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좀 해"
"뭘 그만해?"
"성자처럼 구는거, 그만 좀 해. 역겨워"
"뭐라고? 난 그냥 너한테 우리와 함께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준 것 뿐이야. 이곳에서 아주 가까운 횟집에 예약을 해놓았거든. 너하고 네 여자 친구가 있으면 데리고 오라고, 그런 식으로 예민반응을 하는 이유는 뭔데?"
"귀담아 듣지마, 어머니가 하는 말이나 아버지가 하는 말, 이제는 나이도 마흔을 넘겼잖아? 그러니 어머니 생신에 가서 어머니나 아버지 원망도 그만하고 거기에 앵기는 것도 좀 그만해. 네가 좀 잘못한 일이 있을 때 아픈 척도 그만하고, 온가족이 번갈아 방문해서 네 병치레를 걱정하게끔 엄살 좀 그만 부려." 아델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차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전혀 뜸금없이 자신이 평소에 생각했던 것들을 속살거렸다. 아델은 내가 잠시 사귀는 여자고 엇그제 부터 우리 집에서 자기도 하는 여자다.
"나 귀엽지 않아?"
그 많은 말을 하고서 뻔뻔스럽게 올려다보는 그녀의 얼굴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차로 가면서 손을 잡았고 아델은 잠시 내게 바짝 매달렸다.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마른 키스를 했다.
우리는 도시를 가로질러 마침내 아델의 집 근처, 벽이 높이 쌓여진 곳으로 향하다가 밖으로 의자를 빼놓은 커피솝에 못미처 차를 주차했다. 이곳에서 대화는 다시 부모의 문제로 돌아갔고 나는 그녀는 내가 부모에게 너무나 많이 기대고 있다고 핀잔을 주었다. 그녀의 말을 듣게 되면 톨스토이의 경구를 입증하는 불행한 가족의 독특한 방식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어머니는 세 아들을 귀찮은 존재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자식들이 성년이 되면서 어머니는 버림받았다는 느낌에 사로잡혔고 어머니로서의 소명도 끝났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어머니를 버린 자식, 아니면 자신이 버린 어머니의 역할은 어머니가 바라 마지 않는 역할인 듯했다. 가끔 알현을 하려 전화를 하면 어머니는 역설적이게도 늘 감정적인 면에서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아델은 짧은 시간에 이 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어머니와 이야기 하는 것을 불편해 했다. 내가 사귄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어머니의 전화가 오자 그녀를 바꾸어주었을 때였다. 그녀는 어머니가 자기 나르시즘 적인 경향이 있고 더 나아가서 자식의 일에 대해서 자기 주도적인 경향이 있다고 이미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과 이야기하는 것을 어느 누구와 이야기 하는 것보다도 더 좋은 일인척 하며 말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머니는 오늘 어린이 날인데도 자신과 저녁을 먹지 않은 것에 대해서 격분할 거야. 내가 어린이가 되기를 바라시는 거지. 그것 때문에 동시에 나를 어려워 하시기도 하지"
아델은 카페라떼를 시키면서 내가 하는 말을 골똘히 듣기만 했다. 그리고 늘상 그렇듯이 나를 위해서는 에소프레소 더블을 시켜주었다. 아델이 그런 식의 무관심한 척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아델은 홀어머니가 사는 아파트 부근에서 살고 있고 자주 그 어머니에 대해서 언급하곤 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약간의 측은한 감정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숙이 떠나고 숙과의 감정적인 온기를 중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숙의 정신 구조에서는 감정적인 온기를 보여주는 능력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싸늘하게 식게 하는 어떤 명령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도 여자들이 가짜로 약한 면을 보여주는 악마같은 능력을 지녔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동성애를 느끼기도하는 내일 만날 그 놈도 아델에 대해서는 좋게 평가하고 있고 숙에 대해서는 진짜로 나와 안맞는다는 말을 한적이 있었다. 그놈을 편이상 로걀이라고 하자. 로걀은 가끔 엄살을 피면서 아델한테 전화를 하는 모양이다. 아델은 그 친구의 행동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엄살을 하기 때문인지 다른 사람의 진짜 고통을 귀신같이 구별해냈으며 진짜로 아파할 때 마다 그 상처를 지체없이 후벼파곤 하기 때문에 아델과 나는 로걀의 미움을 샀으며 동시에 한결같이 존경을 받기도 했다.
아델의 어머니는 부유한 출신으로 동부이촌동에 아파트를 두 채를 가지고 있어 그것 중에 하나를 딸에게 주었고 딸이 남편과 그만그만한 관계에서 별거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아델의 남편은 술병을 보관하는 장에 위스키를 7병이나 넣어놓았고 포도주는 단 1병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남편은 알콜중독자이거나 폭음을 하는 자임에 틀림없었다. 우리는 보통은 서로의 사생활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 따라서 그녀의 집에 갔을 때 가구의 배치 그녀 어머니의 잦은 방문으로 미루어 가족관계를 가늠할 뿐이었다.
그녀, 아델에게 상처를 줄 수는 없었다. 그녀의 감정적 균형은 불평할 거리를 찾아 균형을 맞추기 때문에 그녀가 최근에 시작한 공부를 불평하던가 아니면 그 학교 교수들을 씹는 것에서 어리석게도 그녀의 운명은 좀 편해지고 있었다. 아니면 꽤 고통을 겪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애들이 둘이나 있으니 말이다. 하여간 그녀는 얼마전에 영문과 학부를 다니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그녀가 귀엽기만 하며, 결혼한 남편과 별거아닌 별거를 하게된 경위와 인류의 어디에서나 발견된 암담한 순간을 그녀에게서 발견하고 그녀와 사귀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의 관심은 사실 그녀가 강한 남자를 숭배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내가 상당히 강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편이 닭곰탕 식당을 꽤 요령있게 운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나는 막무가내의 삶을 용감하게 무모하리만큼 대책없이 살고 있기 때문에 나를 숭배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다시 대학시절을 맞고 있는 듯한 묘한 착각이 일기도 한다. 그녀는 익숙한 삶에서 벗어나 대학시절을 시작했으며, 그녀가 남편과 묘연한 관계를 시작했기 때문이고 나와 동성애적인 관계를 시작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동성애라고 하지만 함께 잘 때는 동성애의 모양은 아님은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매는 분명 동성애적인 어떤 것이 있다. 그래서 나는 동성애적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그녀는 실제로 뒤쪽의 그곳을 내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