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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떠나가면
레이 클룬 지음, 공경희 옮김 / 그책 / 2009년 11월
사람들이 가족을 위해, 연인을 위해 혹은 아끼는 누군가를 위해 빌어주는 가장 큰 기도는 건강에 관한 것이다. 부족한 삶도, 실패에 따르는 좌절도, 가끔은 불행하다 생각할 수 있는 힘겨운 인생도 모두가 사람에게는 이겨내야 하는 스쳐가는 순간이지만, 이 모든 것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와 건강이 가장 필요하기에 건강이라는 단 한가지의 기도는 누군가의 인생전체를 빌어주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될지도 모른다. 건강은 그래서 누구에게나 가장 큰 복이자 바람이다.
어느날 암에 걸린 아내와 그의 남편
<사랑이 떠나가면>에는 각자 커리어를 가지고 나름대로 남부럽지 않는 삶을 꾸려가고 있는 부부의 이야기이다. 남편인 댄과 카르멘 모두 각각 운영하는 회사가 있어 하루하루가 바쁘고 정신없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인생을 즐기고 있으며 사랑하는 딸 루나까지 있는 즐거운 가정. 그 평온하고 행복한 가정에 어느날 암이라는 불청객이 찾아든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6개월전의 검진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암세포가 그 사이 커져 아내의 건강을 위협하고 부부의 관계를 흔들며 가정의 평화를 깨어지게 하는 이야기. 바로 그 이야기가 <사랑이 떠나가면>의 주요 내용을 이루고 있다.
병마와 함께 하는 시간, 방황하는 남자의 이야기.
카르멘의 가슴에서 암세포가 발견되며 댄과 카르멘은 병마와의 싸움을 시작한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예상했다고 한들 가벼워지지도 않을 사실 앞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부부의 삶을 이어나가고 암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사랑이 떠나가면>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야기에 흐르고 있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암이라는 병 앞에서 의연했던 부부는 6개월이 흐르고, 1년이 흐르는 시간의 흐름속에서 차차 지쳐간다. 우리 말에도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지 않았던가.. 오랜 투병생활은 카르멘에게서는 삶의 의지를 빼앗아가고 댄에게는 방황을 겪게 한다. 시간이 흐를 수록 암과의 싸움에서 지쳐가는 카르멘을 보는 댄은 이전의 의연했던 카르멘이 아닌 한없이 보호하고 돌보아주어야하는 대상으로 변한 카르멘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위안을 얻기 위해 외도를 하고, 부부사이의 관계는 서서이 균열을 일으킨다.
마지막, 사랑이 지나가는 그 순간
오랜 시간의 투병 끝에 카르멘의 몸은 점점 쇠약해지고 병은 점점 깊어진다. 암 세포를 잘라내기 위해 유방 절제술도 하고 수없이 많은 처방을 받아왔지만 카르멘의 마음이 지쳐가듯 그녀의 몸도 병 앞에서 지쳐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카르멘은 점점 생의 마지막에 다가간다. 댄과 카르멘은 마지막 순간을 스스로 결정하기로 한다. 안락사라는 단어로 이야기 되어지는 방법. 마지막 순간을 스스로 선택해야 할만큼 고통스럽고, 삶의 의지를 더 이상 잡고 있을 수 없을 만큼 쇠약해진 카르멘 앞에서 댄은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녀의 외도도, 댄의 외도도 모두가 서로를 부여잡는 방법이었음을 어렴풋이 깨달으며, 그것도 그들만의 사랑의 방법이었음을 이해하며 말이다.
사랑으로 죽음 앞에선 부부의 이야기.
<사랑이 떠나가면>에서는 암이라는 생명의 위협 앞에서 불안하고 흔들리는 부부의 관계에 대해 조금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때로는 잔인하게 때로는 배신의 모습으로 형상을 이루는 부부사이의 흔들림은 그래서 정면으로 바라보기에 조금은 불편할만큼 현실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 그런 사실적인 이야기들이 <사랑이 떠나가면>에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현실을 이해시키고 그들의 방황을 설명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암에 걸린 부인을 돌보지만 스스로도 끝없이 위안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한명의 사람이기에 자신의 생존을 위해 외도를 하게 되는 댄의 모습, 그 사실을 후회의 모습 모두 그의 부인을 사랑하기에 보인 모습임을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사랑하는 남편을 더이상 보듬을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회의를 분출하는 카르멘의 모습도 이해하게 된다. 책의 제목은 분명 <사랑이 떠나가면>이다. 하지만 댄과 카르멘은 사랑이 지나가면 그 때서야 사랑의 존재를 깨닫는 후회를 남기지는 않았던것 같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 사랑이 떠나가기 전에 그들의 사랑을 깨달았고, 그 사랑 앞에 서로를 놓칠 수 없어 그토록 방황했던 것은 아닐까? 카르멘은 죽었지만 아마 그들의 사랑은 떠나간 것이 아니라 마음에 머무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