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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문법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소준철 지음 / 푸른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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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10개 주고 싶은데 왜 5개 밖에 못 주게 하는 겁니까? 우리 시대 가난을 이해하고 연대해 나갈 근거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역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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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나는 더 행복하다 - 스물넷에 장애인이 된 한 남자와 그가 사랑한 노들야학의 뜨거운 희망 메시지
박경석 지음 / 책으로여는세상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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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노들야학, 좌충우돌하며 사회와 맞서다!!! 꼭 읽어봐야 할 필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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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동 더하기 25 - 가난에 대한 스물다섯 해의 기록
조은 지음 / 또하나의문화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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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良書)라 함은 바로 이런 책을 가리키는 것.

 

흔히 사람들이 '가난'에 대하며 보이는 태도들, 말하자면 '배운 사람'의 입장에서 경솔하게 특정 이론을 들이밀며 끼워맞춰 설명하려 하거나,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경망스럽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며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겠다고 하거나... 그런 모습들이 이 책에선 보이지 않는다. 저자 자신은 충분히 그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한번도 가난을 겪어보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대학의 사회학 교수. 그녀가 유니세프의 연구비 지원으로 시작된 철거지역 주민들에 대한 현장 연구는, 이러저런 인연이 얽혀 스물 두번째 해에는 다큐멘터리를, 스물다섯해에는 책을 내게 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감히) 가난했다고 말할 수 있을 나의 어린 시절과, 그런 나의 어린 시절을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가난했던 나의 친척들, 동네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런 가난했던 삶에 대해서 스스로 반추하도록 만드는 것이 이 책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산체스네 아이들>을 소개하면서 말했듯이 '빈곤 문화'의 유형으로 '역사의식의 결여'를 꼽을 수 있다면, 가난한 이들이 스스로의 역사를 돌이켜보고, 재구성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얼마나 '변혁적인'(!!) 힘인지!!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껏 어머니 아버지의 어린시절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가끔 술 드시고 푸념하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사실 나는 아름다운 어린 시절 까지는 아니어도, 어머니 아버지의 삶의 이야기들을 듣는 것에 많이 고팠었던 것 같다. 가난해도 스스로를 자학하지 않고 긍정할 수 있는 인생서사, 나에겐 그런 것이 필요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충분히 그래도 좋을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한번도 그렇게 이야기해 주지 않으셨다. 내 가족사에서 가장 큰(?? 가장 까지는 아니고... 어쨌든) 불행이라면 이런 것이 아닐까?

 

주민들을 인터뷰 하는 과정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연구조교의 이야기가 여러차례 나온다. 그녀는 섣불리 가난의 '문화적 조건'을 규정하고 그런 문화를 비난하고는 했다. 하지만 저자가 이들을 만난 25년의 세월은 이를 '문화적 조건'이 아니라 '문화적 결과'로 바라보게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을 끌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끈질기게 포착해 낸다.

 

이 책을 문학의 한 장르로서 '르포'라고 부르기는 어렵겠지만, 르포를 쓰겠다는 사람들이라면 이 정도의 끈질김, 인내, 그리고 성숙한 시선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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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空)이란 무엇인가 개념어총서 WHAT 3
김영진 지음 / 그린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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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두 철학자가 쓴, <불교가 좋다>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불교 관련 책. 첫번째 책이 비교종교학의 입장에서 불교가 가톨릭등 다른 종교에 비해 자연과 생명에 대한 더 폭 넓은 이해를 갖고 있음을 '자랑'(?)하는 책이었다면, 이번에 읽은 책은 좀 더 심오한 불교의 세계로 안내한다.

 

불교의 핵심 개념인 공(空). 그런데 이 공개념은 불교 내에서도 초기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에서 갖는 차이가 크다. 간단히 말하자면 초기의 공개념은 '공'이라는 실체를 가정하여 존재와 비존재와는 또 다른 제3의 실체를 가정한다면, 대승불교(이 책에서는 주로 대승불교의 공개념을 가장 극한적으로 사고한 나가르주나)에서는 "모든 것이 공하다"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말한다.

 

전자의 것이 외려 노자의 <도덕경>과 맞닿아 있다면, 후자의 것은 니체의 니힐리즘과 맞닿아 있다. 그런데 이 니힐리즘이 꼭 염세주의나 극단적 허무주의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나가르주나의 공개념은 존재의 가능근거에 대한 통속적인 이분법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통해 연기설을 벗어나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주체의 자리를 지워버리고 새로운 주체관을 성립시키려는 노력이다. 즉 인과론("씨앗에서 싹이 튼다"와 같이 변화의 가능근거가 본래 주어져 있다는 생각)과 우발론("씨앗에서 싹이 트지 않는다"와 같이 변화의 가능근거는 외부로부터 우발적으로 주어진다.)는 두 통념에 대해 이중적인 부정을 통해 주체의 자리는 본래부터 공(空)했으며, 그것은 연기(緣起)하고 있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굳이 현대에 적용하자면, 근대적인 자아개념은 설자리가 없다. 나가르주나는 데카르트와는 완전 상극이다. 하지만 나는 저자가 공개념은 허무주의가 아니라고 말함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는 순간 참 허무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주체가 공하다고 느끼는 것은 누구인가? 저자는 공개념으로도 윤리가 가능하다고 말하는데, 연기의 과정중에도 공으로서 스스로를 일깨우는 주체라도 있어야 윤리를 행할 것 아닌가?

 

대승불교의 전통이 개인적 수양론을 배제하고 중생 속에서 끊임없는 구도의 과정을 중시한다는 것, 윤회를 거부하지 않는 다는 점에는 호감이 가나, 과연 누가 주체를 지워버린 자리에 떠도는 공개념을 포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는 오히려 자기상실을 통해 타자와의 합일을 강조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자신은 데카르트를 존경한다고 말한 함석헌의 주장이 더 끌리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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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자본주의 - 자본은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에바 일루즈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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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책입니다. 분석도 맘에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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