르게 수령해 고향인 해망을 떠난다. 소방대원 박옥출은 오랜시간 일해온 소방대원으로서의 일을 버리고 서울을 떠나 해망으로 향하고 베트남 여인인 후에는 지참금을 받고 결혼해 베트남을 떠나 한국으로 와있다. 그리고 문정수는 그들의 이야기에 얽혀 서울을 떠나 해망에 머문다. 모두가 과거의 시간 한 덩어리를 떼어낸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무언가를 버리기 위해 혹은 무언가를 다시 시작해야하기에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세상과 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수를 통해서는 각자 처절한 고통을 가지고 있지만 기사거리가 될 것인가와 아닌가에 의해 가치 있는 것과 아닌 것으로 구별되는 세상의 무관심함을, 목희를 통해서는 개인의 이야기를 기사거리로 취급해야하는 자신의 위치와 스스로의 감정사이에서 시달리는 정수를 위로하는 그럼에도 존재하는 인간애와 그럼에도 자신의 갈길을 떠나는 사람의 냉정함을, 동료를 고발하고 자신의 안전을 도모했던 철수를 통해서는 양심과 자기 중심의 인간의 모습을, 아이들을 잃은 오금자와 방석천을 통해서는 혈연마저도 자신의 삶 앞에 벗어야하는 냉정함을, 후에의 모습에서는 타인에 대한 이유없는 애정을 말한다. 한가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끊없이 말하고 끊없이 찔러대며 끊없이 약을 뿌리는 이야기. 그래서 한번 걸리면 여간해선 떨어지지 않는 지독한 무좀같은 삶의 끈적댐과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내뱉는다. 그것이 강을 건너지 못한 사람들의 머뭇거림 바로 그것이라는 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조금씩은 움직여 나간다.

과거의 시간을 떼어내기 위해 해망에 모이거나 해망을 떠난 사람들은 시간이라는 흐름에 그저 자신을 내던진다. 거센 물살을 이겨내고 불굴의 의지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대신 현실 앞에 순응하고 끊임없이 좌절을 반복하며 시간만큼 더디게 그저 흘러가기만 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조금의 변화는 일어난다. 각자의 갈길을 정해 어딘가로 흘러가는 아주 더딘 움직임만은 그들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물살에 몸을 맡겼으니 어딘가로 흘러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저 자신들의 시작점이 달랐듯, 경유지도 도착지도 다른 것 뿐이다. 신문기자 문정수는 늘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고 벌어지지만 그것조차 일상이 되어버린 자신의 삶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서울로 돌아갈 것이고, 출판사에서 일하는 노목희는 어린시절 자신이 극복하지 못했던 그림에 대한 두려움에 맞서볼 시도를 하기 위해 유학을 떠날것이다. 고향인 창야에서 도망나온 장철수는 이제 반쪽남은 신장처럼 예전의 것들이 잘려나간 창야의 새로운 땅에서 남은 인생을 살아갈 것이고, 아이를 잃고 해망에서 사라졌던 오금자는 다시 해망으로 돌아와 노을마을이 아닌 다른 해망의 땅에서 새로운 일을 하며 아이의 그림자를 벗어던질 것이다. 해방에서 딸 아이를 잃은 방석천은 딸 아이를 해망에 남겨두고 그 아이의 목숨값으로 어딘가에서 삶을 연명하고, 소방대원 박옥출은 못쓰게 된 자신의 신장대신 다른 사람의 신장을 다른 누군가의 것으로 값을 치룬 후 새 일과 함께 남은 인생을 살고, 베트남 여인 후에는 자신이 떠나온 베트남도 시집온 한국땅도 아닌 해망에서 자신의 고향 베트남에서와 같이 자유롭게 물질을 하며 살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다른 모습으로 과거에서 조금씩 멀어져 남은 삶을 꾸역꾸역 살아갈 것이다. 방조제로 물이 막혀 갇힌 갯장어가 살기 위해 설명불가한 힘으로 방조제를 뛰어넘어 제 살길을 찾아 갔듯이 그들도 그렇게 남겨진 삶에 또 다시 생존 방법을 찾아낼터이니 말이다.

사람의 일상, 그 자체를 그린 이야기.

이 이야기는 다른 책에 다 있는 목차도, 소제목도 없다. 사건도 없고 이 사람이다 싶은 주인공도 없다. 등장하는 주요인물은 있지만 그저 적당한 때에 나타나 적당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전해주고 적당할때 사라진다. 그리고 그저 원래 그랬던 것 처럼 흘러갈 뿐이다. 매일매일 사건이 벌어지지만 별로 달라질 것 없이 흘러가는 사람들의 인생과 세상처럼 말이다. 때로는 내가 주인공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그저 조연이나 엑스트라로 살아가야 하는 보통 사람들의 머뭇거림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더욱 가슴저리고 소름이 돋을만큼 현실적인 이야기를 너무도 건조한 문체로 이야기하고 그 문체마저 우리의 삶인것처럼 느끼게 했던 이야기가 바로 <공무도하>가 아닐까. 작가가 출현했던 목요일 밤의 그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작가는 그들의 그 다음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강가에 서서 강을 건너지 못하고 지지리 궁상맞은 현실을 벗어나는 것도 버거워 주저하는 사람들, 그들이 살아야 하는 삶의 슬픔과 절망, 그리고 좌절을 이야기 했으니 이제 그 다음에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작가가 언급한 그 다음의 이야기가 무엇이 될 것인지는 사실 잘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역시나 그 이야기에는 강을 건너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이 그려질 것이다. 강 이쪽에 남아 그들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절망과 좌절 이후의 삶의 또 다른 모습 말이다. 그 삶이 아름답고 희망에 찬 이야기가 될 지, 아니면 더 깊고 더 어두운 나락으로 떨어질지는 모르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그것 또한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바로 이 세계의 삶의 모습이라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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