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 서평단 모집 안내
보트 Young Author Series 1
남 레 지음, 조동섭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소설이나 영화, 음악등의 문화전반을 주도하는 영역에는 남다른 파급력을 가지고 우월한 지위를 점하고 있는 몇몇 나라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우수한 수준의 문화를 가진 나라들은 많지만 세계각국으로 그것을 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분명 제한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굳이 이 나라들을 꼽아보자면 미국과 영국등의 유럽,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일본 정도가 아닐까? 서점을 가보아도 내 책장을 맘 먹고 훑어 보아도 대부분의 문학 작품들은 아메리카와 유럽 그리고 일본의 땅을 벗어난 작품들은 흔하지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덕분에 이 나라들에 대한 정서와 문화는 마치 이웃집의 분위기인냥 가까이 느껴지는 반면 그렇지 않은 나라에 대한 정보들은 상대적으로 생경하게 느껴지게 되고 익숙한 배경의 이야기는 자꾸 읽게 되는 반면 그렇지 못한 나라는 점점 멀어지는 문학적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랄까?

 

베트남과 뉴욕, 이란과 일본

<보트>의 작가는 베트남 출생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자라, 현재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는 남레라는 다소 생소한 작가이다. 출생과 성장만으로도 꽤 복잡한 이 작가는 직업적으로도 변호사를 거쳐 작가로 변신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보트>에는 이런 작가의 자유로움과 조금은 비현실적이다시피한 감성이 그대로 묻어난다. 또 여간해서는 자주 만나기 힘든 베트남에 대한 이야기들도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베트남 출신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짧은 단편집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베트남의 정서와 그들의 이야기를 스스로의 이야기이듯 이렇게 읽을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기에 참 반가운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총 7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때로는 마치 자전적인 이야기를, 때로는 딸을 향한 아버지의 부성애를, 때로는 전쟁의 참혹함과 절망속에서도 존재하는 마지막 빛을, 그리고 아직도 풀어야할 인권의 문제들을 이야기 하며 베트남과 이란, 일본과 미국 그리고 시대적으로도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 단 한명의 작가가, 그것도 데뷔작인 단편집을 통해 참 다양한 국가와 역사적 배경을 담아내고 있다는 것도 <보트>만이 가진 새로움일 것이다.

 

모호한, 그래서 더욱 아릿한 이야기들

7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무채색의 그림처럼 너무도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 작가 특유의 화법은 조금은 생소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하게 가르치지 않는 몹시도 희미한 느낌을 주지만 그래서 더욱 강하게 머리에 자리잡는다. 마치 다른 사람의 먼 과거 이야기인냥 조용하게 읊조리듯 풀어놓는 이야기들은 모두 하나같이 흐릿한 기억속의 사진한장 처럼 선명하지 않아서 다소 모호하고, 어렵다는 느낌마저 주지만 이야기 하나가 끝을 맺을 때마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저리고 마음에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선명하지 않은 흑백사진이 총천연색의 컬러 사진보다 오랫동안 추억에 남는 것처럼 말이다. 책을 읽는 동안 이 흐릿한 화법은 책에 좀 더 몰입하게 하고 이야기를 강렬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책을 읽다 보면 책들의 종류가 참 다양하다는 것을 종종 느끼게 된다.즐겁고 유쾌하게 눈을 잡아 끄는 책이 있다면 때로는 슬프고 가슴이 먹먹한 느낌을 전하며 조금은 저릿한 느낌을 주는 책들도 있게 마련이고 심각하게 밑줄 그으며 기억하려 애써야 하는 책들도 있다. 그리고 한번으로는 그 책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해 두번 세번을 반복해 읽게 되는 책도 있다. 바로 이 책 <보트>처럼 말이다. 아마 이 책이 주는 느낌들을 조금 더 잘 알아보려면 한번 읽는 것으로는 되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내 주위에는 8백만의 '카미'가 있다.

내 손을 본다.

왼쪽에는 어머니가, 오른쪽에는 아버지가 있다.

내 뒤에는 큰 언니가 있다.

사진은 회색이다.

그러다가 모두 하얗게 변한다.

얼굴 왼쪽이 뜨뜻하다.

눈을 깜빡이지 마세요.

앞니가 토끼처럼 생긴 남자가 말한다.

아버지가 말한다.

걱정 마.

아버지가 나를 보고 웃는다.

눈을 깜박이지 마세요.

여기를 보세요.

<보트-히로시마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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