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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 속의 치요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박상희 그림 / 예담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일본의 문화..그 중 애니매이션과 영화,문학등의 장르가 세계 여러 유수의 상들을 꾸준히 수상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 문화들을 접할때마다 어렴풋하게 늘 느끼는 것이 있다. 바로 기발한 상상력과 다소 특이한 소재,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로 그것이다. 같은 소재도 늘 기발하게 표현해내고, 같은 배경도 특이성을 부여하며, 가끔은 너무도 자극적일 수 있는 이야기마저 조금은 담담하게 그리고 때로는 무미건조하다시피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는 느낌. 바로 그 느낌이 나에게는 일본문화를 대표하는 듯한 상징으로 느껴지곤 했었다고 해야할까? 그리고 이 책 <벽장 속의 치요>역시 일본 특유의 그런 느낌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9개의 단편, 그리고 시선.
오기와라 히로시의 다른 작품들을 접하지 못한 상태에서 만난 작은 단편집 <벽장 속의 치요>는 총 9개의 조금은 기묘한 이야기들로 묶여져 있다. 때로는 귀신이, 때로는 고양이가, 때로는 15년전 실종된 동생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이 단편집은 짧지만 매번 강렬하고, 곱씹어 보면 살짝 섬뜩하기까지 한 이야기들을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중얼중얼 내뱉고 있다. 내가 항상 일본문화를 접하면서 느끼고 있던 바로 그 '남의 집 구경하는 듯'한 관조적인 시선으로 말이다. 헐리웃에서 영화라도 만들었다면 온통 스산한 바람소리와 쿵쿵대는 사운드로 가득채웠을것 같은 공포호러물에, 잔잔하고 낮게 읊조리는 듯한 동요를 깔아놓은 듯하다고 하면 조금 적절한 비유가 될까? 그래서 <벽장 속의 치요>는 늘 전혀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뒷통수를 맞는 듯한 느낌으로 읽어내려가게 된다. 물론 이미 일본 문화에 익숙해져 많은 영화와 소설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뒷통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테지만 그렇지 않은 이라면 이런 분위기는 다소 당황스럽고 그래서 더 공포스럽달까? 그리고 한결같이 그런 분위기로 9개의 단편들이 조용히 충격을 던진다. <벽장 속의 치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편은 첫번째 이야기인 <벽장 속의 치요>와 세번째 이야기 <어머니의 러시아 수프>이다. <벽장 속의 치요>는 사실 귀신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 귀신마저 사랑스러워 보이는 분위기가 너무나 좋고, <어머니의 러시아 수프>는 내가 처음으로, 아.. 이것이 일본문화의 분위기 이구나..라고 느꼈던 영화 <쓰리 몬스터>의 일본편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인것 같다.
일본문학을 살짝 엿볼 수 있는 기회.
<벽장 속의 치요>는 짧은 이야기 9개로 이루어진 비교적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단편집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 일본의 문학, 특히 그 중에서도 묘하게 뒤틀려 있는 그들만의 시선을 가장 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작가인 오가와라 히로시의 개인적인 성향과 필체들도 영향을 미치고 있겠지만 내가 그동안 느껴왔던 일본 문학 역시 <벽장 속의 치요>와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 문학, 특히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 이용될법한 일본식 공포를 접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벽장 속의 치요>가 그 느낌을 짧게나마 전달할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