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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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빅 엔젤'이란 죽음을 앞둔 남자가 있다.

그는 멕시코 태생으로 미국으로 이주해서 일가를 이룬 가장인데, 암 선고를 받고 70세 생일을 맞이한다.

생일 1주일 전 그의 어머니 '마마 아메리카'가 돌아가시자, 빅 엔젤은 장례식을 미뤄 [모친 장례식 + 본인 생일] 이벤트를 준비한다. 그는 이번이 대가족과 함께 하는 마지막 생일임을 잘 알고 있다.

이 가족의 행사를 위해 3대에 걸친 그의 일가친척이 몰려든다. 여기에는 빅 엔젤의 이복형제인 '리틀 엔젤'과 이복 자녀인 '인디오'도 포함되어 있고, 소란하고 요란스러운 멕시코 혈통은 가족의 재회를 시끌벅적한 소동극으로 만든다. 이들은 미국에서 터전을 잡고 살아가지만, 멕시칸이란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래서 빅 엔젤의 아빠 돈 안토니오가 가족을 버리고, 미국 여자 베티와 살면서 낳은 '리틀 엔젤'을 미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우리 과'가 아니라고 배척한다. 물론 전 세계 어느 나라든 이런 형제 관계가 사이가 좋을 리는 없으리라.

돈 안토니오가 이들을 버리고 나서 빅 엔젤이 겪은 고생 수난사를 생각하면 '원인의 결과물' 리틀 엔젤을 곱게 볼 수는 없을 거고.

 

이런 가족 드라마에서 흔히 발견되는 '어디든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는 보편타당한 설정은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원제 THE HOUSE OF BROKEN ANGELS)에 붙이긴 어려울 듯하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이복형제, 이복 자녀란 흔하지 않은 '콩가루' 설정도 그렇고, 지나치게 강한 멕시코 지역색도 정서적으로 적응하기 쉽지 않다.

시끌벅적한 멕시코 혈통은 소설 속에서 '바람을 피운다'는 경계가 흐릿한 듯 보인다. 친척 관계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돈 안토니오도 미국 여자를 만나 큰 어려움 없이(?) 멕시코 패밀리를 버릴 수 있고, 미국 여자 베티에게 버림받자 놀랍게도 다시 빅 엔젤에게 의탁한다. 이런 구조다 보니 이복형제 & 자녀가 쉽게 생길 수 있나 보다.

아버지가 정확히 누군지를 모르는 자녀들도 소설엔 당연하다는 듯 나온다.

좋게 말하면 개방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문란한 성생활이 멕시코적인 것인지, 아니면 유독 빅 엔젤 패밀리만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또한 이들 사회에서 가장의 위치는 가부장으로서 거의 절대적으로 그려진다.

거의 그 가족 내부에서는 가족을 대표하는 왕의 위상이다. 그가 한량이었든 마초였든...

아쉽게도 자녀에게 끔찍한 폭력을 휘두르는 건 돈 안토니오를 거쳐 빅 엔젤에게도 그대로 세습되어, 가뜩이나 친부가 아니어서 빅 엔젤을 인정하지 않던 인디오는 결국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고야 만다.

빅 엔젤의 마지막을 앞두고, 그의 권위를 이제는 리틀 엔젤이 물려받아 가족을 지켜야 하지 않겠냐는 의미심장한 대화가 나온다. 리틀 엔젤은 자신의 가족 내 위치라든지, 혈통의 순수성을 이유로 자신은 대권을 받을 수 없고, 빅 엔젤의 그나마 제정신인 딸 미니가 적임자라고 권하고, 이제는 여자도 그런 임무를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고 시대가 변했음을 강변한다.

이 간략한 시놉시스를 보면 대부분 독자들은 뭔가 삐거덕거리고 곪아 있던 가족 관계가 주인공의 임종을 앞두고 감동스러운 화해, 인생에 대한 찬미를 통해 눈물샘을 자극하는 그런 전개를 그리기 쉬운데 이 소설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이지만, 뚜렷한 기승전결이나 핵심 스토리라인은 없는 편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없는 이들의 수다를 듣는듯한 기분으로 달린다. 개별 구성원들에 대한 이야기가 살짝살짝 페이지를 잡아먹으면서 그들의 소용돌이치는 인생사가 때론 희극으로, 대부분은 비극으로 소개된다.

3대에 걸친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헷갈리게 등장하니, 잘 파악이 안 되면 마지막 페이지에 나온 리틀 엔젤이 그린 가계도를 자꾸 들춰 보면서 참고하면 좋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가족 구성원이 많다 보니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도 많고, 가족 간 반목과 오해도 많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에서는 그런 갈등이 감동적으로 봉합되는 결말은 아니다.

총잡이와 한바탕을 벌이며 인디오도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고, 오랜 기간 겉으로는 냉랭했던 두 명의 '엔젤'(빅&리틀)도 서로를 이해하는 훈훈한 마무리를 보이긴 하지만 그건 그냥 담담할 따름인데, 그 이유는 내가 보기엔 이렇다.

'당신이 불치병으로 내년 생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인데, 그간 소원했던 가족들이 모였다.

굳이 이들과 원수 관계로, 미움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날 이유가 있을까?'

 

본인의 인생을 소설로 쓰면 10권의 대하소설이 된다는 허풍도 많지만, 저자의 친형 '후안'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는 빅 엔젤은 적어도 적을 인생사가 500페이지 이상은 된다.

빅 엔젤은 그래도 평생의 반려자 페를라의 흔들리지 않는 사랑이 있고, 수다스럽지만 사랑하는 많은 가족이 있어 행복하게 눈을 감는다.

"여보. 이만하면 충분해."

그런 게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이 아니겠나. R.I.P 빅 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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