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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의 죽음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8
아서 밀러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평점 :
어린시절 사회나 작문 시간을 통해 나의 인생을 설계해 본 경험이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학교라는 축소된 세상 속에 속해있는 시간을 통해 진짜 세상보다는 안전하고, 진짜 세상보다는 덜 잔인한 교실에 앉아 자신에게 다가올 진짜 인생을 그려볼 기회를 한번쯤은 만나보았을 것이다. 바로 그 때 자신이 그려낸 그 인생의 모습이 정확하고 세밀하게 기억나진 않을지라도, 대부분의 인생의 그림에는 행복과 안정, 그리고 꿈들이 깃들어져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아마도 진짜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잔인함을 인지하지 못해서라기 보다는, 자신에게 만큼은 행복하고 아름다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고, 현실은 나의 발목을 잡아 끈다.
<세일즈맨의 죽음>에도 그렇게 이루고 싶은 꿈과 아름다운 삶을 꿈꾸었던 한 남자가 등장한다. 이제는 어린 시절처럼 막연히 아름다움만을 쫓을 수 없는, 나이가 지긋해진 부인과 인생의 시작보다 끝에 가까운 시점에 서 있는 한 가정의 가장. 윌리라는 이름의 그 가장도 한때는 아름다운 인생의 그림을 그리고 그것들이 이루어지리라는 행복한 꿈을 가졌던 행복한 소년이었을 것이다. 소년은 자라 직장을 가지고, 한 여자의 남편으로, 두 아들의 아버지로 바쁘게 달리고 살아간다. 어린 시절 꿈꾸었던 크고 거대한 꿈은 이제 그저 지나간 환상일 뿐이지만, 대신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이 자신의 그늘 아래 행복하게 살아갈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꿈의 자리를 채운다. 현실은 늘 그렇듯 잔인하고 간사하여 점점 작아졌던 소년의 꿈을 현실의 안정으로 바꾸고, 그조차도 쉽게 가질 수 없게 만든다. 소년은 어른이 되고, 남자가 되고 아버지가 되며 작아지고 줄어들고 지쳐간다. 단지 가족의 안정을 바랬을 뿐이지만 그 조차도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것들로 돌아와 그를 할퀸다. 남자는 이제 지치고, 아프고, 힘이 든다. 소년은 이제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좌절과 마지막 남은 그 무엇인가.
<세일즈맨의 죽음>의 주인공인 윌리는 누구나가 한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절망과 힘겨움을 담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인물이며, 가족들을 사랑하고, 한때는 잘 나간다는 말을 할 수 있었을 사회적인 안정도 가졌던 인물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들은 없듯, 한 때 안정된 그의 삶은 자신의 실수와 아들과의 불화를 시작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자신이 사랑했던 작은 아들은 자신에 대한 반항심으로 스스로를 무능한 존재로 만들어가고, 아버지 윌리는 한때는 전도유망하리라 생각했던 아들의 무능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스스로와 그의 아들에게 조금씩 분노를 쌓는다. 설상가상 작은 아들도 안정을 이루지 못하고, 한때 잘나갔던 셀러리맨으로서의 그의 커리어도 나이와 함께 조금씩 나락으로 떨어진다. 지친 그는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시작한다. 한때 행복했던 순간을 회상하고 그 순간으로 돌아가면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자신이 놓여있는 현실이 잔인할수록 그는 더 현실을 외면하며 과거로 도망한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에는 아버지로서의 마지막 역할을 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 꿈을 가진 행복한 소년으로 돌아가고 싶던 윌리는 결국 아버지로서 마지막을 맞이한다.
현실과 이상의 뒤틀림, 그 안의 위태로운 한 가족의 이야기.
<세일즈 맨의 죽음>은 꽤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매년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고 공감과 감동을 느끼며 여전히 지구 어딘가의 극단에서는 이 작품을 연기하고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꿈을 노래하고 환상과 용기를 주는 수 많은 작품들이 있음에도, 인정하기에는 잔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이 작품이 오랜 시간동안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고 그들에게 희망의 송가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문학작품 혹은 희곡의 역할을 다 하기에 부족함이 없을텐데 왜 많은 극단들은 이 잔인한 현실을 연기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 현실을 다시 한번 극을 통해 확인하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이 잔인하고도 두려운 현실이 우리가 사는 바로 그 현실이며 윌리의 모습이 바로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 혹은 남편의 모습과 놀랄만큼 흡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나의 아버지와 나의 남편의 삶을 돌아보아주고 가족의 행복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에 대한 작은 행복감부터 그들의 어깨에 걸린 책임의 무게를 이해할 수 있는 배려를 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말이다. 작품을 읽는 내내 나의 아버지를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나뿐은 아닐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