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한 배반과 사소한 변명

 

 

  

                                       카르마

 

 

 

사랑아, 수백 수천으로 분열하여 성장하는,

뺨 붉어지는 어수선한 설레임이 아직도 가득한,

촉각을 곤두세우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변명,

이 기다림은 그곳을 너무 황급히 떠났기 때문이지

 

사랑아, 나는 오래 전 그 식탁에 앉아 그 문턱을 바라보지

문이 열릴 때마다 눈이 먼저 일어나 흘끔 흘끔 바라보지

어쩌면 검은 옷을 입은 신부처럼, 오오 이 순결한 배반이여

가벼이 죽어간 이들의 발을 담고 있던 구두처럼 숨막히는 

 

그날 오후 한구절도 내뱉지 못한 내게서 훔쳐간 

그날 자정까지 거리를 헤매다가 문득 기억해낸 

그래, 빛에 의지해 살았던 이름, 그 투명한 저주

간신히 그 이름에 의지해서 운위할 수 있는

 

너와 나는 탄생과 죽음의 간극에서 맹세를 저버린 심장

심장이 쏟아내는 호흡, 그 호흡마다 견뎌야하는 생의

포기할 수 없는 사소한 감촉이 배반의 형벌처럼 깨어나는

사랑아, 너와 내가 건너갈 수 있는 유일한 문턱을 바라보지

 

 

2012. 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건과를 씹으며

 

 

                               카르마

 

 

수분이 바싹 마른

색의 기억도 바랜 열매

 

빛의 폭력을 견디느라 쪼그라든  

가벼운 기억만으로도 어둠은 충분해

 

너로 충만하다는 것은 무겁다는 것이며

수분이 가득하다는 것이며

세월에 녹지 않은

둥둥 떠 있는 기름같은 미련

가득한 감정을 아래로 가두고 소외된 것이며

 

그러므로

이걸로 충분해

 

시간이 지나고 우리 서로

가벼운 기억같은 존재로

 

빛의 폭력이 지나간 자리

이 건조함을 꼽씹는 것으로 충분해

 

꽃으로 열매로 성장했던 것들  

성숙할수록 그토록 가벼운 것들

 

그럼에도 충분히 가벼운 것들 

이 달콤한 건조함

 

 

2012. 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만약에 접속사는 아프다 

 

 

 

                                                        카르마

 

 

 

만약에 그대는 텅빈 공간에 들어온 하나의 단문, 그렇게 부르자

홀연히 불러본 이름처럼 길게 그림자 드리운

쓸쓸한 것들마다 돌아보는 저녁 햇살, 그대를 그렇게 불러보자

보이는 것마다 이름이 있는데

부를 수 없는 것도 이름이 있는데 

 

숨구멍마다 들어오는 짧은 호흡 이승에서 밀려가듯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간절히 나부끼듯  

펼쳐진 나의 손은 너를 향한 접속사, 접속사라 부르자

비현실적인 만약에를 아프도록 뒤따르는

계절이 바뀌는 지점마다 펼쳐지는 손

 

만약에 세월이 흘러서 타고 남은 시간처럼 

짓다 만 꿈들이 상처마다 닿았던 흔적처럼

여기저기 꽃 손 삐져나오는 것들마다 접속사라 부르자

삐딱한 생의 열망이 한참동안 떨리다가

몸안에서 잠들지 못하고 씨앗처럼 움트는 것들을

 

 

2012. 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너는 고요하다

 

 

                               카르마

 

 

 

하나를 밀어 닫으면 또 다른 하나가

빠끔이 눈을 뜨는 밤하늘

밤새도록 너을 바라본다.  

한쪽 눈으로 지켜보는 눈들이

멀리서 촛점을 맞추는 인기척이

고요하다

 

너는 수수만년을 달려와 꽂히는 예리한 빛

너는 참혹한 시간마저 한 방울로 떨어지는 눈물

그걸 다 받으려고 펄럭이는 심장이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이 

숨넘어가듯 창턱을 넘는 바람이

고요하다.

 

네게로 길을 여는 눈맞춤이란

네게로 소멸하는 영혼의 입맞춤이란

네게로 뛰어드는 우연한 발맞춤이란

한치의 오차없는 각도의

예리한 칼날처럼

고요하다 

 

  

 

2012. 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별하는 얼굴

 

 

               카르마

 

 

그의 넘치는 얼굴,

내가 모르는 표정을 짓는다

 

얼굴 어딘가에 만지작거리다가 

찡그려진 눈속으로 빠져든 하루치의 시간

 

코에서 눈으로, 눈에서 이마로, 이마에서 머리카락으로

하루종일 따라가도 무표정한 세상이 귓속으로 입속으로

모르는 사람들의 얼굴처럼 다가와

물고기처럼 헤엄치는 것들

 

얼굴은 말이 없고, 커튼을 내리고, 돌아눕고

나는 어둠같은 사탕을 깨물어

무거운 어둠의 맛이 입안에 헝건할 때  

 

내가 들고 있을께

꽃이 마지막 숨을 거둘 때 

바람이 나풀 나풀 사그라지고

나무도 별도 너도 사라지는 어둠속에서

내가 그 얼굴 들고 있을께

 

 

2012. 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