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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의 역사 - 부정부패의 뿌리, 조선을 국문한다
박성수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09년 8월
우리는 꽤 오랜 시간 우리의 역사를 공부하는데에 투자한다. 학창시절 정해진 정규수업시간만해도 무시할 수 없을만큼의 많은 시간이며, 그 양 또한 적지 않아 시험기간이면 가장 많은 공부시간을 잡아먹곤 하던 역사. 그 역사는 한 나라의 기록이라는 이름의 국사라는 명칭을 달고 학창시절 내내 학생들을 꽤나 괴롭히던 과목 중 하나였다. 꼭 학창시절뿐이 아닐것이다. 대부분의 취업시험이나 공직에 나가기 위한 시험들에도 국사는 항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정통하지는 않더라고 어느 정도의 상식선의 내용들은 알고 있어야 하는 교양과목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바로 국사이기도 하다. 외우기에 벅차고 막상 외워서 써먹을데도 없는 국사라는 과목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뒤를 오랜 시간 졸졸 따라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한 사람의 과거이 그 사람의 현재를 만들었듯이 한 나라의 과거 역시 한 나라의 현재이자 미래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 나라를 살고 있는 일원으로써 자신의 나라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 그것은 어찌보면 생각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 그 화려하고도 긴 영광의 시간.
그렇다면 사람들이 국사라는 이름의 학문에게 기대하는 것은 어떤 것들일까? 물론 그저 자신의 과거를 상기하듯 자신의 나라가 걸어온 길을 기억해야 한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 외에 국사라는 한 나라의 역사가 개인에게 그리고 그 민족에게 끼치는 여러가지 영향이 상당히 크고 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한민족임을 내세우며 민족의 정체성과 주체성에 대해 오랜시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의 경우 역사는 우리 민족 특유의 국민성이자 조금은 보수적이고 국수적이다 싶은 분위기를 이해하는 스스로에 대한 이해이기도 한것이다.자.. 그렇다면 국사가 해야하는 가장 큰 역할이 어느 정도 드러난 것은 아닐까 싶다. 바로 민족에 대한 자긍심 고취와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는 것. 그리고 그 민족의 일원인 나 자신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 말이다.
기록되었으나 잊고자 하는, 그래서 더욱 되새기게 되는 역사의 잘못들.
역사를 배우고 가르치는 목적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민족적 자긍심의 고취라고 한다면, 다시 우리는 한가지 의문과 맞딱드리게 된다. 우리의 역사가 저질렀던 수 많은 잘못과 실수, 그리고 그 결과였던 실패들은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해야 하는 것일까? 후대의 우리는 그저 이런 잘못과 오류들을 외면하고 오로지 민족적 자긍심만을 기억하며 우리 선조의 잘난점만을 배우고 기억해야 하는 것일까? 바로 이 질문에 대답하는 한권의 책이 <부패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잘못에서 현재와 미래를 보라.
<부패의 역사>는 선정을 베풀었던 조선왕조의 성군들에 대한 치적을 그리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도 분명 존재했던 관리들의 부정과 부패, 그리고 그 부정과 부패에 잘못대처하여 이러한 잘못들을 제때 바로잡지 못한 권력자의 무능함과 정치인들의 탐욕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 역사의 치부를 들춰내는 책인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이렇게 잘났으니 우리는 잘난 조상을 둔 잘난 사람들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 중에도 부정과 부패한 이들은 분명 존재했으며 그 부정과 부패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 우유부단함이 우리 역사의 발목을 잡고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과거에 대한 후회이자 현재에 대한 질타인 것이다. 책 속에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몇가지 사화와 반정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조선시대에 수없이 일어났던 민란의 배경이 들어있음은 물론이고, 조선이라는 길고도 화려한 한 왕조의 역사속에 부정과 부패가 어찌 시작되었으며 왜 끊어지지 않고 도리어 거대하고 두터운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가에 대한 통찰이 저자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과 함께 잘 버무려져 있다.
잘라내야 하는 역사의 고리를 잘라내는 시작.
모든 것에는 시작이 존재한다. 광영의 역사도, 외면하고픈 실패의 잔재도 모두가 그 시작이 있었기에 현재에 이른 것이다. 옳고 바른 것은 유지하고 키워나감이 마땅하고, 그렇지 못한 실패와 잘못의 고리는 과감하게 잘나내어야 더 나은, 더 위대한 새로운 역사가 기록될 것임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당연한 것일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재 부정과 부패가 끊이지 않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거대한 권력집단의 압박에 굴복하고, 때로는 시대의 흐름이라 진실을 외면하면서 말이다. 부패의 역사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뿌리를 박고 있음을 개탄하는 것 보다 지금이라도 이런 고리들을 과감하게 끊어버리는 것이 가장 우선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가 존재하기에 역사 속에는 영광된 순간만이 아닌 실패와 좌절의 역사 또한 포함되어야 한다. 잘라내야 하는 썩은 뿌리가 있다는 것을, 최소한 인식은 하고 있어야만 그 뿌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말이다. <부패의 역사>라는 한권의 책만으로 그 일이 가능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패의 역사 또한 공부하고 바로 보아야 하는 우리의 역사임을 인정한 <부패의 역사>가 시작된 것으로도 이 한권의 책이 가지는 의미는 충분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