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09년 2월 14일 

 

1.


 



 

 

 

 

얼마 전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워낭소리>를 봤다. 워낙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아서 거의 완벽한 스포일링을 당하고 간 상태였지만, 영화의 여운이 아직까지 남는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처럼 봉화의 아름다운 풍경들에 감탄하고, 할아버지와 소의 애틋한 사랑에 동감한 것은 아니다. 물론 소가 죽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슬픔에 잠겨 있는 장면에서 나 또한 눈시울을 적셨지만, 지금까지 내 마음 한켠을 붙들고 흔드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소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등뼈가 앙상하게 보일 정도로 다 늙어서 일만하는 소가 뭐가 부럽냐고? 그러나 내가 부러운 것은 소의 '살아생전'이 아니라 죽어서 '흙'이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소는 죽고 산 언저리에 묻혔다. 그리고 그 위엔 풀이 자라났다. 그리고 수 십년이 지나면 소의 육체도 미생물들을 만나 변형되면서 풀이 되고, 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죽어서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매일 같이 이산화탄소를 내뿜어대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육중한 도시에는 내가 흙이 되고 풀이 되고 꽃이 될 수 있는 조그만 땅 뙤기도 허락하지 않는다. 오로지 저 먼 중동 땅에서 왔을 법한 석유 찌꺼기들만이 온 도시를 뒤덮고 오직 흙 한줌의 숨통조차도 조여매고 있다.
 

괜히 이런 생각도 해 본다. 불교에선 전생과 내세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죽어서 흙이 될 수 없고, 풀이나 꽃이 될 수 없는 이 도시중심적 사회에서도 전생과 내세가 존재할 수 있을까? 내가 모르긴 몰라도 아마 석가모니가 생각한 전생과 내세는 단순한 정신 또는 영혼의 순환이 아니라 (정신과 육체의 분리라는 관념은 철저히 서양 근대의 사고방식이 아닌가!) 육체와 자연의 순환까지 포함하는 언어였을 것이다. 어차피 하얀 가루가 되어 조그마한 항아리 안에 담겨질 육체라면 내세도 기약할 수 없는 것 아닐까? 물론 어차피 벌써부터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2.
 

 

예전에 <<블루골드>>(모드 발로 & 토니 클라크 저, 개마고원, 2006)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물 사유화의 문제를 다룬 꽤 두꺼운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물 사유화를 추진하는 초국적 기업들을 '현대판 봉이 김선달' 정도로 표현하기에는 2%, 아니 20% 정도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선달은 대동강물은 멀쩡히 놔두고 양반댁에 물을 길어다 날라주는 짐꾼들에게 동전 몇 닢 받는 걸로 세상 사람들의 눈을 속여 대동강 물을 4천냥을 받고 한양 상인에게 판 정도였지만, 21세기의 봉이 김선달들은 아예 육지에 있는 물을 고갈시켜서 그 희소성을 증대시키는 악질적인 방식을 택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눈여겨 볼 것은 육지에서 담수(淡水)를 보관할 토양을 없애버린다는 점이다. 도시화로 인해 농업을 위한 경작지는 점점 파헤쳐지고, 그 위에 곧게 뻗은 길과 높은 건물들이 세워지면서 그 위는 전부 시멘트와 석유 찌꺼기일 뿐인 아스팔트가 덮어버린다. 그리고 도시 생활에 적합한 하수도 시설이 갖춰진다. 그런데 예전엔 비가 오면 빗물을 토양이 잡아두어 지하로 흐르면 그 물이 저수지 등으로 흘러 사람들이 쓸 수 있었는데, 시멘트와 아스팔트는 빗물을 전부 하수도로 내다 버린다. 하수도로 흘러간 물은 대부분 강을 거쳐 바다로 직행한다. 이런 토양의 손실, 그리고 온갖 오염의 원인으로 인해서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담수는 점차로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그나마 있는 물의 사용도 온갖 댐 건설, 관개시설 정비를 통해 전적으로 공업적 시설을 비롯한 자본의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된다. 그렇게 해 놓고 사람들이 몸을 씻고, 목을 축이고, 음식을 만들어 먹을 물은 비싼 값에 사서 쓰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21세기 봉이 김선달은 초국적 기업들로 집단화 되어 있으며, 좀 더 뻔뻔하고 노골적이다. 그리고 역시나 이 문제의 열쇠는 '흙'에 달려 있다.

 

3.
 

 

그리고 최근에 읽은 <<이윤에 굶주린 자들>>(프레드 맥도프 외, 울력, 2006)에서는 토양의 획득과 이용이 오로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agribusiness)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토양에 대해 자본의 논리가 들어서게 된 것은 세간의 이해와는 다르게 그리 최근의 현상만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 책의 첫 번째 글인 엘런 우드의 '농업 자본주의의 발생'에서는 이런 점을 강조하면서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농업 문제를 논의의 바깥으로 밀어낸 기존의 인식에 대해 반성을 요구한다.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이 산업혁명의 신화에 반대해서 자본주의의 기원을 '상업'에서 찾으려 했다면, 오히려 그는 그 반대편에서 찾으려 한 것이다.
 

그는 노동을 통해 재산소유권이 형성된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진 로크의 이론은 꼼꼼히 살펴보면 논점이 노동 자체가 아니라 생산적이면서 이윤을 낳는 토지 이용인 '토지 개량'이 소유권을 형성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고 말한다. 토지를 개량하는 적극적인 지주(↔봉건적 지주)는 자기 자신의 직접적인 노동이 아닌, 자신의 토지와 다른 사람의 노동을 생산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소유권을 확립한다. 개량되지 않은 토지, 임대되지 않아서 이윤을 낳지 못하는 땅은 '황무지'였고, 이러한 토지를 전유하는 것은 개량하는 사람들의 권리이고, 심지어 의무이기도 했다. 영국에서의 토지 개량에 대한 이런 관점은 식민지 뿐만 아니라 본국에서도 토지 강탈을 정당화 했고, 이는 인클로저와 같은 토지 소유권의 재정립 가져왔다. 이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생활을 위해 의존해 왔던 공유적 관습적 토지 이용권이 소멸되는 현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대량의 비농업 노동력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생산성을 갖는 농업 부문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세계 최초의 산업 자본주의가 출현 할 수 있었을까? 영국의 농업 자본주의가 없었다면, 임금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만 하는 무산대중이 존재했을까?

자본주의적으로 개량된 농업은 이제 도시의 무산 대중에게 공급될 식량 생산이나 목양, 원예, 과일 등 고부가가치 농업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그 중심에 농업생태체계의 신진대사를 교란시키는 단종경작(monoculture)이 자리잡고 있다. 존 포스터와 프레드 맥도프는 독일의 토양화학자 리비히와 마르크스의 논의를 빌려와 단종경작이 중심이 된 영국의 집약적 농업이 농촌에서 도시로 식량과 섬유의 원거리 수송을 필연화하는 반면, 질소, 인 칼륨 등의 영양물질을 재생시키기 위한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주변부의 농촌은 토양의 영양분을 박탈당하고, 중심부의 도시는 쓰레기와 공해로 환경이 훼손된다. (거름이 되지 못해 길거리에 뿌려진 똥 때문에 하이힐이라는 뛰어난(!!) 패션 상품을 만들어낸 프랑스 파리를 생각해 보자.)

자본주의의 중심부가 미국으로 넘어오면서 농업은 또 한번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이 시기에 탈곡기, 수확기 트랙터 등의 기계가 발명되고, 질소비료, 살충제, 제초제 등 화학적 투입물이 대량 생산된 것을 배경으로 농업과 공업의 '수직적 통합'이 단행된다. 농민들이 자신의 토지에서 수행하는 영농에서부터 생산물의 수송, 가공, 유통, 판매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를 정점으로 한 수직적 배치 아래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사례가 수직적 통합을 잘 설명해 준다.

 


"계약 영농의 본질을 잘 보여 주는 사례는 특히 계약 시스템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육계broilers(식육용으로 사육되는 닭)생산에서 볼 수 있다.(... ...)
육계 생산은 타이슨(혹은 유사한 다른 지방 기업들)과 4년 계약을 맺고 생산되는데, 이 계약에 따라 타이슨이 사육할 병아리, 사료, 그리고 수의학 서비스의 독점 공급자가 된다. 타이슨은 공급되는 병아리의 유형, 공급량과 공급 빈도의 유일한 결정자이다. 타이슨은 7주 후에 자신들이 정한 날짜와 시간에 다 자란 닭을 수집한다. 타이슨은 사육되는 닭의 무게를 재는 저울을 공급하고 닭을 싣고 갈 트럭을 제공한다. 농민은 노동, 사육장, 사육장이 세워지는 토지를 제공한다. 사육에 필요한 투입재와 사육 방식에 대한 엄밀한 통제는 전적으로 타이슨의 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생산자(농민)는 사료, 수의약품, 제초제, 농약, 살충제, 쥐약 등 회사에 의해 공급되거나 그 회사의 문건에 의해 승인된 것 이외의 다른 어떤 물품도 사용하지 않아야 하고, 그에 서명해야 한다." 더구나 농민은 회사의 "육계 사육 지침"을 준수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농민들은 "집중 관리" 대상이 되어 타이슨의 "육계 관리 및 기술 자문관"의 직접 감독을 받게 된다."


- 167-8pp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토지는 농민이 제공한다는 것이다. 농민은 '토지 소유자'이다. 즉 요즘엔 옛날처럼 소작농이 없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지주인가? 그렇지도 않다. 지주치고는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게 너무 없다. 농업에 투입되는 비료 및 사료, 농약, 농기계, 생명공학 등의 대부분의 투입물를 외부에서 조달해야 한다. 이 과정은 전적으로 시장논리에 따라 이루어지며, 생산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농의 출발점이 되는 종자에 대한 정보와 기술은 생명공학기술을 독점한 초국적 종자기업(몬산토, 노바티스, 듀퐁 등. 이들은 미국에서 제약회사 다음으로 높은 이윤율을 내고 있는 기업들이다.)은 종자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끊임없이 강화하려 한다. 그래서 생명공학적으로 조작된 종자를 도입하는 농민은 작물에서 생산된 다음 세대의 종자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양도한다는 계약을 종자 생산자와 맺어야 한다. 이를 어기고 농민이 농사를 지어 얻은 종사를 다른 농민에게 팔거나, 다음해 농사를 짓기 위해 자신의 농장에서 생산된 2세대 종자를 다시 파종하는 행위는 '해적질'로 매도된다. 그럼에도 영농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든 비용, 즉 자연재해, 병충해, 농민 건강 악화, 생태 파괴 등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농민이 부담해야 한다. 왜? 농민이 땅 소유자니까....

 
4.

내 주변에는 숨 쉬지 못하고, 그래서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는 그냥 '땅'들만이 가득하다. 제작년까지 우리집이었던 곳의 뒷 마당에는 엄마가 상추, 고추, 고구마 등을 심어서 우리집 네 식구 먹을 거리는 해결했는데, 그나마 그 땅도 이제 아파트 만든다고 다 밀어내고 있다. 그렇다고 숨 쉬고 있는 땅이 사정이 좋은 것도 아니다. 자신이 발 딛고 있는 땅 그 자체에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외부에서 들여온 비료며 종자기술로 생을 연명하는 땅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그렇게 많은 땅의 숨통을 틀어 막아놓고는 그나마 숨쉬고 있는 좁은 농촌의 땅과 농민들을 무한히 착취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착취한 결과가 엄청 풍요로운 것도 아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던 생물종의 절반 가까이가 멸종해 가고 있다니 따지고 보면 먹는 우리가 먹는 것의 종류도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오로지 비만과 당뇨병을 재촉하는 것들 위주로 말이다.

그런 모습들에 근육을 키우기 위해 닭가슴살과 고구마만을 먹었다는, 얼마 전에 '스타킹'에 출연했던 몸짱의 얘기가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 그 때 옆에서 강호동이 했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 울린다. "그러다 죽어요!"

그렇다. 그러다 진짜 죽는다. 근데 죽어도 그 근육으로 단단했던 몸은 풀도 못되고, 꽃도 못된다. 그냥 흰 가루일 뿐이다. 뭐하는 짓이니 대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라타니 고진의 책은 충격적이다. 그의 <세계공화국으로>에 담긴 주제는 역사적 교환양식, 칸트와 맑스, 세계제국과 세계경제 등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버거운 것들인데, 이걸 300쪽도 안되는 얍실한 책 한 권에 다 담았다. 심지어 쉽다!! 어쨌든 난 이 책을 산지 두어달 만에 두 번 완독했는데, (감히 용기내어 말하자면) 난 이 책의 내용이 뭐냐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적어도 15분 정도는 쉬지 않고 혼자 떠들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전적으로 내 능력이 아니라, 저자의 능력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책 자체가 원래 고등학생도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 저자가 작정하고 쓴 책이라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어쨌든 이 책에서 가라타니 고진은 자기가 줄곧 주장해 온 내용을 거의 다 쏟아낸 듯 하다. 이 책의 부제를 굳이 붙이자면 '1시간만에 읽는 가라타니' 정도?

 

어쨌든 이렇게 쉽게 세계화 속의 자본-네이션-국가의 문제를 둘러싼 쟁점을 선명하게 드러내 주신 덕에 내가 앞으로 고민하고 공부해야 할 것이 뭔지가 좀 선명하게 드러나는 듯 하다.

 

일단 고진에게 특이한 점은 그가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생산양식'이 아니라 '교환양식'을 통해서 발견한다는 점이다. 그가 책에서도 언급하듯이 이런 논의는 20세기 중반 모리스 돕과 폴 스위지 간에 벌어졌던 자본주의 이행논쟁에서 스위지의 계보를 잇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고진을 이 논쟁에 가담시켜 본다면, 그에게는 자본주의 뿐만 아니라 봉건제 조차도 그 내부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봉건제는 '제국의 아주변'에서 출현한, 즉 제국권력이 영향력을 뻗치는 범위의 (상대적)외곽 또는 사이공간에 존재하는 타자였다. 이를테면 서유럽 봉건제는 로마제국의 아주변에서, 일본의 봉건제는 중국제국의 아주변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에게서 국가는 역사적으로 존재해 왔던 4가지 교환양식(호수 / 약탈-재분배 / 상품교환 / 어소시에이션) 중 약탈-재분배를 기초로 성립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상품교환은 기본적으로 독립적인 자유민의 존재가 보장되지 않고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국가와는 다른 토대를 갖는 것이다. 즉 상품교환은 공동체의 바깥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상품교환은 공동체가 끝나는 곳에서,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 또는 그 성원과 접촉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마르크스)

 

그렇다고 그가 국가와 상품교환이 완전히 별개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근대 자본주의 등장 이후에 네이션(나는 이것을 그냥 '민족주의'정도로 이해하고 받아들였다)이 등장해 이 둘을 매개하여 자본=국가=네이션의 보로메오의 매듭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이들 각각은 상품교환, 약탈-재분배, 호수적 교환관계를 상징한다.

 

여기서 또 다시 가라타니의 주장이 자본주의 이행논쟁과 관련해 쟁점을 형성하는 부분은 '소비자로서의 프롤레타리아'라는 주장이다. "상인자본과 달리 산업자본은 생산과정에서 잉여가치를 얻지만 이는 아직 잉여가치의 실현이 아니다. 잉여가치가 진짜로 실현되는 것은 그 생산물이 유통과정에서 팔릴 때"라고 주장하고 또, "상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자를 직접적으로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로서의 노동자가 스스로 만든 것을 다시 사는 과정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말한다. 이렇게 그는 산업자본주의의 특징으로서 노동과정에서의 노동자의 자본가에 대한 예속과 이를 통해 얻어지는 잉여가치에 대한 부분은 일정정도 상대화시키고, 스위지가 그랬던 것 처럼 유통과정과 상업에 방점을 찍는다.

 

이런 문제를 고민하다가 결국 2년 가까이 책꽂이에서 잠자고 있던 <자본주의 이행논쟁>을 꺼내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난 스위지의 주장이 맞다고 생각하지만(그런데 이 책만 보면 스위지가 돕, 다까하시, 힐튼, 힐 등에게 다구리 당하는 형국이다), 아직 고민이 좀 남는다. 스위지의 논점은 이후 월러스틴이 잘 계승해서 논의했듯이, 분석의 시야를 세계체계로 확장시켰다는 측면은 있지만, 어쨌든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모순의 변증법'을 상대화시킨 것 아닌가? 또한 자본주의의 기원을 가치체계 사이의 계산적 차이를 이용해 이윤을 얻는 상인자본에게 초점을 맞추면, 자본주의의 고유한 노동과정에 대한 분석은 어떤 로를 통해 이뤄질 수 있는가? 나아가 이 논의의 끝까지 밀고 나가면 노동가치론은 폐기되는 건가?

 

그럼에도 돕과 다까하시 등의 논리로는 스위지가 제기한 문제들을 해결 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들은 봉건제 붕괴의 원인이 봉건 영주의 과도한 수입욕구와 이를 견디지 못한 농노들을 영지 이탈에 있다고 했다. 이에 스위지는 영주의 수입욕구라는 것도 국제 사치품 교역의 성장에 따른 결과이고, 농노들의 이탈은 도망갈 곳이 있어야 가능한데 이 당시 봉건영지 외부에 성장하던 상업에 기반한 도시가 이를 가능케 했다고 답한다. 딱히 도망갈 곳이 없던 동유럽의 경우에는 재판 농노제가 나타났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는 것이다. 이에 돕은 봉건제 외곽에 존재하던 도시들도 사실상 봉건 영주의 영향력 하에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이들은 오히려 반동적인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내가 볼 땐 좀 부족해 보이는 대답이고, 그가 가장 힘주어 강조하던 바는 "스위지 너, 계속 그렇게 말하면 넌 마르크스주의자 아니야" 뭐 이런 게 아니었을까?

 

아직 잘 모르는게 많아서 대충 정리해 봤는데, 어쨌든 이 두권의 책 덕분에 앞으로 공부할 게 더 많아졌다. 일단 올 여름이 가기 전에 <자본론> 1권부터 제대로 정독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난달에 이 두 권의 책을 함께 읽고 몇 마디 적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시간을 낸다.  

 

조봉암과 박헌영. 이 둘은 모두 해방 이전 조선 공산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거목들이다. 하지만 해방과 함께 맞이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서로 다른 길을 택해 결국 사실상의 정치적 반대파가 되고, 둘 모두 각각 남한과 북한에서 부당하게 간첩 혐의를 뒤집어쓰고 법살 당했다. 정태영의 <조봉암과 진보당>과 안재성의 <박헌영 평전> 모두 이 법살의 희생자들의 정치적 명예 회복을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 하지만 이러한 저자들의 목적이 나의 관심사는 아니다. 어차피 해방 이후 조선공산당의 스탈린주의적 편향을 비판하면서 독자적 길을 걸은 조봉암이 북한의 간첩이 아니라는 것과, 평생을 조선공산당의 정치적․이론적 지도자로 살아왔던 박헌영이 반공주의의 본산인 미국의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은 상식 있는 이들이라면 모두 동의할 만한 내용 아닌가? 
 

오히려 나는 이 둘을 통해 해방 전후 공산주의 운동이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비극성을 발견한다. 조봉암은 왜 둘도 없는 동지 박헌영을 향해 매서운 비판의 문건을 날려야만 했는가? (비공개로 전하려던 조봉암의 계획과는 달리 미군정의 수색에 의해 문건이 발견되면서 부득이 공개되고 말았지만) 이 문건을 받게 된 박헌영은 왜 성실하게 토론에 임하지 못하고 조봉암을 축출하는 것으로 사태를 종결하고야 말았는가?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숙고하는 것이 조봉암, 박헌영 개개인의 최종적인 정치적 결과물에 대한 평가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봉암과 진보당>에 실린 박헌영을 향한 조봉암의 편지를 읽어보면 상당히 합리적이고 근거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소양국간의 대결로 치닫고 있는 국제정세를 고려하여 지나친 친소적 노선을 드러내는 것은 좋지 않을 수 있으며, 신탁통치 문제와 관련하여 대중을 설득시키려는 노력에 힘써야 한다는 등의 주장들 말이다. 어쩌면 당시의 극단적인 정치적 대립 상황에서 그의 그런 구상은 꿈 같아 보이는 측면도 있지만, 그런 평가는 사실 사후적인 결과를 중심에 두고 하는 것이고 당시 상황에서 정치세력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였다고 보는 편이 옳다. 그런 면에서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조선공산당은 지나치게 코민테른의 지령을 조선 정세에 무매개적으로 대입하려는 경향이 있었고, 이에 대한 조봉암의 비판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약간 저자의 주관적인 냄새가 나긴 하지만) <박헌영 평전>에 묘사된 박헌영의 정치적 토론 자세나 정세적 치밀성으로 미뤄봤을 때, 박헌영이 이런 비판을 조금이라도 수용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다소 미스테리다. 설령 박헌영이 스탈린주의자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김일성이 ‘권력형 스탈린주의자’라면 박헌영은 그보다는 죄질(?)이 덜한 ‘이론형 스탈린주의자’라고 볼 수 있고, 그래서 박헌영의 합리적인 대처가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 사건 이후 조봉암은 철저한 대중지향적 노선에 기반하여 현실정치 참여로 방향을 잡았고, 박헌영은 미군정과 이승만 세력의 반공주의에 맞선 전국적 저항을 통해 조선공산당 사수에 힘을 쏟는다. 어차피 둘 다 50년대 한반도 정치에서 축출 당했다는 면에서 패배자임에 틀림없지만, 최근 남한 진보정치 내부의 평가 움직임을 봤을 때, 둘 간의 경쟁에서 조봉암이 ‘역사적’ 승리를 거둔 듯 하다. 작년 조봉암 법살 50주기를 맞아서 주대환의 사회민주주의연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모두 그의 정신을 이어받자는 토론회를 열면서 조봉암 노선의 복권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조봉암을 대한민국 건국공신으로 치켜세우는 사민련의 입장이나, 그의 진보당 건설 투쟁을 현재적으로 해석하면 ‘반MB연대’라고 주장하는 민주노동당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조봉암의 법살이라는 비정상적인 정치 행태가 현재까지 내려져오면서 노무현의 죽음과 노회찬 X-파일 사건 유죄 판결을 낳았다는 진보신당 조현연 교수의 주장도 말이야 맞는 말이래도, 그런 주장이 미래지향적 정치적 비전을 형성하는데 그리 중요한 주장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진보신당 장석준 정책실장이 말한, 미소대립이 직접적으로 투영된 한반도 현실 속에서 평화통일이라는 구상(그는 이를 당시 반둥회의로 대표되는 중립국 제3세력 노선과 맞닿아있다고 말한다)을 제시했던 조봉암의 국제정치에 대한 혜안을 본받아 21세기에 걸맞는 정치적 리더쉽을 형성해야 한다는 주장에 찬성표를 주고 싶다. 이런 관점 하에서라면 나는 앞으로 조봉암 노선의 적극적 해석을 통한 진보정당의 비전형성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   

 

하지만 이런 결론을 내리기 이전에 단서들을 몇 가지 달아야 한다. 내가 제시하려는 단서들은 이런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조봉암의 노선이 더 현실적이고 대중정치에 부합하는 것이었다면, 왜 그의 시도는 법살이라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버렸는가? 이에 대한 대답으로 ‘그래서 이승만이 나쁜 놈이다’가 제시되는 건 부당하다. 왜냐하면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박헌영도 변명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박헌영과 조선공산당도 잘 해보려 했지만, 미군정을 등에 업은 우익들의 테러가 만연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은 탄압에 의해 지하 비합정당이 되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대구총파업, 4.3항쟁 등 대중들의 자생적 봉기를 끝까지 책임지고 지도하려는 노력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박헌영의 북한행도 이런 상황에서 조직의 붕괴를 막으면서 대중투쟁에 대한 지도를 유지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조공의 이런 노력을 언급하지 않고 이들의 스탈린주의적 오류만 지적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사실 조봉암이 제헌의회 선거에서부터 다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이 엄혹한 투쟁의 시기에 침묵을 지켰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니었을까? (다만 참세상에 소개된 책에서처럼 조봉암을 변절 지식인이라 표현하는 것은 좀 과하다는 생각이다.(변절 지식인 조봉암과 비극의 뿌리 조선공산당))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조봉암의 민주적 사회주의 노선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는 단지 그가 역사적으로 성공한 북유럽식 사민주의와 비슷한 내용을 주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실패가 예정되어 있던 코민테른식의 사회주의를 거부하고 자주적으로 국제정세를 읽으며 제3노선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맥락에서 봤을 때에도 코포라티즘의 물적 토대가 전무했던 50년대 한국 상황에서 텍스트적 유사성만을 근거로 조봉암이 개량적인 북유럽식 사민주의를 주장했다고 말하는 것은 역사적 상황을 무시한 해석이다.

그와 비교해 박헌영은 고지식하다고 할 정도로 조직적인 인간이었고, 그래서 그 조직(코민테른과 조선공산당)의 오류가 그대로 박헌영의 오류가 되어버렸다. 안재성의 설명대로 박헌영이 김일성의 주전론에 거부감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라 해도 전쟁에 반대하는 실제적 행동을 하지 않은 이상 그도 전쟁의 공범이긴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진보운동의 역사에서 박헌영을 버리고 조봉암을 택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옳지 않다. 조봉암의 현실주의는 비슷한 시기에 터져 나온 노동대중들의 자생적 투쟁을 우회한 현실주의였다. 당시의 대구총파업, 4.3항쟁등이 조선공산당의 모험주의의 소산이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 당시 조선공산당은 사실상 전국적 지도 체계가 붕괴한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조선공산당은 대중 투쟁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극의 길로 빨려들어 갔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와 함께 조선공산당의 오류에 대해서도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나는 이재유를 비롯한 경성 트로이카의 중심들이 해방 이후에도 살아남았다면 적어도 코민테른 입장에 따라 반탁에서 친탁으로 우왕좌왕하는 조공의 행보는 나타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이재유는 박헌영이 자신의 밀사를 통해 상해에서 보내주는 공식 문건과 코민테른의 지령에 따라 활동할 것을 권하였을 때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문건이 도착하는데만 한달이 넘게 걸리는데, 어떻게 조선의 구체적 정세에 맞는 운동을 하겠냐는 것이다. 가혹한 탄압에 의한 것이었지만, 어쩌면 이들의 죽음이 조선공산당에 가장 큰 비극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장석준 등 진보신당의 브레인들이 주장하는 ‘조봉암 계승론’은 ‘비판적 계승론’으로 바뀌어야 한다. 21세기 진보정당의 정치적 리더십은 폭발하는 대중적 불만과 투쟁을 수평적 토론과 연대 속에서 대안적 사회체제에 대한 구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이끄는 리더십이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50년대 민중항쟁과 함께했던 조선공산당의 긍정성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한민국을 사색하다
주대환 지음 / 산책자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서평.... 이라기보다는 몇 가지 코멘트를 달을 수 있을 만한 책을 읽었다. 주대환의 글은 예전에 그가 우파 잡지 <시대정신>에 기고했다고 하여 논란이 된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와 좌파의 진로"(좌파는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유명한...)를 대충 보고, "이건 뭥미?" 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어제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하여 심심하던 차에 읽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을 예전에 서점에서 대충 본 적이 있긴 한데, 별로 읽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어제는 그냥 훑어보던 중에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만 부르자>(131쪽)라는 아주 도발적인 제목을 발견하고 읽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사실 나도 요즘 비슷한 고민으로, 어지간하면 앞으로 '동지'나 '민중'같은 단어는 쓰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의 말대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하 임진곡)과 같은 민가나 '동지', '민중'하는 단어들은 "그 곡조와 가사의 지나친 비장함은 일상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아 어색하고, 그 정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낯설고 닫혀 있다는 느낌을"(132쪽) 주기 때문이다. 이제 껍데기만 남은 '운동권 하위문화'와는 단절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좀 하고 있던 터였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부분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이 꽤 있기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1.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말자?

그에 따르면 우리가 80년대적 운동권 동창회 정서를 버리지 못하면 이른바 '토종좌파'(그는 칸트적인 합리주의적 사고를 버리고 경험주의와 실용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토종좌파'라는 말로 개념화한다. 그가 대표적 토종좌파로 칭찬하는 사람이 제주대 이상이 교수다.)로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이 토종좌파라는 말이 한국적인 정세와 조건에 맞는 운동을 하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집단을 말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의 말에 백번 동의한다.
 

하지만 그게 '임진곡'을 버려야 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그는 노무현 정부때 이 노래가 청와대에서 불려졌다는 말을 듣고, 이런 자유주의자들과 같은 부류로 엮여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여 '임진곡'을 부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런 이유라면 오히려 나는 더 열심히 임진곡을 부를 것이다. 그가 그렇게 애타게 찾는 한국적 '토종좌파'는 단순히 맑스-레닌의 교조주의에 빠져있지 않다고해서, 외국이론에 심취해서 현실을 보는 눈을 갖지 못하는 먹물적 근성을 버린다고만 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게 아니다. 철저하게 우리의 지난 저항운동의 역사에 근거해야만 한다. 그 스스로가 그것으로부터 절대적 영향을 받았을, 518을 잊고서는 우리는 앞으로 어떤 진정한 의미의 저항운동도 시작할 수 없다. 518에 대한 해석이야 다를 수 있지만, 그 저항현장의 상징인 노래를 폐기하자고 하는 것은 감정적인 대응일 뿐이다. 물론 나도 그로부터 연유한 운동권 하위문화가 얼마나 심각하게 운동 전반의 개방성과 유연성을 질식시켰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80년대 저항운동이 앙상한 운동권 하위문화로 귀결된 것이 유일하거나 필연적인 경로는 아니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우리는 이미 그렇게 형성되어져 버린 조건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즉 자신이 선택한 조건들 속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려받은 조건들 속에서 만든다. 모든 죽은 세대들의 전통은 마치 악몽처럼 살아 있는 세대들의 머리를 짓누른다."(맑스,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
 

 

2. 토지개혁 때문에 대한민국의 출발은 진보적이었다?
 

우리는 지난 저항운동의 역사가 남겨놓은 한계와 가능성을 명확히 하고, 그 가능성을 중심으로 계승해 나가야 겠지만, 그렇다고 맘에드는 것만 골라서 이어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면에서 여운형과 조봉암을 치켜세우며 "대한민국은 진보적인 시대에 건국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일찍이 그 어디서도 보지 못한 역사에 대한 '편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두 명의 훌륭한 정치인이 해방을 전후하여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이었고, 시대를 앞서나간 인물이란 점에는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실제 이들이 현재의 대한민국 '체제'를 긍정적으로 형성하는데 얼마나 큰 공을 세웠느냐 하는 문제로 오면 그리 대답할 만한 게 없다. 실로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포부를 채 펼쳐보지도 못한 채 타살되었고, 그러니 그들이 역사에 남긴 것은 말과 글, 즉 '사상'뿐이다.

주대환의 말대로 해방 직후 유력한 정치인(김일성, 박헌영, 여운형, 김규식, 김구, 이승만) 중에 좌우 양극단의 두 사람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타살되면서, 한반도는 사실상 극우와 극좌의 나라가 되었다. 적어도 50년대 남한은 '이승만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텐데, 토지개혁 하나만 가지고 이 나라가 조봉암의 업적 위에 세워졌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해도 비약이 너무 심하다. 이에 더해 (그것이 북한과의 체제경쟁 과정에서 출현한 정책이었다는 점을 제외한다해도) 토지개혁을 현재 대한민국 체제의 출발점으로 삼으려는 논의는 문제가 많다. 이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주대환은 자신이 아무리 신좌파를 외치고 다녀도 구좌파적 사고방식, 즉 단계론적/진화론적인 사고방식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여진다.

그는 남한의 토지개혁을 치켜세우면서, 그것은 집단농장으로 전락한 중국 공산당의 토지개혁이 아니라 79년 덩샤오핑 체제 하에서 실시된 토지개혁이 남한의 그것과 견줄만 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농민들에게 자기 소유의 땅을 쥐어주고 "모두 부자가 되라!"라는, 우리나라 모CF의 "부자 되세요~"와 견줄만한 지상명령을 제시한다. 이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黑猫白猫)론으로 잘 드러나는데, 이것을 보통 중국의 자본주의로의 전환에 있어 첫 기점으로 삼는다. 주대환에게 이것은 한국의 토지개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다시 말하자면 건국 당시 대한민국은 소농의 나라였습니다. 토지 개혁으로 조그만 땅뙈기를 갖게 된 수많은 자영농민들의 자발적 중노동과 창의력이, 그 말릴 수 없는 교육열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기적을 만든 에너지의 원천입니다."(226쪽)

정리하자면 중국이나 한국이나 모두 토지개혁을 통해 자본주의로의 발전과 번영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고, 대한민국은 이런 '위대한 유산'을 바탕으로 낡은 NL과 PD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사회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보면 제2인터내셔널 당시 자본주의의 성숙이 자동적인 사회주의로의 진화로 나아가게 한다고 말한 일부 '정통 맑스주의자'(주대환이 따르는 베른슈타인류나 그가 반대하는 스탈린류나 모두 여기에 속한다)들의 사고방식과 뭐가 그리 다른지 궁금하다. 게다가 '자발적 중노동'이라니!! 이런 식이라면 인클로저 운동 당시 도시로 내몰린 빈민들의 노동도 '자발적'이었고, 먼지 소굴 평화시장에서 어린 여공들의 일을 대신해주기도 했던 전태일의 노동도 자발적인 것이다. 어쩌면 주대환의 생각은 작년에 광주항쟁에 대해 '선진국에서도 다 그런 과정을 겪더라'라며 통과의례쯤으로 발언했던 황석영의 관점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월러스틴이 말했듯이, 서양의 부르주아 혁명은 신흥 자본가계급의 출현이 아니라 기존 귀족계급의 '환상변신'에 의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는 '근대로의 진화'라고 보는 관점은 옳지 않다. 한국의 50년대도 마찬가지 아닌가? 조선 말기와 일제 식민지 시기에 봉건 지주였던 놈들이 반민특위를 짓밟고 자본가계급으로 '환상변신'을 했다는 것은 굳이 월러스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상식이 아니던가?
 

 

3. 전쟁은 '평등주의'다!?

나아가 내가 주대환을 다음의 인용문을 근거로 '주전론자'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또 하나의 억지일까?

"그리고 한국전쟁에서 두어 차례 전선이 밀려 내려오고 밀고 올라감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다니고, 월남 또는 월북함으로써 뒤섞이는 사이에 신분 질서와 귀족의 생활양식, 전통문화는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고급문화를 대중이 따라하여 전반적으로 문화적 상향평준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거꾸로 모두가 어떤 가식도 핑계도 없이 노골적으로 돈과 힘을 추구하는 천민이 된, 위대한 천민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 ...) 그리하여 대한민국은 평등하기 때문에 위대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천민자본주의의 나라, 대한민국이 평등하다니요? 그렇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건국 당시 대한민국은 평등했습니다. 세상 모든 사물의 평가는 상대적입니다. 건국 당시의 대한민국이 평등하다는 것은 절대적인 평가가 아니라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222-3쪽)

한국전쟁이 기존의 신분관계를 청소해서 대한민국은 모두가 천민인 나라, 평등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원래 자본주의 자체가 천한 것이니 한국식 천민자본주의가 부끄러울 이유도 없고, 지금의 대한민국 발전을 이끌어 온 엄청난 교육열도 이 '천민적 평등주의'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위대하신 대한민국을 만든 것은 팔할이 전쟁이었다. 오 전쟁이시여~ 뭐 이런건가?

이런 식의 주장은 사실상 종말론적으로 읽힌다. 모든 것이 파괴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새로 지을 수 없다는... 그렇다면 우리는 세계대전이 전지구적 경제성장의 기회를 가져왔다고 말하는 제국주의자들의 주장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이것을 앞에서 지적한 그의 '자발적 중노동'이란 표현과 연결해 생각해 보면, 전쟁으로 피폐화된 상황 속에서 한국은 근대적 평등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얻었고, 이로써 근대화의 발판을 만들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이 일제의 식민통치와 세계대전 참전이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뉴라이트의 역사관과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인가? 이런 식이라면 현재 전쟁을 겪고 있는 중동지역 시민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을 축복의 폭죽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인가?
 

 

4. 여전한 남의 것에 대한 맹목적 추종

이에 대해 나의 과잉해석이라고 말한다면 인정하겠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일때 한 쪽 눈엔 블라인드를 쳐버리는 습관은 여기서 그치는게 아니었다. 이를테면 "마찬가지로 뒤집어 보면, 한국이 OECD에 가입했다는 사실 역시 때로는 고맙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충분한 준비 없이 졸속하게 OECD에 가입해서 구제금융을 받아야만 하는 외환위기를 초래했다고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건 맞습니다. 그러나 과연 OECD가 한국의 가입 조건으로 제시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 엄두를 내었겠습니까?"(230쪽) 같은 구절 말이다.

한국 정부가 언제부터 그렇게 국제기구의 말을 잘 들었다고 공무원노조 탄생의 공을 OECD로 넘기는지 알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주대환은 자기가 그렇게 부르짖는 '토종 좌파'로서의 자질이 매우 부족하다. 그는 대한민국을 긍정하자고 말하면서도 그 근거를 대한민국 내부가 아니라 항상 외부에서 찾는다. 대한민국 최초 헌법이 가장 선진적인 민주주의 제도를 받아들인 결과라는 것도 사실상 서구문물에 대한 찬양이다. 그가 여운형, 조봉암을 존경하는 이유도 그들이 서구식 민주주의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들을 좋아하는 것도 그들이 '서구적' 국가관료제도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는 식민지 시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저항운동의 역사 속에서 피어난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의 모조품으로서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것이다.

진보신당 상상연구소의 장석준은 주대환의 이런 주장을 두고 역사 속에서 어떤 기원적 사건을 찾고 그것으로부터 정통성의 계보를 작성하는 것은 전형적인 주자학자들의 역사관인데, 주대환의 주장이 딱 그 꼴이라고 비판했다. (장석준, <진보좌파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시민과세계 2008 하반기호) 여기에 덧붙이자면 주대환은 한국 땅에서 한 번도 자리를 잡은 적 없는 서구형 민주주의/복지국가를 대한민국 정통성의 기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면 이 나라가 '민주공화국'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는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3.1운동으로부터 시작된 수많은 대중들의 저항행동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긍정해야 한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장석준이 말하듯이 "민주공화국을 위해서 대한민국을 넘어서야"한다. 그런 방향으로 우리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다시 써내려가야 한다.

  
 _______________
 


 사실 이런 글을 읽는 것은 나로서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앞서서 운동했던 대표적인 분이 이렇게 매력없는 글로서 사람을 실망시키니 후배의 마음은 찢어진다. 한 논평자의 말처럼 주대환의 이런 선회는 이미 90년대초 '신노선'을 선언할 당시의 선택이 "주어진 선택지들 중에서 선택한 무엇이 아니라 '더는 이대로 돌파할 수 없는 한계선'을 맞닥드리며 어쩔 수 없이 포기하며 좌파에게 남은 기획을 '새로운 기획'이라 믿고 또 다시 헌신해온, 좌파의 총체적 위기와 기획의 빈곤 위에서 싸워온 우리 운동과 우리 자신의 현실적 자화상"(최윤식, "사민주의가 대안일 수 없는 이유", 레디앙, 08.09.08)인 것처럼 예정된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어차피 좋든 싫든 주대환류의 역사적 효과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우리의 미래도 이렇게 예정되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운동의 혁신'이란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난 운동의 결과들과 단절을 선언하는 것 밖엔 길이 없지 않는가?

부탁드린다. 어린 놈이 더 이상 이런 절망스러운 결론에 다다르지 않도록 선배님들이 지난 운동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를 좀 더 성실하게 해 주시기를... 그래서 그것이 '대안사회'로 불리든 '진보한국'으로 불리든, 그것을 이뤄나가는데 미력한 지성을 보태는데 망설일 이유를 만들지 않게 해 주시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학교 없는 사회
이반 일리히 지음, 심성보 옮김 / 미토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다른 건 둘째치고 번역이 엉망이네요. 영어식 문법이 그대로 드러나는 번역, 쩔어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