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유쾌한 과일 - 나오키 문학상 수상작가 하야시 마리코 대표작
하야시 마리코 지음, 정회성 옮김 / 큰나무 / 2009년 9월
절판


여자들은 가끔 결혼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결혼을 한 사람이든, 앞둔 사람이든, 결혼은 아직 멀고 먼 남의 이야기라 생각하는 사람이든, 결혼에 대한 입장에는 모두 조금씩 차이가 존재하지만, 존재하는 입장차이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대한 몇번의 고민은 여자들에게는 남자들과는 또 다른 무게로 느껴지기에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열정적이지 않던 사랑, 무난한 결혼, 지루해진 생활

<불유쾌한 과일>의 주인공 마야코는 30대초반의 주부이다. 그녀는 몇번의 연애를 하고 그중 그럭저럭 자신이 세운 조건에 가장 가깝다고 느껴지는 한 남자를 골라 결혼을 했다. 결혼생활은 이제 익숙한 그녀의 일상이 되었고, 신혼초의 아기자기한 즐거움도, 연애시절의 뜨거운 열정도 모두 사그라들고 지루한 일상만을 되풀이 하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이러한 지루한 일상에 염증을 느끼고 탈출구를 만드는 방법으로 외도를 선택한다. 자신을 지루해 하는 남편의 무관심과 권태에 대한 항변이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그녀의 첫번째 외도상대는 그녀의 남편을 만나기 전 만나던 노리오이다. 뛰어난 엘리트이지만 외모의 조건이 한참 떨어진다고 판단하여 헤어짐을 선택했던 노리오를 만나 잠시의 외도를 꿈꾸던 그녀는 노리오가 자신보다 어리고 뛰어난 여성과 결혼을 약속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노리오와의 만남에서 시작된 마야코의 알 수 없는 갈증은 점점 대담해지기 시작한다. 그녀는 결혼전 만났던 유부남인 노무라와의 만남을 시작하고, 노무라와 마야코의 관계는 남편인 고이치와의 부부생활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격정에 휩싸이게 된다. 마야코와 노무라의 불륜은 노무라에게 제3의 여인이 또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완벽한 불륜이 되고, 노무라를 독점하지 못했다는 미묘한 질투심은 그녀를 또 다른 관계에 대한 목마름으로 몰아간다. 마야코의 외도는 그 목마름을 해결해줄 감정적 교류가 존재하는 관계를 원하게 되고 그녀는 다시 이 관계를, 새로운 남자 마치히코를 통해 이루려 한다. 그녀는 결국 남편인 고이치와 이혼하고 그녀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다시 떠올리게 한 마치히코와 재혼한다. 새로운 남자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갈구하고 그것을 얻었다고 생각한 마야코, 그녀는 마치히코의 관계에 과연 만족했을까? 아마도 아닌 모양이다. 그녀는 다시 노무라와 만나기 시작하니 말이다.

누구에게나 한번은 찾아온다는 권태라는 이름의 함정.

결혼을 하고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꼭 한번 권태라는 이름의 위기가 찾아온다고 한다. 어떤 부부는 현명하게 이 시기를 이겨내고 혼인서약에 맹세한대로 백년해로를 해내기도 하고, 어떤 부부는 이 시기의 위기를 부부생활의 끝이라는 결코 행복하지 못한 결말로 마무리하기도 한다. 모든 부부가 이 위기를 지혜롭게 이겨내는 것도, 모든 부부가 이혼이라는 헤어짐을 선택하는 것도 아닌 것은 아마도 각 부부들이 처한 상황들이 모두 다른것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부부가 아닌 아내와 남편이라는 위치가 아닌 남자와 여자, 혹은 한명의 사람으로서 상대를 이해하는 관점과 스스로를 합리화 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헤어짐은 결국 상대방의 일방적인 잘못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며, 두 사람 모두의 잘못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유쾌하고도 불쾌한, 불유쾌한 과일. 결혼.

결혼은 행복하고도 유쾌하게 시작하여 때로는 유쾌하지는 않은 불유쾌한 시기를 맞이한다. (불유쾌하다는 말이 불쾌하다는 의미는 아닐것이다.) 하지만 그 끝은 유쾌할 수도, 불쾌할 수도 있다. 바로 그 불유쾌한 시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지나가게 하느냐에 따라서 말이다. 결국 결혼생활을 유쾌하게, 혹은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 몹시도 지루하고 힘들지 모를 그 불유쾌한 시기에 달려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불유쾌한 과일>의 마야코는 불유쾌한 결혼의 시기를 불쾌하다와 동의어로 받아들인 나머지 결국에는 그 불쾌한 상태로 결혼을 마무리 지어버린다. 선택은 그녀 자신이 했으나 그녀는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렀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불유쾌한 결혼을 불쾌하게 끝내버림으로서 그 시기를 현명하게 이겨내고 다시 유쾌한 결혼으로 돌릴 기회를 가지지 못했으니 말이다. <불유쾌한 과일>에서 말하고자 하는 결혼은 아마도 바로 그 유쾌한 결혼으로 가는 불유쾌한 시기의 과정이 어쩌면 유쾌한 과일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점은 아닐까? 혹독한 가뭄을 이겨낸 과일일수록 높은 당도의 품질좋은 과일로 결실을 맺는다는 것을 잊으면 안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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