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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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빅 엔젤'이란 죽음을 앞둔 남자가 있다.

그는 멕시코 태생으로 미국으로 이주해서 일가를 이룬 가장인데, 암 선고를 받고 70세 생일을 맞이한다.

생일 1주일 전 그의 어머니 '마마 아메리카'가 돌아가시자, 빅 엔젤은 장례식을 미뤄 [모친 장례식 + 본인 생일] 이벤트를 준비한다. 그는 이번이 대가족과 함께 하는 마지막 생일임을 잘 알고 있다.

이 가족의 행사를 위해 3대에 걸친 그의 일가친척이 몰려든다. 여기에는 빅 엔젤의 이복형제인 '리틀 엔젤'과 이복 자녀인 '인디오'도 포함되어 있고, 소란하고 요란스러운 멕시코 혈통은 가족의 재회를 시끌벅적한 소동극으로 만든다. 이들은 미국에서 터전을 잡고 살아가지만, 멕시칸이란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래서 빅 엔젤의 아빠 돈 안토니오가 가족을 버리고, 미국 여자 베티와 살면서 낳은 '리틀 엔젤'을 미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우리 과'가 아니라고 배척한다. 물론 전 세계 어느 나라든 이런 형제 관계가 사이가 좋을 리는 없으리라.

돈 안토니오가 이들을 버리고 나서 빅 엔젤이 겪은 고생 수난사를 생각하면 '원인의 결과물' 리틀 엔젤을 곱게 볼 수는 없을 거고.

 

이런 가족 드라마에서 흔히 발견되는 '어디든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는 보편타당한 설정은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원제 THE HOUSE OF BROKEN ANGELS)에 붙이긴 어려울 듯하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이복형제, 이복 자녀란 흔하지 않은 '콩가루' 설정도 그렇고, 지나치게 강한 멕시코 지역색도 정서적으로 적응하기 쉽지 않다.

시끌벅적한 멕시코 혈통은 소설 속에서 '바람을 피운다'는 경계가 흐릿한 듯 보인다. 친척 관계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돈 안토니오도 미국 여자를 만나 큰 어려움 없이(?) 멕시코 패밀리를 버릴 수 있고, 미국 여자 베티에게 버림받자 놀랍게도 다시 빅 엔젤에게 의탁한다. 이런 구조다 보니 이복형제 & 자녀가 쉽게 생길 수 있나 보다.

아버지가 정확히 누군지를 모르는 자녀들도 소설엔 당연하다는 듯 나온다.

좋게 말하면 개방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문란한 성생활이 멕시코적인 것인지, 아니면 유독 빅 엔젤 패밀리만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또한 이들 사회에서 가장의 위치는 가부장으로서 거의 절대적으로 그려진다.

거의 그 가족 내부에서는 가족을 대표하는 왕의 위상이다. 그가 한량이었든 마초였든...

아쉽게도 자녀에게 끔찍한 폭력을 휘두르는 건 돈 안토니오를 거쳐 빅 엔젤에게도 그대로 세습되어, 가뜩이나 친부가 아니어서 빅 엔젤을 인정하지 않던 인디오는 결국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고야 만다.

빅 엔젤의 마지막을 앞두고, 그의 권위를 이제는 리틀 엔젤이 물려받아 가족을 지켜야 하지 않겠냐는 의미심장한 대화가 나온다. 리틀 엔젤은 자신의 가족 내 위치라든지, 혈통의 순수성을 이유로 자신은 대권을 받을 수 없고, 빅 엔젤의 그나마 제정신인 딸 미니가 적임자라고 권하고, 이제는 여자도 그런 임무를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고 시대가 변했음을 강변한다.

이 간략한 시놉시스를 보면 대부분 독자들은 뭔가 삐거덕거리고 곪아 있던 가족 관계가 주인공의 임종을 앞두고 감동스러운 화해, 인생에 대한 찬미를 통해 눈물샘을 자극하는 그런 전개를 그리기 쉬운데 이 소설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이지만, 뚜렷한 기승전결이나 핵심 스토리라인은 없는 편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없는 이들의 수다를 듣는듯한 기분으로 달린다. 개별 구성원들에 대한 이야기가 살짝살짝 페이지를 잡아먹으면서 그들의 소용돌이치는 인생사가 때론 희극으로, 대부분은 비극으로 소개된다.

3대에 걸친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헷갈리게 등장하니, 잘 파악이 안 되면 마지막 페이지에 나온 리틀 엔젤이 그린 가계도를 자꾸 들춰 보면서 참고하면 좋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가족 구성원이 많다 보니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도 많고, 가족 간 반목과 오해도 많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에서는 그런 갈등이 감동적으로 봉합되는 결말은 아니다.

총잡이와 한바탕을 벌이며 인디오도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고, 오랜 기간 겉으로는 냉랭했던 두 명의 '엔젤'(빅&리틀)도 서로를 이해하는 훈훈한 마무리를 보이긴 하지만 그건 그냥 담담할 따름인데, 그 이유는 내가 보기엔 이렇다.

'당신이 불치병으로 내년 생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인데, 그간 소원했던 가족들이 모였다.

굳이 이들과 원수 관계로, 미움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날 이유가 있을까?'

 

본인의 인생을 소설로 쓰면 10권의 대하소설이 된다는 허풍도 많지만, 저자의 친형 '후안'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는 빅 엔젤은 적어도 적을 인생사가 500페이지 이상은 된다.

빅 엔젤은 그래도 평생의 반려자 페를라의 흔들리지 않는 사랑이 있고, 수다스럽지만 사랑하는 많은 가족이 있어 행복하게 눈을 감는다.

"여보. 이만하면 충분해."

그런 게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이 아니겠나. R.I.P 빅 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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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3 -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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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만나게 되는 시리즈 3편이다. 역시 이번에도 첫 페이지를 넘기면 끝까지 한 호흡에 달릴 수밖에 없는 초강력 페이지터너다.

전편에서 조직 전체의 이해보다는 본인들의 입신양명만이 유일한 관심인 은행 내부의 파벌과 일합을 겨루었던 한자와는 적들은 쓰러뜨렸지만, 그 결과 결국 은행 내에서는 자리를 찾지 못하고 계열사인 증권사로 파견 근무 나가 있다. 말이 파견이지 좌천이다.

잘못한 게 없기에 불평불만으로 가득 찬 하루하루를 보낼 거 같은 보통 사람들과 달리 주인공 한자와는 멘탈의 급이 다르다. 주어진 상황에서 실력으로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만드는 사람, 그게 한자와다.

"모리야마, 싸워. 나도 싸울 테니. 그런 식으로 누군가가 싸우고 있는 한, 그래도 세상은 살아갈 만하니까. 그렇게 믿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P 451)

그가 이번에 휘말리는 사건은 IT업계의 M&A를 둘러싼 소리 없는 전쟁이다.

도쿄중앙은행을 무대로, 시리즈를 관통하는 냉혹한 비즈니스의 세계는 여기서 M&A를 통해 극대화된다.

약하면 사냥 당해 먹히는 거고, 그 기업은 존재도 없이 사라진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방법 외엔 없는데, 상대의 약점은 내가 살기 위한 유일한 동아줄일 뿐이다.

한마디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아름다운 결말은 이 동네에 존재하지 않는다.

 

2012년 일본에서 출간된 시리즈 3편의 무대는 2004년, 이치로가 MLB 최다 안타 기록을 경신한 해다.

이때는 거품 경제가 붕괴한 이후 시기로, 소설 속에서는 성장의 과실을 따 먹은 '거품 세대'와 모리야마로 대표되는 그 이후 '잃어버린 세대'의 세대 간 갈등이 중요하게 묘사된다. 마치 오늘날 한국에서 밀레니얼 세대가 기성세대에 반감을 가지는 것처럼.

3편의 부제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은 투덜이로 무기력하게 살지 말기를 '잃어버린 세대'에게 주문하는 작가의 당부로 읽힌다.

"올해인 2004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거품이 붕괴한 뒤, 세상 전체가 불경기라는 이름의 터널로 들어가 출구를 발견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괴로워했던 지난 10년.

1994년부터 2004년에 걸친 취업 빙하기에 세상에 나온 젊은이들. 그런 그들을 나중에 모 신문에서 사용한 명칭에 따라 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 즉 '잃어버린 세대'라고 부르게 되었다.(중략)

대량 채용 덕분에 머릿수만 많은 거품 세대를 먹여 살리기 위해, 소수 정예의 잃어버린 세대가 혹사당하고 학대받고 있다."(P 34)

"총무팀이 싫다면 실력으로 일을 따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불평하지 말고 지금 맡은 일을 해내세요.

일은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빼았는 겁니다!"(P 195)

 

이케이도 준은 '우리의 주인공' 한자와와 '잃어버린 세대' 모리야마를 등장시켜 그가 일본 사회에 전하고 싶은 가치관과 직업관을 전파한다.

그 결과 단순히 은행을 무대로 한 기막히게 재미있는 기업 엔터테인먼트 소설의 위상에서 묵직한 주제의식까지 겸비한 걸작으로 탄생했다. 그래서인가 독자들이 시리즈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책이 바로 3편이라고.

독자로서 한자와와의 공감지수는 더욱 친밀해진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일하기 때문이지. 일은 고객을 위해 해야 하는 법이야.

나아가서는 세상을 위해 해야 하는 법이고.

그 대원칙을 잃어버렸을 때, 인간은 자기를 위해서만 일하게 되지.

자신만을 위해 일을 하면 소극적이고 비굴해지며, 자기 사정에 따라 추악하게 일그러질 수밖에 없어.

그런 자들이 늘어나면 조직은 당연히 썩을 수밖에 없고, 조직이 썩으면 세상도 썩을 수밖에 없고. 알겠어?(P 450)

소설 속에서도 시간이 흘러 1편의 혈기 넘치던 한자와는 더욱 노련해지고 능수능란해졌다.

정의를 구현했음에도 은행이라는 큰 조직 안에서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한자와는 3편에서 진실을 알게 된 은행장, 무뚝뚝하지만 강단이 있는 나이토 영업부장, 고지식한 효도 인사부장 등 대놓고 한자와를 지지하지는 못하지만 은근한 응원군의 도움으로 은행 영업부로 복권되는 결말로, 작가는 2편의 결과로 다소 위축된 한자와에게 힘을 싣는다.

이 과정은 폭풍 감동이라 눈가에 물기가 어리는 걸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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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 - 독일인에게 배운 까칠 퉁명 삶의 기술
구보타 유키 지음, 강수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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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편집자로 근무하다 번아웃 상태가 되어 2002년부터 독일 베를린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구보타 유키가 쓴 독일 라이프스타일 에세이다. 우리와 정서적으로 많은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일본인이 쓴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일하기 / 쉬기 / 살기 / 먹기 / 입기의 5개의 장으로 구분해서 베를리너들의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생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책의 곳곳에 그들의 무채색 취향과 자연 친화적인 생활 스타일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사진들이 배치되어 있어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잡지스러운 느낌도 난다. 읽는 행위 자체가 힐링의 시간을 선사한다.

이 책에서 묘사된 독일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정리해 보자.

1년에 최소 30일은 무조건 쉰다니 12달 중 한 달은 휴가고, 의식주 중에서는 희한하게도 '주'가 가장 중요하고(거기서 독일판 '휘게'인 '게뮈트리히'라는 개념이 나온다), 편의점은 아예 없고, 저녁 식사는 화력을 사용하지 않는 원재료 그대로의 간소한 식사를 하고, 패피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실용적인 옷차림으로 다닐 뿐이고, 여자들은 최소한의 화장만 하고 다니며, 어딜 가도 팬시한 상품이나 한정판 같은 화려한 상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당연히 이런 제품을 취급하는 휘황찬란한 가게도 얼마 없고, 걸어서 갈 수 있는 크고 작은 공원들이 도처에 있어서 자연과 하나 되는 녹색의 삶이 가능하고, 점심시간은 30분만 사용하더라도 그만큼 일찍 퇴근하려 하고, 저녁 이후에는 가족들이 둘러앉아 보드게임을 하고, 어릴 때부터 청소와 정리정돈이 몸에 배어 있다.

물론 이들이라고 모든 게 다 부럽지만은 않다. 예컨대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간이라도 빼줄 듯 과잉 친절에 익숙한 일본인 저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하지만 거기서도 저자는 일침을 가한다.

"수준 높은 일을 제공하면 거기에 맞는 금액을 지불해야 일하는 사람도 정당한 보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저임금으로 부당하게 과도한 노동을 시킨다는 뉴스를 일본이나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도 듣곤 해요. 제대로 일한들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고, 클레임이 있을 때마다 질책을 받고, 임금마저 낮다면 과연 누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P 36) 


"기준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살지 않는 다른 나라의 상황은 어떤지 미지의 세계를 아는 것이 도움이 돼요. 지금까지 무의식적으로 믿어온 상식에서 벗어나면 시야가 넓어지기 때문이죠. 사실 독일인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P 62)

우리가 선진국의 이런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가진 시스템 중에서 좋은 건 계속 유지하고, 그들에게 타산지석으로 배울 건 배우면 된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쉽게 편하게 읽히면서도 독일인들의 핵심을 놓치지 않는 무릎 담요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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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일 때 더 잘한다 -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내향인의 섬세한 성공 전략
모라 애런스-밀리 지음, 김미정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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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회사 '우먼 온라인(Women Online)'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기업인이자 팟캐스트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저자는 <나는 혼자일 때 더 잘한다>(원제 HIDING IN THE BATHROOM '화장실에 숨기')를 통해 기존의 성공 신화에 소심한 반격을 가한다.

대부분 하루에 열몇 시간씩 일하면서 업계의 공룡이 되었다는 그런 신화 말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한 가지 트랙만을 뛸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단거리가, 누군가는 중장거리가, 누군가는 마라톤이 맞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텐데, 현재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외향적인, 사교적인, 사무실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내는지가 중요한, 성공의 사이즈로만 평가하는 그런 약육강식, 무한 경쟁의 세계관이 지배한다. 저자는 이런 행동 양태를 '성취 포르노'라고 일갈한다.

이 같은 전투적 태도의 최종 목표는 경력의 도약, 립프로깅Leapfrogging이다. 성공의 계단을 최대한 높이 한번에 오르기 위해 사람들은 에너지를 단숨에 쏟아부어 결과를 만들어내려 한다.

같은 여성으로서 여성 기업가 셰릴 샌드버그가 쓴 <린인>은 이런 철학의 전방위 교과서 격인데, '더 노력하고 더 많은 일을 해내지 않으면 실패라는 듯' 이야기한다. 하지만, 일과 삶의 조합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저자는 '너무 린인하다가는 인생에서 꼬꾸라질 수 있다'라고 경고한다. 너무 앞만 보고 달리다가는 본인도 모르게 번 아웃할 수 있다는 거다.

"광범위한 인맥을 형성하고 성장률과 매출액을 한없이 늘려야 한다는 극심한 부담을 느끼다 탈진해서 일터를 떠나야만 하는 불행한 중역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보라."(P 44)

"인생에는 직업 외에도 중요한 일들이 많이 있다."(P 50)

"성공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무언가 이뤄냈을 때 마침내 삶을 즐길 수 있다'는 식의 목표 달성 중심주의를 떠올리게 된다. 이는 프로테스탄트 노동관과 산업혁명을 가져온 칼뱅주의의 오랜 잔재다. 하지만 경력은 당신이란 존재의 한 요소일 뿐이고, 아이러니하게도 경력 쌓기에만 집중하면 다른 기회들은 놓치게 된다."(P 60)


포모증후군 FOMO Syndrome - Fear of Missing Out

자신만 세상의 흐름을 놓치고 있는 것 같은 일종의 고립 공포감 - P 22


저자는 이런 현상의 배후로 포모증후군을 지적한다.

SNS의 발달로 세상 모든 일을 공유하다 보니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잘나가는 인생을 사는 듯한 모습을 지켜보게 되고, 나는 주말에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는데 팔로우하는 동료는 어디선가 폼 나는 세미나에 참석하는 내용을 공유하고... 뭐 이러다 보면 '나만 뒤처지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남과의 비교는 인간의 천성이니 이를 피할 순 없다. 그리고 비교 또한 자기보다 못한 걸 비교하기보다는, 항상 내가 못 가진 걸 비교하게 되니 좌절감에 빠지기 쉽다. 적당한 비교는 경쟁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지만 지나친 비교는 역효과다. 무엇이든 과유불급이다.

태생적으로 은둔형 내향인인 저자는 과거 원하지도 않는 외향인 비즈니스 우먼 행세를 했지만 본인에게 맞지 않는 옷이란 걸 체감하고 내향인들의 경전과도 같은 책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를 떠올린다.

결국 <나는 혼자일 때 더 잘한다>는 <콰이어트>의 사상적 기반 위에 저자의 실전 체험이 결합되어 같은 내향인들에게 실제적인 사업상 도움을 줄 수 있는 팁으로 무장한 책으로 완성되었다.

굳이 오만가지 사교 모임에 참석해서 사회적 네트워크를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최소한의 영향력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원한다면 일주일에 며칠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과 개인생활의 양립을 꿈꾸는 게 저자의 지향점이다. SNS 같은 IT 기술의 발달도 내향인들에게는 우호적인 환경을 제공하며, 여기에 특화된 비즈니스 모델도 많이 개발되고 성공자들도 나오고 있다.

이 길을 선택함으로써 잡지 표지에 얼굴이 실리는 정도의 성공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으나 내향인인 본인이 만족하는 수준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큰 문제는 아니다. 어차피 인생은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니까.

이건 본인들의 선택일 뿐, 자신이 성공의 무한궤도에서 경쟁하겠다 하면 그대로 하면 될 일이다.

저자는 '결코 이렇게 하는 게 답이다'라는 주장은 펼치지 않는다.

'이런 삶의 방식도 있으니, 당신이 성공의 사다리에서 피곤함을 느끼고 지친 내향인이라면 이렇게 해보면 어떻겠니?' 정도 은근한 권유에 가깝다.

또 하나의 팁으로 '적합한 노력 appropriate effort'라는 개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항상 최선을 다하라는 문화적 기대와 정반대되는 개념으로, 무언가를 잘해내지만 지나치게 감정을 쏟아붓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이 개념을 대중화한 불교계의 스승, 샐리 켐튼은 적합한 노력은 분투까지는 아닌 노력이라고 설명한다."(P 58)

적당히 '대충주의'가 아니라, 중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숨을 돌릴 여유를 만들고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앰으로써 온전히 일에만 몰입하고 그 과정을 음미하란 의미라고 한다. 매사에 완벽주의자거나 과잉성취자로 키워진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직장 내 위계질서니 라인이니 회식 문화니 하는 조직 생활에 기질적으로 맞지 않는, 워라벨을 중시하는 내향인들에게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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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버니, 어디서든 나를 잃지 마
에스더 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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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에스더 김 esther kim은 LA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10대를 보낸 한국계 미국인 작가이다.

그래서 그녀는 본인 스스로

33%의 한국인, 33%의 미국인, 33%의 일본인이라고

느끼며 생활했다고 한다.

그 결과 한곳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정체성의 혼란도 겪었지만

긍정적으로 보자면 코스모폴리탄의 유전자를

자연스레 배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모든 일에는 빛과 어둠이 있는 법!

그래서인지 작가만의 독특한 감수성이 반영된

사랑스러운 캐릭터 '에스더버니'는

섬세한 소녀스러움이 담겨 있고,

동서양 문화가 복합된 소녀의 미감을 보여준다.

 

에스더버니는 그 안에 이미 다양한

세부 캐릭터들도 창조되어 있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패션과 문화에 열정적인 리본버니.

감성적이고 사려 깊으며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로즈버니,

워커홀릭에 스스로에게 부정적이고 엄격한 옐로우버니 등"

 

각 캐릭터가 등장하는 장마다 페이지 색깔도 다르고

매 페이지마다 저자의 깜찍한 에스더버니가

등장하니 소장용 혹은 선물용으로 그만인

너무나 사랑스러운 캐릭터 도서로 완성되었다.

 

책의 내용은 제목에 잘 나와 있다.

<에스더버니, 어디서든 나를 잃지 마>

다문화적 성장 배경을 지닌

작가가 본인의 분신 같은

에스더버니를 통해 자신의

마음 근육을 든든히 한 내용들이

실려 있다. '어디서든 나를 잃지 마...'

어디에서 누구와 부대끼며 살아가든

본인의 '나'다움을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나 자신을 믿고

내가 나라는 것을 즐기고

내가 되고 싶은 것에 집중하고

나의 장점을 계속 키우고

내가 만족하기 위해 꾸미고

날 미워하지 말고

자기 자신에 투자하고

나만의 정원을 가꾸고

타인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고

나를 위한 감사절을 만들고

나부터 사랑해주세요"

Q <에스더버니, 어디서든 나를 잃지 마>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길 바라나요? (Epilogue P 239)

저는 이 책이 당신을 미소 짓게 하거나

잊었던 자신의 일부를 기억하게 하고,

당신이 쓰러져 있을 때 용기를 주고,

당신이 외로움을 덜 느끼게 해주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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