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과 옌
판위 지음, 이정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소년과 소녀, 모두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성장이상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 어른이라는 단어에 담긴 그 많은 의미들을 깨닫게 되는 것은 소년과 소녀가 이미 소년이나 소녀가 아닌 어른이 되어버린 다음이지만, 소년과 소녀가 성장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그 순간만의 대단히 복잡하고 미묘한 의미들을 던져주곤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토록 혼란스럽고 아프기만한 성장통을 겪고야 다다를 수 있는 것일까?

 

17살, 어른을 동경하는 소녀와 24살 소녀를 갈망하는 여인.

<밍과 옌>은 천밍이라는 17살 소녀와 먀오옌이라는 24살의 여인이 나누는 정서적 교감과 우정, 그리고 깊은 연민과 애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연히 학교 기숙사의 옥상에서 만나게 되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상반된 모습의 두 사람. 17살 소녀 천밍은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학습능력으로 이른 나이에 대학에 진학하고 문학적 호기심을 가진 감성이 뛰어난 소위 모범생이다. 이에 반해 24살 다소 늦은 나이에 대학을 다니고 있는 먀요엔은 풍요롭지 않은 생활의 가정에서 자라난 중국 소수민족의 한명으로 구속되어있지 않고 자유로운, 조금은 방탕하고 조금은 천박해보이기까지 한 이미 다 자란 여인이다. 이른 나이에 대학생활을 하는 어린 소녀와, 늦은 나이에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여인. 정상적이라면 한 대학의 교정에서 만날 수 없는 이들의 우연한 만남은, 운명처럼 17살 소녀 천밍의 일상을 천천히 그러나 완전하게 바꾸어 놓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17살 소녀 밍은 24살의 여인 옌을 만나면서 소녀가 아닌 여인을 꿈꾸기 시작한다. 


 

우정, 연민, 사랑......그리고 오랜 시간의 기다림.

밍은 옌을 통해 어떤 것들을 보았기에 그토록 옌을 원하고 기다렸던 것일까?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자신은 감히 꿈도 꾸어보지 않았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행동하며 살아가는 듯 보였던 옌, 그 이면의 상처와 그늘들을 느끼기까지 어쩌면 밍은 어른이 된다는 것을 막연히 동경했을지도 모른다. 마치 우리의 사춘기 시절, 막연히 어른이 되기를 꿈꾸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단순히 어른이 됨을 바라듯 동경했던 옌의 모습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상처와 그늘들을 보며, 17살의 밍은 그녀를 이해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밍의 옌에 대한 이해는 그저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을 넘어, 어른이 된다는 것, 그리고 여인이 된다는 것에 대한 이해와 공포를 함께 던져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옌은 자신을 점점 이해하는 밍을 느끼며 그녀가 자신으로 인해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감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책 속의 표현처럼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소녀 밍은 하얀 데이지처럼 순수해보였을테니 말이다. 옌이 떠나고 난 후 밍을 찾지 않은 이유 역시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얀 데이지의 순수함이 사라진 밍에게서 옌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로 인해 밍이 어른이 되었다는 죄책감이 옌을 못내 괴롭힐테니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밍은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그리고 여인이 되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다시 이혼을 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밍은 옌을 그리워 한다. 그리고 옌을 볼 수 있을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미국행을 선택한다. <밍과 옌>에는 꽤나 다채로운 코드들이 등장한다. 소녀와 여인의 우정, 소울메이트, 소녀의 성장 이외에도 동성애적 코드와 성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격변기의 중국의 사회상까지..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마지막 나의 머릿속에 남는 것은,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밍은 결국 여인이 되고, 어른이 된다. 옌이 떠나가고 혼자 남았어도 그녀는 여인으로, 어른으로 성장한다. 사랑에 실패하고 결혼에 실패해도 다시 시작해야 함을 아는 어른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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