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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팔로마는 자신이 사는 집을 관리하는 수위실의 르네를 고슴도치라고 한다. 우아한 고슴도치...
쉰네살의 르네는 자신이 관리하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 열두살의 소녀 팔로마를 인류의 판사 같다고 한다.
왜 그 소녀는 그녀를 고슴도치라고 했을까?
왜 그녀는 그 소녀를 인류의 판사라고 했을까?
고개를 돌리면 어디서나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녀와 그 소녀는 왜 스스로를 소외된 이들이라 생각했을까?
소외된 줄 몰랐던 소외된 자들
사람들은 살면서 누구나 외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어떤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친구가 있으면 친구가 있어서 외롭고 애인이 있으면 애인이 있어서 외롭고 결혼을 하면 결혼을 해서 외롭고 자식이 생기면 자식이 있어서 외롭다고 하니 어쩌면 사람들은 끝없이 외로움 속으로 숨어 들어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의 두 주인공인 르네와 팔로마는 외따로 떨어져 소외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이들이 아니다. 이들은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고, 친구와 짬나는대로 다과를 즐기고, 학교에서 수업을 착실하게 듣는 내 주변의 이웃 중 한명과 놀랍도록 비슷한 모습의 이들이다. 소외되지 않는 소외된 자들은 왜 스스로를 소외되었다고 생각할까? 이 두 여인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사회적 지위와 그 평균적인 수준을 상회하는 지적수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람들에게서 이해받을 수 없을 것이라 벽을 세우고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다른 이들이 그들을 소외시켰다기보다는 스스로를 발견하고자 하는 욕망을 위해 스스로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버렸다고나 할까? 비슷한 외로움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킨 그들이기에 그들은 책속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교감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오히려 쉬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매일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전전긍긍했던 쉰네살의 르네와 매일매일 집에 불을 지르고 죽기를 계획했던 열두살 팔로마는 다르지만 비슷한 서로를 보며 혼자서는 절대 알 수 없었던 사람간의 교류와 다른 지혜를 배우고 아주 짧게 묘사되는 몇일간의 만남으로 서로의 인생을 참 많이도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그 인생이 바뀌는 순간 르네는 남은 인생을 팔로마에게 선물한다. 르네의 죽음으로 팔로마는 생을 얻고 팔로마의 등장으로 르네는 죽은 듯 살았던 삶을 사는 듯 살기로 결심한다는 것. 그것이상의 공감대가 있을까?
평범함 속에 숨겨져 있던 특별함의 발견
그녀들만이 우리 속에 숨은 채 살아가고 있는 특별한 사람들일까?
책을 읽으며 나는 나의 옆 집에 사는 젊은 대학생과 앞집에 살고 있는 아주머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내가 사는 이 곳에는 또 얼마나 많은 쉰네살 르네와 열두살 팔로마가 살고 있을지 모를일이니 말이다. 꼭 그들이 아닐지라도 사람들 마음 속 어딘가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을 끌어안고 숨어버린 여전히 우아한 고슴도치가 한 두 마리쯤은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