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
이사야 벌린 지음, 안규남 옮김 / 미다스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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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되는 해였다. 그의 사상을 받아들인 마르크스주의는 구소련이나 북한 등의 독재, 인권 탄압 등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지만, 정작 칼 마르크스 자신의 생애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이사야 벌린의 마르크스 평전은 간명하면서도 포괄적으로 마르크스의 생애의 사상을 다루고 있어 도움이 된다.


마르크스는 1818년 5월 5일, 독일의 트리에에서 개종유대인 변호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트리에는 나폴레옹에게 정복당해 라인연방으로 편입되었다가 독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1835년 본대학에 입학하고 몇 년 후에는 베를린대학에서 공부하게 된다. 이곳에서 헤겔과 포이엘바흐의 영향을 받아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사상을 완성시킨다. 1842년에는 쾰른의 <라인 신문> 편집장을 맡았다가 러시아 비판으로 인해 발매가 금지된다. 이후, 파리와 브뤼셀을 오가며 좌파 사상가들과 교류를 하며 문장을 쓰곤 했다. 이 시기 헌신적인 친구이자 지적 동지인 엥겔스와 만남을 가진다.

1848년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선언>을 발표하며 마르크스의 이름은 전 유럽에 알려지게 된다. 이로 인해 파리와 브뤼셀에서 쫓겨난 마르크스는 영국으로 망명해 죽을 때까지 영국에서 머물렀다. 런던에서 마르크스는 세 자녀가 죽을 정도로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는 생활을 했고 엥겔스의 원조와 미국의 <뉴욕 트리뷴>에 보내는 원고료로 연명했다. 그는 바쿠닌, 프루동, 푸리에 등의 다른 사회주의자들과 격렬하게 논쟁하기도 했다.

1864년 만들어진 제1인터내셔널에서 마르크스는 중심적 역할을 하면서 다시금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1867년 <자본론> 1권을 출판함으로써 전 유럽에 명성을 날리게 된다. 특히 러시아에서 <자본론>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면서 마르크스는 기존의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고 자본주의가 낙후된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을 점치게 된다. 원래 계획했던 <자본론> 2, 3권을 완성시키지 못 한 채 마르크스는 1883년 폐종양으로 사망한다.

저자인 이사야 벌린은 그에 대해 "마르크스는 매력이라고는 거의 없으며 행동도 촌스러운 편인데다 늘 맹목적인 증오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의 강렬하면서도 정력적인 성격, 개념이 분명하면서도 포괄적인 견해들, 그리고 시대 상황에 대한 폭넓고 탁월한 분석에는 적들조차도 매료되었다"(20)고 평가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성인군자와 같은 성품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경제학, 사회학, 철학에 있어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이사야 벌린은 1909년 라트비아에서 태어나 1915년 러시아로 건너갔다가 러시아혁명 이후인 1921년 영국으로 이주한 인물이다. 자유주의를 옹호한 벌린은 자유를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구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얼핏 보기에는 소극적 자유보다 적극적 자유가 더 좋은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실제로 그렇게 착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자유의 두 가지 개념을 제시한 벌린 자신은 소극적 자유를 옹호하며 적극적 자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루소가 대표적인 적극적 자유는 개인에게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 자유를 행사할 것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전체주의를 낳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혁명을 통해 필요의 왕국이 아닌 자유의 왕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한 마르크스의 자유 개념 역시 마찬가지다. 마르크스주의를 국가이념으로 주장한 구소련 등의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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