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 실크 팩토리
타시 오 지음, 황보석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들이 감동을 느끼고, 공감하고 기억을 매어놓는 부분들은 저마다 다 다르다. 모두가 같은 것을 겪으면서도 느끼는 것이 다른 것은 그 사람이 그 순간까지 겪으며 살아온 삶의 경험이 다르고, 위치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비단, 영화나 음악 뿐이겠는가. 한명의 사람을 대할때에도 사람들은 각자 다른 눈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고, 평가한다. 모두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사람을 만나며 살아간다고 해도 기억에 남는 것은 모두 다른 것이다. 어느 드라마에서 나오는 대사처럼 그렇게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고, 결국엔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기억에 남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재스퍼의 아버지, 스노의 아내, 피터의 친구였던 조니 림.

<하모니 실크 팩토리>는 킨타협곡의 하모니 실크 팩토리를 운영했던 실업가 조니 림에 얽힌 세 사람의 기억을 각각의 시선으로 이야기 하는 글이다. 조니의 아들인 재스퍼와 그의 아내 스노, 그리고 그의 친구 피터의 기억에 남겨진 조니와 관련한 기억들은 한명의 사람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다르기만 하다. 각각의 시선들이 너무나 달라 당혹스러우면서도 왜 그렇게 달라야만 했는가를 고민하게 하는 동안 책은 조니 림에 대해 당신은 어떤 기억을 가지겠냐고 묻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아들인 재스퍼는 아버지를 "그 악명높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설명할만큼 부자의 정 보다는 그저 기억속의 인물을 끄집어 내어 설명하는 듯 건조하게 설명한다. 마치 그가 저지른 악행과 비리들을 모조리 고발하고야 말겠다는 듯 결연한 재스퍼의 조니에 대한 이야기들은 가장 잔인하고 가장 치명적인 부분만을 끄집어 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스노와 피터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을 공들여 준비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리고 역사적 인물처럼 객관적으로 설명하고자 애쓴 재스퍼의 이야기는 뒤에 따라오는 스노와 피터의 이야기들 보다 그래서 더더욱 안타깝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조니의 아내 스노의 이야기는 스노가 죽은 뒤 피터에 의해 전해진 스노의 일기로 이루어진다. 자신의 집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늘 무시당하는 작고 열등감에 사로잡힌 안타까운 사내에 대한 기억, 그리고 그녀의 비밀스러운 연애로 이루어진 일기에서는 아들인 재스퍼가 기록한 악한의 모습이 아니라 그저 언제나 누군가에게 인정받기를 원하고 그녀를 사랑해주었던 한 남자로서의 조니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마지막 친구인 피터의 기억에 남아있는 조니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배우기를 갈망하던 순수하기만한 단 하나의 벗이었다. 모두 같은 사람에 대한 너무나 다른 기억들. <하모니 실크 팩토리>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글이 될 것이라는 예감은 아마도 그 조각난 기억 속의 전혀 다른 한 사람의 모습이 모두가 진실한 그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세 사람의 기억, 한 사람의 모습

<하모니 실크 팩토리>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비슷한 관점으로 비슷한 문체를 사용해 엮어내지 않는다. 세 명의 기억 모두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조니에 대한 기억을 풀어놓기 때문에 각장이 바뀔때마다 조금은 당혹스러운 기분까지도 느끼게 되는데 굳이 이렇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재스퍼가 그의 아버지 조니림을 배신자에 사기꾼으로 묘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어쩌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바람과 실제로 그가 맞딱드렸던 기록들에 남은 그의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가 아닌 역사적 인물에 대한 기술처럼 세간의 사람들이 하는 소위 "남 이야기 하는"방식으로 스스로의 자리를 멀찌기 떼어낸 것은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아들에게 사기꾼에 반역자인 아버지는 인정하기에 어려운 일이었을테니 말이다. 스노의 일기에서 조니는 늘 스노의 주변인이다. 아마도 한번도 스노를 향해 자신의 마음을 떳떳히 펼쳐놓지 못한 조니의 모습이 스노의 인생에 주가 되지 못했음을 나타낸 것이리라. 마지막 피터의 이야기는 어쩐지 조니의 이야기를 피하려 애쓰는 듯한 느낌을 준다. 조니라는 자신의 유일한 벗에게서 스노를 빼앗은데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스노와 조니를 유일하게 연결해주었을 재스퍼까지도 자신이 영향을 끼쳤다는 죄의식이 조니에 대한 기억을 애써 지우려는 듯 그는 내내 자신의 현재와 조니의 기억을 힘겹게 이어간다. 마치 기억하는 것조차 죄를 짓는 듯하다는 듯...

 

사람에 대해 기억한다는 것.

<하모니 실크 팩토리>는 읽는 내내 기억과 사람이라는 두가지 단어를 머리에서 떨쳐 놓을 수 없게 한다. 어떤 사람을 알고 기억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 끝없이 의문을 가지게 하고 사실은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저 그 사람과 나에 대한 것들만 기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것은 아닌지 조금은 냉소적인 생각을 하게 한다. 어쩌면 조니에 대해 그 세사람이 누구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듯 사람들은 사람에 대해 누구도 전부를 알 수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누군가를 다 알수 있다는 자만심대신 내가 알 수 없는 그 어떤 것이 누군가에게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조금의 여지는 생긴 것이 아닐까? <하모니 실크 팩토리>의 조니 림이 평생을 침묵으로 자신을 설명하지 않았던것 처럼, 내 주변에도 침묵으로 자신을 포기하는 이가 없는지, 한번쯤은 돌아보아야 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이야기가 바로 <하모니 실크 팩토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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