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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구
김이환 지음 / 예담 / 2009년 8월
구판절판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려 나름의 애를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 좋아하는 일을 꿈꾸고, 그것을 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이상적인 삶이라는 것이 녹녹치 않은 것이라는 깨닫고, 어느틈엔가 자신이 놓인 현실과 타협을 하고,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틈에 조금씩 날개를 꺽고 주저앉아 스스로에게 실망을 거듭하며 삶은 그런것이라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책이나 영화가 아닐지라도 언제나 가까이에서, 혹은 바로 나의 삶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절망의 시작이 되곤 한다.
어느날 갑자기 정체불명의 구가 나타난다.
<절망의 구>는 정수라는 이름의 청년 앞에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구를 소재로 하고 있다. 무엇인지도 알 수 없고, 어디서 본 적도 없는 것 같은 정체불명의 검은 구. 우연히 담배를 사겠다고 나선 동네 어귀의 길가에서 그것을 마주친 정수는 다음 순간 그것이 알 수 없는 힘으로 사람을 빨아들이는 위협적인 존재임을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그는 정신없이 자신의 부모님께 이 위험을 알리고자 하지만 어쩐일인지 부모님과는 연락이 닿질 않고, 생명을 위협하는 이 존재앞에서 그는 부모님을 안전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날이 밝으며 정수는 새로운 사실에 맞딱드린다. 그 정체불명의 구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어버린 것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정체불명의 구를 피해 사람들은 움직이기 시작하고 정수는 그 안에 갇힌다.
변하는 사람들, 변하는 구, 변하는 정수
사람들 속에 갇히고 그들 속에서 함께 우왕좌왕 하는 사이 정수는 많은 것들을 목격한다. 생명의 위협 앞에 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목격하고, 그 안의 이기심도 목격한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철저하게 계산해내는 이들의 잔혹성도 목격한다. 또 근거 없는 종교적 신념으로 인해 이성적 판단의 기준을 상실한 이들의 모습도 목격한다. 절망의 구를 피해 도주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정수는 일반적인 이성의 수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비상식적인 모습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안에서 정수가 목격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알 수 없는 행동과 이기심만은 아니다. 자신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구를 가두어놓은 원 안에서 홀로 이탈해 다른 사람들이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개의치 않는 스스로의 이기심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수는 정체불명의 구를 피해 어딘가로 한없이 도망친다.
두 사람만이 남은 마트 안. 그리고 이제는 홀로 남은 정수
그는 마지막으로 한 대형마트안에서 살아남은 또 다른 청년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은 두 사람의 피부가 닿아있다면 구가 그들을 흡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들은 발을 혹은 팔을 묶고 생활하여 구의 위험에서 안전을 찾아낸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하지만 서로를 떼어낼 수 없는 묘한 관계 속에서 이 두 사람은 일상이 사라진 일상을 이어가고 결국 남은 청년이 흡수되어 버린다. 이제 남은 것은 정수 혼자이다. 그리고 그 후 어느날 모든 이들이 돌아온다. 정체불명의 구에서 살기 위해 도망치던 정수는 마지막 순간에도 홀로 남았고, 이제 모든 사람들이 돌아온 세상에서도 혼자 남아있다. 정체불명의 구는 사라졌지만 세상에 홀로 남겨졌던, 그리고 세상 속에서 홀로 존재하게 된 정수에게 남은 것은 바로 절망이다.

곰곰히, 그리고 깊게..
<절망의 구>는 아무것도 뚜렷하게 밝혀내지 않은 채 끝을 맺는다. 아마도 그것이 읽는 이로 하여금 작가의 상상력을 이어가게 하고픈 작가의 또 다른 시나리오였을지도 모르겠다.(실제로 이 작품은 출간 후에 엔딩시나리오 공모전을 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책의 제목인 <절망의 구>라는 단어를 곰곰히 곱씹어 보았던 것 같다. <절망의 구>... 그 구 안에 빨려 들어갔던 사람들이 느꼈다던 절망이 바로 작가가 말하는 소설의 이야기가 아닐까? 어디에서 다가오는지, 또 어느정도의 속도로 오는지 너무도 뚜렷하게 보여주는 검은 구, 그것을 피할 수도 있었던 수 많은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생명이라는 절대적인 가치 앞에 "나"만을 생각하게 된다.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 탈출하려던 그들은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도로의 정체속에 갇히게 되고 서서히 다가오는 구들의 위험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해 스스로 도망갈수 있는 가능성을 막아버리고 막다른 길에 서게 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사람들 자신인 것이다.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멀리 내다보았다면 어쩌면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안전하게 피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물론 그렇게 준비하고 도망한다고 하여 모든 인생에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닐것이다. 절망의 구가 휩쓸고 간 도시 어딘가에 남아 당신을 노리는 강도가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러나 타인에 의해 놓이게 되는 위험과 스스로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는 위험은 분명 다를 것이다. 혹시 절망에 빠졌더라도, 그리고 그 거대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험에 휩쓸려 버렸더라도 그것을 빠져나오면 사람들은 다시 살아나지 않는가? 책의 주인공은 분명 마지막까지 절망의 구 속으로 빨려들어가지 않은 정수이지만 책을 읽는 독자에게 당신만큼은 절망의 구로 빠져들지 않는 단 한명의 위대한 인물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홀로 남겨져 많은 이들의 적이 되어버린 정수가 되는 것 보다는 절망을 경험하고도 그곳을 빠져나와 다시 살 힘을 얻은 대다수의 사람이 당신이라고 말한다면, 이건 조금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