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teen 써틴
세바스찬 보몬트 지음, 이은정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책들의 장르란 참으로 다양하다. 큼직큼직하게 장르를 구분하자면 대충 몇가지 종류로 나뉘어질 수는 있겠지만 그 장르들 안에서도 책들이 가지는 분위기란 다들 다른 것인지라 같은 로맨스 소설을 읽어도 어떤 책들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어떤 책들은 희미하지만 여운이 남는 흔적들을 남긴다. 장르의 구분이란 그래서 때로는 너무도 모호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불필요하거나 무의미하다는 생각까지도 들게 한다. 어짜피 이야기를 담은 책이란, 그 책만의 독특한 느낌과 분위기로 그 책만의 장르를 가지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분위기를 알 수 없는 이야기. 써틴.


13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의미는 이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우리는 13보다 4를 불길하게 여긴다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글로벌 시대 아니겠는가. 덕분에 13은 4만큼이나 우리에게도 불길함을 나타내는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할만큼의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다. 물론 아직 우리나라에는 13층도 있고 13번지도 있고 13번 버스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대로 13의 의미가 불길하고 아름답지 못한 탓에 이 책 <써틴>은 이름만으로도 대강의 장르가 파악되는 첫인상 만큼은 몹시도 친절한 책임에 분명한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제목과 장르의 연관성에서만 느낄 수 있는 친절일뿐!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그런 친절함은 기대하지 않는것이 좋을 듯 하다. 간단하게 말해서 공포 혹은 추리소설의 분위기를 띄고 있는 이 소설은 좀 더 세밀하게 따지자면 미스테리 심리소설이라는 하나의 단서가 더 붙는다. 피가 낭자하고 살인마가 출현하는 공포소설이라기보단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기억과 무의식의 퍼즐들이 마지막으로 치닫을수록 하나씩 맞아떨어지며 마무리 되는, 그러나 그 마무리에도 뭔가 석연찮은 구석과 알수없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참으로 묘한 소설이다. 그리고 뭐라 단정할 수 없는 이 소설의 바로 그러한 분위기가 희안하게도 어떤 강렬한 분위기보다 오랫동안 머리를 어지럽히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도대체 이 소설을 뭐라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이끄는 내면의 상처


<써틴>의 주인공 스티븐은 부유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 뒤에 아버지가 운영했던 회사를 물려받아 그럭저럭 지내오던 청년이다.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아버지의 그럭저럭 잘나가던 회사를 물려받은 스티븐은 경제적 여유를 아무런 생각없이 누리며 되는대로 살다가, 변화하는 시장의 형세를 채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더 발전된 형태의 기업 개발품에 우위를 내어주고 파산을 맞게 된다. 회사가 파산을 맞고 나름대로 부유했던 삶에서 순식간에 허름한 지하의 셋방으로 처지가 달라진 그는 친구에게 1년의 시간동안 택시기사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게 되고, 별다른 의욕이 없던 그는 역시 아무런 생각없이 그 제의를 수락한다. 그렇게 스티븐은 택시를 운전하며 13번가와의 만남을 시작하게 된다. 13번가의 미스테리는 스티븐 이외에는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할 방법도 없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의 눈에만 나타나는 13번가의 늘 달라지는 건물들과 그곳의 사람들, 실존하지만 실존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어지며 스티븐은 자신이 잊고 지냈던, 아니 잊으려 무던한 애를 쓰고 끝내는 기억의 저 밑바닥으로 가라앉혔던 상처를 대면하게 된다. 회사가 파산을 맞이한 것 말고도 그의 무의식에서 끝없이 그를 생채기 내고 있던 상처들, 그리고 13번가를 기회로 그가 그 상처를 이겨내는 과정들이 책의 이야기를 가득 채운다.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써틴>의 스티븐은 과거의 과오로 평생을 스스로 괴롭히며 살아가는 상처받은 사람이다. 그조차도 잊고 있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끔찍한 자신의 실수들, 그리고 그로 인해 빚어졌던 과거의 참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꾸만 세상 밖으로 밀어냈던 스티븐. 세상을 살아가며 세상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다고 스스로를 책망했던 그의 또 다른 자아가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는 삶에 대한 희망과 대립하며 겪게 되는 갈등들이 미스테리한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그 모양새는 조금 다를지라도 누구나 가슴에 안고 있을 상처를 딛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힘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를 상상력과 미스테리로 이야기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상처를 잊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마주함으로써 그 상처를 딛고 이겨내야만 한다는 가르침을 더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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