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린다는 것의 무능함에 대해서

 

기다린다는 것은

바위처럼 한 곳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

생의 엔진을 모두 꺼버린

다 놓아주는 무능함이다.

 

사람의 사랑은 모래알갱이와 같아서 

언젠가 다시 단단히 뭉쳐지는  

그 희박한 가능성을 노려보는 것과 같으나

사람의 그리움도 바위와 같아서

천년동안 부서저 내리듯  

고요한 불가해한 것들과 같으니

 

첫사랑은 환호처럼 찾아왔고

두번째 사랑은 뜨거운 촛농의 화상처럼 지나갔으며

세번째 사랑은 캄캄한 어둠속에서 기다리게 했나니

그때 나는 그대를 얼마나 열망했던가

마지막 사랑은 이렇게 팽팽한 수평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다시는 돌아오지도 않을 메아리쪽으로 기울어진 바위처럼

기다린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이니

그대로 바위인채로, 바위이기만 한채로

기다린다는 것은 그토록 무능한 것이다

 

오늘도 바위 한끝 깍아내릴 

바다 저편에 풍랑이 일지 않았으며

하늘 저 멀리에 바람도 일렁이지 않는데

먼저 뒤돌아 보지 않는 그대의 뒷모습

먼저 뒤돌아 가버리지 않는

기다린다는 것은 무능한 것이다.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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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 그녀의 오피스텔은 그녀에게 익숙한 생활과는 한참 거리가 먼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의 부에 대해서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곤 했는데, 이것은 때로 사회주의적인 경향으로 발전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질투처럼 보이곤 했다. 불편했지만, 모텔비를 내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은 있었다. 게다가 몇가지가 자연스럽게 해소되기도 하니까. 하여간 그녀는 광화문의 쇼핑거리와 지역예술, 박물관과 거리예술, 극장과 도시 소음을 한꺼번에 즐기는 듯했고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도시에서의 삶에 대한 좋은 사례들을 그녀 앞에 풀어놓았다.

  그녀는 여가 시간이면 이런 저런 책들을 수집해서 내 구미에 맞게 내 앞에 내밀었고, 그것들은 마치 장남감인형처럼 내 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들이밀고 제 모양을 보여주곤 했다. 그녀는 자신도 그 옆에서 선택되기를 좋아했다. 그녀는 봉제 인형처럼 책들과 나란히 누워 나에게 선택을 강요하곤했다. 당연히 나에게는 그녀에게로 뛰어드는 충동을 걷잡을 수는 없었다. 그녀와 함께라면 언제든 눈이 푹푹 내렸고 그녀는 기꺼이 나의 아나스타샤가 되어주었다. 원래 나의 아나스타샤는 미술전공을 하는 교수다. 물론 이사벨을 만나기 전이니까 이사벨은 알리가 없다. 서로 알아서 좋을 건 뭐가 있단 말인가. 나는 그저 아무말 없다. 그렇다고 지금 나의 아나스타샤를 만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의 아나스타샤는 한달에 최소한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고, 그리고 그녀가 내키면 더 자주 만나기도 하며, 만날 때마다 만족스럽고 열정적인 운동을 제공하곤하니까.

  이사벨은 몇가지 현대적인 램프를 방안에 들여놓았다. 방안에 커튼을 닫아놓고 램프를 여기저기 켜놓는 그녀는 빛에 대해서 설명하곤 했다. 빛이 보여주는 다양한 사물의 색깔과 그 느낌에 대해서 그녀는 묘한 평을 늘어놓곤 했다. 결국에는 항상 그녀의 벗은 몸을 비추곤 했고 나는 다시 눈이 펑펑 내리는 광경을 바라보곤했다. 게다가 그녀는 작은 초들도 사나르곤 했다.

 

"성적 충동을 해소하는 방법이야"

 

이사벨은 그렇게 설명했지만 나는 그것이 좀 야박하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가 넘치는 성적충동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긴 아직 넘치는 삼십대다. 남편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그녀의 남편은 하루종일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성적으로도 지적으로도 그녀를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그녀는 최근에 만나기 시작한 아델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설득할 수 없을 때 그녀릉 다루는 최후의 수단이라고는 그냥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는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두아이를 키우면서도 바람을 피웠으며, 내앞에서 그것을 굳이 감추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구태여 밝히지도 않았지만 여기 저기서 노출되는 흔적으로 나는 정확한 근거를 제공받는 것이다. 이사벨은 근처에 있는 남편의 식당에도 나를 데리고 갔었는데, 남편은 전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정말로 순진한과의 남자였다. 물론 이사벨이 새로 영문과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그 학구열에 불탄다고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슬프게도 이사벨은 전에 바람피던 남자와 나체로 찍은 사진을 <아들숙제>라는 파일명으로 컴퓨터에 저장해놓고 있었고 둘이 누워 있는 광경은 마치 일리아스에 나오는 몇몇 대목을 연상시키는 것들이었다. 이사벨은 바람피운 전적이 있는 만큼 미행이라든지, 흔적을 감추는 것이라든지 하는 것에 빨랐고, 그런 것 때문에 나는 더더욱 그녀의 행적이 뻔하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그녀는 작은 키였지만 외모에 관련된 허세를 부리기도 했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언급하는 몇몇 그 대학교수들과의 대화의 허세와 멋진 짝을 이루었다. 중년의 나이에 새로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이미 순진한 여대생일리 없었던 그녀는 교수와 동급이 되어 그들을 언급하곤 했다. 뿐만아니라 이 세상에 그녀가 읽지 않은 책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두번 읽지 않은 책은 없는 것 같았다. 이사벨은 몇일 전 저녁 식탁에서 그녀가 칭찬해 마지 않았던 파노라마 같은 러시아 소설의 플롯과 영국 소설의 플롯을 비교하면서 기존의 비평에 도전하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 러시아의 소설의 규모가 크다고 광대하지, 반면에 영국의 소설은 어디로 자꾸 기어들어가는 거야, 플롯이 좀 조잡하지 않아?"

 

그녀는 짜증과 불평을 섞어 말했었는데, 그녀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안읽은 것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녀가 직접적으로 그렇게 러시아문학에 대해서 은혜를 베푸는 것은 순전히 나를 의식한 행동이었고, 내가 그녀에 맞서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행동이었다. 그것이 그녀가 설득할 수 없을 때 사람을 다루는 최후의 수단이었을 것이다. 나의 방법과는 다르지만 우리는 서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피차 나눌 것을 나누고 있었다.

 

"참 어머니는 어떤 분이셔?"

"어머니는 아버지에 비해서 좀 외향적이고 뭐든지 하려고 하시지, 여장부야."

 

내가 그렇게 말하면 이사벨은 얼굴에 웃음을 띠곤 했다. 내 아내 숙은 그렇지 않았다. 뭔가 내가 감추고 있기라도 한듯이 얼굴을 찡그리곤 했었다. 나의 삶의 주변적인 것에 대한 관심으로 우리 관계의 복잡성을 벗어나고 있었고, 우리는 다시 침대에서 뒹굴고 있었다. 강의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대충 벗어 놓았던 옷이 구겨져 있었다. 머리속에서 우리가 나누었던 것들이 뇌의 시냅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고 몇시간 혼자 떠들어야 하는 내용을 엉클어 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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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을 길게 참고

 

 

                         카르마

 

 

호흡을 길게 참고 길게 내뿜어

한 송이 작은 꽃 피워 물어라

그대가 피어나는 것에

붉어지는 내 얼굴

왜 떨리는가

 

호흡을 길게 참고 길게 내뿜어

하얗게 뭉게 뭉게 구름 떠올리라

그대가 피어올리는 것에

날아드는 새들처럼

왜 설레이는가

 

그대가 피워올리고 내뿜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인양 

 

 

201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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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속을 들여다보니

 

 

                            카르마

 

 

개울 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너의 눈속처럼 깊숙이

그 속에 내가 있다.

오랜 여행에 지친

피곤과 외로움에 앞으로 쏠린 얼굴로

깊숙이 숨어든 물고기

어디선가 태어나

어디론가 떠다니다가

그쯤에 나타나

시방 나뭇잎을 쪼고  

돌틈에 얼굴 하나

물 속에 일렁이다가

네가 아니었던가

물 속에 일렁이다가

바람에 꺽여 떨어진 나뭇잎들처럼

물 속에 썩은

작년 한해의 기억을 쪼던

물고기 간데 없고   

물을 꺽어 다른 흐름을 만드는

그곳에 박혀있는 돌 하나 있다.

물고기 간데 없고

 

201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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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좀 해"

"뭘 그만해?"

"성자처럼 구는거, 그만 좀 해. 역겨워"

"뭐라고? 난 그냥 너한테 우리와 함께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준 것 뿐이야. 이곳에서 아주 가까운 횟집에 예약을 해놓았거든. 너하고 네 여자 친구가 있으면 데리고 오라고, 그런 식으로 예민반응을 하는 이유는 뭔데?"

 

"귀담아 듣지마, 어머니가 하는 말이나 아버지가 하는 말, 이제는 나이도 마흔을 넘겼잖아? 그러니 어머니 생신에 가서 어머니나 아버지 원망도 그만하고 거기에 앵기는 것도 좀 그만해. 네가 좀 잘못한 일이 있을 때 아픈 척도 그만하고, 온가족이 번갈아 방문해서 네 병치레를 걱정하게끔 엄살 좀 그만 부려." 아델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차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전혀 뜸금없이 자신이 평소에 생각했던 것들을 속살거렸다. 아델은 내가 잠시 사귀는 여자고 엇그제 부터 우리 집에서 자기도 하는 여자다.

 

"나 귀엽지 않아?"

그 많은 말을 하고서 뻔뻔스럽게 올려다보는 그녀의 얼굴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차로 가면서 손을 잡았고 아델은 잠시 내게 바짝 매달렸다.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마른 키스를 했다.

 

우리는 도시를 가로질러 마침내 아델의 집 근처, 벽이 높이 쌓여진 곳으로 향하다가 밖으로 의자를 빼놓은 커피솝에 못미처 차를 주차했다. 이곳에서 대화는 다시 부모의 문제로 돌아갔고 나는 그녀는 내가 부모에게 너무나 많이 기대고 있다고 핀잔을 주었다. 그녀의 말을 듣게 되면 톨스토이의 경구를 입증하는 불행한 가족의 독특한 방식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어머니는 세 아들을 귀찮은 존재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자식들이 성년이 되면서 어머니는 버림받았다는 느낌에 사로잡혔고 어머니로서의 소명도 끝났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어머니를 버린 자식, 아니면 자신이 버린 어머니의 역할은 어머니가 바라 마지 않는 역할인 듯했다. 가끔 알현을 하려 전화를 하면 어머니는 역설적이게도 늘 감정적인 면에서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아델은 짧은 시간에 이 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어머니와 이야기 하는 것을 불편해 했다. 내가 사귄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어머니의 전화가 오자 그녀를 바꾸어주었을 때였다. 그녀는 어머니가 자기 나르시즘 적인 경향이 있고 더 나아가서 자식의 일에 대해서 자기 주도적인 경향이 있다고 이미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과 이야기하는 것을 어느 누구와 이야기 하는 것보다도 더 좋은 일인척 하며 말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머니는 오늘 어린이 날인데도 자신과 저녁을 먹지 않은 것에 대해서 격분할 거야. 내가 어린이가 되기를 바라시는 거지. 그것 때문에 동시에 나를 어려워 하시기도 하지"

 

아델은 카페라떼를 시키면서 내가 하는 말을 골똘히 듣기만 했다. 그리고 늘상 그렇듯이 나를 위해서는 에소프레소 더블을 시켜주었다. 아델이 그런 식의 무관심한 척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아델은 홀어머니가 사는 아파트 부근에서 살고 있고 자주 그 어머니에 대해서 언급하곤 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약간의 측은한 감정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숙이 떠나고 숙과의 감정적인 온기를 중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숙의 정신 구조에서는 감정적인 온기를  보여주는 능력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싸늘하게 식게 하는 어떤 명령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도 여자들이 가짜로 약한 면을 보여주는 악마같은 능력을 지녔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동성애를 느끼기도하는 내일 만날 그 놈도 아델에 대해서는 좋게 평가하고 있고 숙에 대해서는 진짜로 나와 안맞는다는 말을 한적이 있었다. 그놈을 편이상 로걀이라고 하자. 로걀은 가끔 엄살을 피면서 아델한테 전화를 하는 모양이다. 아델은 그 친구의 행동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엄살을 하기 때문인지 다른 사람의 진짜 고통을 귀신같이 구별해냈으며 진짜로 아파할 때 마다 그 상처를 지체없이 후벼파곤 하기 때문에 아델과 나는 로걀의 미움을 샀으며 동시에 한결같이 존경을 받기도 했다.

 

아델의 어머니는 부유한 출신으로 동부이촌동에 아파트를 두 채를 가지고 있어 그것 중에 하나를 딸에게 주었고 딸이 남편과 그만그만한 관계에서 별거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아델의 남편은 술병을 보관하는 장에 위스키를 7병이나 넣어놓았고 포도주는 단 1병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남편은 알콜중독자이거나 폭음을 하는 자임에 틀림없었다. 우리는 보통은 서로의 사생활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 따라서 그녀의 집에 갔을 때 가구의 배치 그녀 어머니의 잦은 방문으로 미루어 가족관계를 가늠할 뿐이었다.

 

그녀, 아델에게 상처를 줄 수는 없었다. 그녀의 감정적 균형은 불평할 거리를 찾아 균형을 맞추기 때문에 그녀가 최근에 시작한 공부를 불평하던가 아니면 그 학교 교수들을 씹는 것에서 어리석게도 그녀의 운명은 좀 편해지고 있었다. 아니면 꽤 고통을 겪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애들이 둘이나 있으니 말이다. 하여간 그녀는 얼마전에 영문과 학부를 다니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그녀가 귀엽기만 하며, 결혼한 남편과 별거아닌 별거를 하게된 경위와 인류의 어디에서나 발견된 암담한 순간을 그녀에게서 발견하고 그녀와 사귀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의 관심은 사실 그녀가 강한 남자를 숭배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내가 상당히 강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편이 닭곰탕 식당을 꽤 요령있게 운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나는 막무가내의 삶을 용감하게 무모하리만큼 대책없이 살고 있기 때문에 나를 숭배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다시 대학시절을 맞고 있는 듯한 묘한 착각이 일기도 한다. 그녀는 익숙한 삶에서 벗어나 대학시절을 시작했으며, 그녀가 남편과 묘연한 관계를 시작했기 때문이고 나와 동성애적인 관계를 시작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동성애라고 하지만 함께 잘 때는 동성애의 모양은 아님은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매는 분명 동성애적인 어떤 것이 있다. 그래서 나는 동성애적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그녀는 실제로 뒤쪽의 그곳을 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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