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6
앙드레 지드 지음, 이충훈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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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오고 또 다른 세대들에게도 읽여질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한 책들,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수 많은 평단의 많은 평론 속에서도 세월을 거슬러 존재하는 책들, 이런 책들은 그저 책의 제목으로 불리우기 보다는 또 다른 이름들을 별칭처럼 달고 있곤 한다. 바로 '고전'이라는 이름이다. 수 많은 작가들이 매일 새로운 책을 내어놓고 매주 새로운 베스트셀러가 서점가를 장식하지만 베스트셀러가 꼭 '고전'이 되지 않는 것은, 많이 팔리는 재미와 흥미 이상의 가치와 의미들을 '고전'이라는 이름의 세월에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인생을 뒤흔든 신앙와 사랑.

앙드레지드의 좁은 문은 바로 그 '고전'에 속하는 작품이다. 오랜세월을 거쳐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며 수 많은 평론가들이 평론을 내어놓기에 주저하지 않는 작품. 그리고 앞으로도 수 없이 다가올 시간동안 많은 이들에게 읽혀나갈 작품인 이 이야기에는 과연 어떤 힘이 담겨 있을까? 책에는 어린시절부터 오로지 한 여인을 사랑해온 주인공이자 화자 '제롬'과 그의 사촌누이이자 연인인 연상의 여인 '알리사'가 등장한다. 아주 어린시절부터 서로가 아닌 이들에게는 단 한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어린 연인들, 그들이 성장의 과정을 겪으며 변화하고, 그 과정에서 경험해야만 하는 수 없이 많은 의식의 충돌이 이 이야기의 주요 줄기라고 할 수 있으리라. 단조롭게 설명하자면 단지 몇줄만으로도 설명이 되는 이 이야기는 그러나 읽는 동안 내내 고민하고 생각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아주 어린시절부터 만나온 두 남녀가 성장하는 동안 각각의 인생을 향해 달려가는 방법이 조금씩 달라지고, 그러는 동안 여인은 기독교적 신앙에 몰입하게 된다. 당연히 누려야할 인간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 믿게 되는 그녀의 사고는 사실 현재의 우리가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정도이지만, 그런 결론을 내리고 스스로의 삶까지 막을 내리게 하는 고통을 감내하게 하는 것의 이면에 또 하나의 목적인 인간으로서의 사랑이 깔려 있음을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라는 단순한 한 마디 말로 모두 결론내어 버릴 수 있을까? 또 온 인생을 걸고 그녀만을 사랑했던 '제롬'이 너무도 순순히 그녀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그저 '체념'으로만 생각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자꾸만 나에게 질문을 해대고 있는 듯 하다.

 

이면의 이면,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또 다른 이면

사람들은 모두들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고들 한다. 가끔은 더 큰 행복에 가까이 가기 위해 작은 행복을 포기하기도 하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이유는 조금씩 다르고 추구하는 행복의 형태는 조금씩 다를지라도 그들이 바라는 것은 모두 동일하다. 바로 온전한 삶에 주는 '행복'. 하지만 문득 생각해보게 된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를 궁극의 목적을 위해, 지금의 자신과 작은 행복들을 모두 희생한다면 그것이 과연 행복에 이르는 길인지에 관해서 말이다. 또한 그렇게 원했던 행복을 이루어 냈을때,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며 행복한 웃음만을 지을 수 있을지 말이다. 좁은 문의 주인공인 '알리사'에 대해 평론가들이 수 많은 비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녀가 너무도 수동적이고 기독교적인 신앙관에 갇혀 유연한 사고를 하지 못한 아둔한 여성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자칫 험난한 가시밭길만이 진리이며, 자기 희생만이 과정이 될 수 있으리라 믿게 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좁은 문의 의미는 어쩌면 반드시 희생을 통해야만 행복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향해 가는 길에 문이 잘 보이지 않을지라도 어딘가에 그 문이 열려 있음을 믿으라는 신념이 아니었을까 하고 짧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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